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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 덕봉산, 드넓은 해변에 홀로 봉긋…작은 산이 하나 떠 있다

2025-03-14
[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 덕봉산, 드넓은 해변에 홀로 봉긋…작은 산이 하나 떠 있다
맹방해변에서 본 덕봉산. 덕봉산은 원래 섬이었다가 후에 퇴적층으로 육지와 연결됐다.
[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 덕봉산, 드넓은 해변에 홀로 봉긋…작은 산이 하나 떠 있다
초곡 용굴촛대바윗길 출렁다리. 움푹 들어간 해안절벽을 이어준다.
[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 덕봉산, 드넓은 해변에 홀로 봉긋…작은 산이 하나 떠 있다
초곡 촛대바위와 거북바위. 동해의 해금강이란 명성이 빈말이 아니었다.
본래는 섬이나 퇴적층이 육지와 연결
1968년 무장공비침투후 軍시설 생겨
53년간 일반인 출입금지 '금단의 땅'
2021년 해안생태탐방로 개설되며 개방
정상에 오르면 맹방·덕산해변 한눈에
초곡 용굴촛대바윗길 기암괴석 비경

겨울 바다는 파란 감동으로 목도리를 했다. 그때는 2월 바람이 탱고의 리듬으로 불어왔다. 그런 탓인지 파도는 십리가 넘는 백사장에 철썩철썩 밀려와 하얀 포말을 줄기차게 토하곤 했다. 맹방해변(孟芳海邊)은 이름처럼 처음의 꽃이었다. 하늘과 바다 명사십리, 곰솔 향기 그윽한 맹방해변은 아름다운 자연이자 꽃이었다. 부드러운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다.

백사장에 닿아 부서지는 파도의 하얀 꽃잎들. 이건 숫제 겨울에 핀 흰장미 같았다. 간혹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머리칼은 그리움처럼 풀풀 휘날리며 가르마를 탔다. 바다에 다가갈수록 파도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 소리는 우주가 전하는 말이었다. 대보름 농악패보다 더 울렁울렁하는 화음과 공명이 거기에 있었다. 끝없이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마음을 베어 버린다. 나의 바다로 향하게 하는 수평선의 손짓. 나는 저 맹방 겨울 바다를 가슴에 담으면서 바다 위에서 그림을 그렸던 화가 훈데르트바서의 '백 개의 물'을 기억하곤 했다. 파도 소리, 하얀 포말, 흰장미의 환상, 수평선과 한 선에 있는 하늘은 전혀 낯선 풍경이었다. 이런 경험은 목소리가 되어 귓전에서 울림으로 변한다. 그러면 내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만들어진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나인가요. 지금부터 나의 내면으로 걸어가면서 탐사를 한다. 덕봉산 쪽 반달 모양의 백사장이 다할 무렵 외나무다리를 만난다. 한사람이 겨우 비껴갈 수 있는 외나무다리. 그 다리 위를 걸으면 못 잊을 추억들이, 겅중겅중 떠나버린 사랑이 유난히 도돌이표를 찍는다.

인근 초당 동굴에서 발원한 마읍천을 건넌다. 맑은 담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 마읍천에는 가장 깨끗한 생명체 송어가 살고 있다. 저 냇물에 빛이 내리면 아득한 시간이 현실로 돌아와 새파란 꿈이 되어 흘러간다. 그렇다. 무엇이든 계속 흘러간다. 숲이 우거진 덕봉산 해안생태 탐방로 데크 로드를 걷는다. 1968년 11월2일 울진 삼척 지구 무장 공비 침투 사건 이후, 군 경계 시설이 들어서며 장장 53년 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2021년 개방, 덕봉산 해안생태 탐방로가 탄생했다. 발이 이끄는 데로 걷는다.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와 하얀 물거품으로 부서진다. 마치 거대한 철새처럼 떠 있는 기암괴석들. 돌출한 맹방 전망대에서 멈춘다. 이미 걸어온 맹방해변 삼척 제1의 해수욕장. 조개들이 잠자는 백사장. 산림욕을 할 수 있는 울창한 해송 숲. 하늘이었다가 바다이었다가 어느샌가 두근거리는 경치가 되는 황홀한 현장감. 몽환적인 뷰 포인트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덕봉산은 본래 섬이었다. 후에 퇴적층으로 육지와 연결되었다. 덕봉산 유래는 이렇다. 덕봉산 모양이 물더덩(물독의 방언)과 흡사하여 '더멍산'이라는 속칭으로 불렸는데, 이걸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번산이었다가 현재의 덕봉산이 되었다고 한다.

덕봉산에는 자명죽 설화도 있다. 덕봉산에 스스로 우는 대나무가 있었다. 이웃 맹방리에 사는 홍견이라는 사람이 산신에게 기도 후 자명죽을 찾아내었다. 조선조 선조 5년 (1572년) 별시가 있었는데 이 자명죽을 화살로 사용 무과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그냥 빙 둘러서 걷다가 정상으로 가는 데크길을 만나면 거기로 오르면 된다. 해발 54m에 불과한 덕봉산 정상이지만 사방이 조망되는 탁 트인 전망대이다. 천국의 계단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정말 아름답고 기가 막힌 경치다. 뒤로는 산맥이, 우로는 맹방해변이, 좌로는 덕산해변이, 앞에는 바다가 하늘에 맞물려 있다. 아주 엄청난 뷰다. 저 자연이 빚은 미의 세계에 깊이 들어간 후, 몰입해 버린 그 순간순간이 모두 환희였다. 여기서는 잡념과 스트레스가 외야에서 머물다 떠난다. 그리고 나 자신을 그냥 바라보게 하는 긴 호흡이 있다. 수려한 경관은 그만큼 언어가 닿을 수 없는 차원의 시공에 있었다. 꿈꾸다 잠이 덜 깬 얼얼한 기분으로 이곳을 떠나 초곡으로 간다.

인근에 있는 초곡은 작지만 아늑한 항구였다. 갈매기가 이마 위로 날고 있다. 갈매기의 순결한 잿빛 비행이 곡선을 그리고 있다. 막바지 겨울이 만져지는 경이로운 2월이다. 상가가 팔짱을 끼고 밀집한 도로를 걷는다. 어판장에는 대나무에 걸린 물고기가 나란히 풍욕을 하고 있다. 비린내 풍성한 가게 건어물의 퀭한 눈은 파도 무늬로 자수를 놓았다. 흰 등대를 보며 지나가자 초곡 용굴촛대바윗길 입구 조형물이 환영 인사를 한다. 60년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2019년 7월12일 길이 열렸다. 예산 93억원을 옴니암니 투자하여 군 철조망을 걷어내고 해안절벽 따라 데크길을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입이 쩍쩍 벌어지는 비경이 출현한다. 해변은 기암괴석과 바다의 독특한 지형이 뒤엉켜 떨림과 설렘을 발길에 깔아준다. 이내 제 1전망대에 도착한다. 바위에 우뚝 솟은 전망대. 초곡 용굴촛대바윗길의 윤곽을 볼 수 있는 위치이다. 이전에는 배를 타지 않고는 접근이 되지 않았던 숨은 명소였다. 바다에 널려 있는 작고 큰 바위에 파도가 흰 나비 떼처럼 달려들어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찰나지만 영원이다. 포토존이 있어 여행객이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강원도 삼척 맹방해변 덕봉산, 드넓은 해변에 홀로 봉긋…작은 산이 하나 떠 있다
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데크길을 따라간다. 출렁다리가 나온다. 움푹 들어간 해안절벽을 이어준다. 다리 가운데 강판 투명유리가 있어 겨울 바다 남색 파도가 망막에 두려움으로 밀려온다. 다리가 후덜덜 떨린다. 모퉁이를 돌아가자 기암괴석의 향연이 펼쳐진다. 베일에 싸여 있던 촛대바위가 마침내 그 수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동해 추암 촛대바위와 쌍벽을 이룬다는 초곡 촛대바위. 파란 잉크를 풀어 놓은 것 같은 바다. 아찔한 해안절벽. 작은 바위섬에 철썩이는 짙푸른 파도. 동해의 해금강이란 명성이 빈말이 아니었다. 거북 바위, 사자 바위, 피라미드 바위도 감탄이 쏟아지는 비경이다. 가히 바위의 사파리다.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려운 핫플레이스다. 시간에 따라, 방향에 따라, 빛에 따라 바뀌는 마술의 경치. 무언가 말을 해 주려는 촛대바위의 보이지 않는 촛불. 누가 저 촛불을 켜서 우리의 영혼을 밝혀 주지 않으려나. 여기서 데크길이 마무리되는 용굴이 보인다. 낙석으로 더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 놓았다. 용굴은 가난한 어부가 꿈을 꾸고, 꿈의 계시로 바다로 나가 죽은 구렁이를 찾아낸 뒤, 용굴에 정성껏 제사를 지내자, 죽은 구렁이가 살아나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 그 보은으로 어부는 풍어를 누리고 살았다는 전설이다. 이제 선조들의 의식을 지배해 온 상상과 전설은 아득히 사라져 메아리가 되고 있다. 우리는 정녕 이대로 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6·25 사변 때 초곡 마을 주민들이 배를 타고 용굴로 피란하였다는 아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되돌아 나오면서 한 번 더 절경을 따라 걷는다. 감동은 더 높게 나래를 친다. 지나온 발자국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찍는다.

초곡항으로 나오니 이월의 해가 설핏하다. 어디라도 삶의 현장은 생동감이 있다. 초곡 앞바다에는 자연산 문어·전복 등 중요 해산물이 많이 서식한다. 이걸 따기 위해 제주도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살고 있다. 해녀들은 물질로 생활을 꾸려간다. 몬주익의 마라톤 영웅 황영조의 어머니도 제주도 출신 해녀였다. 국민의 가슴에 자부심과 환호를 심은 영웅의 심폐 기능은 일반인의 1.5배 이상 수준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의 숨비소리 속을 달리는 황영조, 고통을 거치지 않고 닿을 수 있는 영광은 없을 것이네. 그토록 즐거웠던 하루였지만 돌아가는 길, 서서히 어두워지는 저녁 회색의 바다가 슬퍼져 숨죽여 울음을 참았다.

글=김찬일 시인 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무철 양재완 여행 사진작가


☞문의 : 강원도 삼척 근덕면 맹방해변 (033)570-3074

☞주소 : 강원도 삼척 근덕면 맹방해변로 140

☞트레킹 코스 : 맹방해변-덕봉산 해안생태탐방로-덕산항-초곡 용굴촛대바윗길

☞인근 볼거리 : 이사부 사자공원, 국보 죽서루, 척주 동해비, 활기 치유의 숲, 준경묘, 천은사, 환선굴 대금굴, 공양왕릉, 삼척 해상 케이블카, 황영조 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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