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제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살아도 돼요." 팔순에 가까운 나이의 A씨가 10년 전 들은 말이다. 당시 지인의 거듭된 설득에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수천 만원을 주고 땅을 샀다. 하지만, 기획부동산 사기에 걸려들고 말았다. 고된 육체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땅을 산 것이 오히려 A씨를 평생 육체노동의 굴레에 가뒀다. 그의 지난 10년은 그야말로 후회와 눈물 뿐인 세월이었다.
'기획부동산'이란 부동산을 이용해 마치 경제적인 이득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조작해 투자자들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얻는 행위를 하는 중개업자나 업체를 일컫는 말이다. 사실상 개발이 어려운 토지나 임야 등을 싼값에 사들여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해 투자자들을 모집한 뒤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게 기획부동산의 대표적 수법이다. 이 범죄가 대구 곳곳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빌딩 건물에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했다.
매우 구조적으로 짜여진 기획부동산의 덫에 걸려든 이들은 그간 눈물뿐인 삶을 살아야 했다.
◆우린 어쩌다 기획부동산 덫에 걸렸나
A씨는 50대까지 중산층의 삶을 살다가 가족에게 닥친 불행한 일로 인해 가세가 기울게 된다. 살던 집은 사라지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생계를 위해 밤낮 없이 일하며 돈을 모았다. 고된 노동을 하는 일용직이었지만,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러던 중 한때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투자 제의를 받았다. 지인은 “언니, 이번에 이 땅에 투자하면 더 이상 험한 일 안 해도 된다"라며 설득했다. 결국 오랫동안 고생하며 모은 돈 수천 만원에 지인의 권유로 대출까지 내서 땅을 샀다. 하지만, 그 땅은 기획부동산 업체의 영업용 땅이었다.
A씨는 “하루 아침에 집안이 기울고, 아무리 하루하루 돈을 모아도 나이가 많아 재기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라며 “'예전처럼 가족이 맘 편히 비 피할 집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지막 희망인 줄 알고 땅을 사게 된 것"이라고 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B씨(60대)는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인 줄 알고 기획부동산용 땅을 사게 됐다. 지난 2016년 B씨는 평생 모은 돈에다 빚까지 내서 수억원어치의 땅을 샀다.
B씨는 “계약을 빨리 안 하면 눈앞에서 좋은 땅을 놓칠 것처럼 독촉했다"며 “나는 일확천금을 바란 게 아니다. 수익이 좀 난다면 그걸로 자식 결혼 자금에 보태주고 싶었다. 남는 돈으로는 전세나 월세 생활에서 벗어나 번듯한 내 집을 하나 마련해 살아보고 싶었다"고 말하며 긴 한숨을 몰아쉬었다.
◆경제적 고통과 자책·분노
평생 모은 돈에다 대출까지 내서 땅을 산 피해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짧은 '희망고문'과 길고 긴 '비참한 삶'이었다.
당장 마주한 것은 경제적 고통. 특히, 고령층 피해자들은 노후를 편안히 보내기는커녕, 최소한의 생계 유지와 대출 이자를 갚기 위해 잠시도 쉬지 못했다고 한다.
A씨는 “일흔이 넘어 몸이 아파도 힘든 일을 쉴 수가 없었다. 추운 날씨에 아픈 다리를 끌고 일을 해서 지금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 떠돌이 생활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울먹였다. B씨는 “10년 가까이 대출이자를 갚느라 지금도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허리 펼 날 없이 일해도 월급 상당수는 대출이자를 갚는데 몽땅 써야 했다"면서 “자식한테 한푼이라도 더 보태주고 싶어 땅을 산 것인데, 사기를 당해 오히려 자식에게 경제적 부담만 줬다"고 망연자실했다.
경제적 고통만큼 피해자들을 힘들게 한 것은 자책과 끓어오로는 분노였다.
A씨는 “전 재산을 잃고 거짓말에 속았다는 생각에 그간 피눈물을 흘리며 보냈다"고 말했다. 또한 B씨는 “식구들 보기가 너무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너무 많은 이들이 기획부동산으로 비슷한 피해를 입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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