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서 지원나온 순직기장은
“민가 피하려 야산 방향 틀어”
불 끄러 갔던 산불감시원도
집으로 향하다 불길 휩싸여

경북 영양군 석보면 법성사 대웅전이 화마로 인해 무너져있다.(연합뉴스)
경북 의성에서 북동부권으로 확산한 산불로 희생된 안타까운 사연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산불을 막기 위해 헌신했거나, 지역의 존경을 받던 인물들이다.
강원도에서 임차 헬기를 몰고 경북으로 날아온 박현우(73) 기장은 지난 26일 의성 산불 진화 도중 순직했다. 박 기장은 사고 25일 오후 2시 강원 인제에서 출발해 현장에 도착, 즉시 진화작업에 나섰다. 사고 당일에는 두 번째 진화 작업에 투입된 지 12분 만에 헬기가 추락했다. 사고를 목격한 주민들은 박 기장이 민가를 피하려 헬기를 야산 방향으로 틀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공무 수행 중 사망한 순직자로 예우된 박 기장의 분향소는 27일 의성군청소년문화의집에 마련됐다. 추후 이천 호국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이날 분향소를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각각 “숭고한 희생, 온 국민이 잊지 않겠습니다" “박현우 기장님 명복을 빌고 고귀한 희생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으며 박기장을 애도했다.
영양에서는 법성사 주지 선정 스님(85)이 사찰에서 숨졌다. 무너진 대웅전 옆 건물에서 소사한 상태로 발견된 스님은 2002년 주지로 임명되기 전부터 법성사에서 수행해왔다. 마을 주민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온 선정 스님은 지역의 정신적 지주로 통했다. 김진득 화매1리 이장은 “혼자 사찰을 지키셨고, 부처 그 자체였던 분"이라며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고민을 나누던 분인데, 이젠 그럴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로 법정사는 대웅전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극락전을 포함한 2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됐다.
영덕에서는 산불감시원 신모(69)씨가 진화 작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불길에 휩싸여 숨졌다. 산림당국에 따르면 신씨는 27일 오전 11시 50분쯤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한 차량 인근에서 발견됐다. 신씨는 지난 25일 오후 8시 30분쯤 진화를 마친 뒤 영해면 대리 자택으로 향하던 중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들은 신 씨가 귀가하지 않자 경찰에 실종 신고했고, 하루 반나절이 지나서야 발견했다
경북 대형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이들을 포함해 총 23명으로 늘었다. 경북 북동부권 5개 지자체는 희생자들 합동분향소를 설치한다. 주민 4명이 숨진 안동시는 합동분향소 설치를 논의 중이다. 청송군은 이날 청송군보건의료원에서 지역 산불 희생자 3명을 애도하는 합동분향소 운영을 시작했다. 영양군은 28일 오후 1시부터 다음달 1일까지 군청 앞 잔디광장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한다. 영덕에서도 합동분향소를 설치한다.

오주석
영남일보 오주석 기자입니다. 경북경찰청과 경북도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