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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디지털 논설위원 |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체면(體面)과 염치(廉恥)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덕목이자, 미덕이다. 더러는 사람과 짐승의 차이라고도 한다. 사전은 체면을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로, 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각각 정의한다. 자기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한번 쯤 더 생각하고 행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나 배려와도 직결된다. 권력자일수록, 부자일수록 더욱 요구되지만 기대치에 부합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좋은 사람이 주변에 많아야 좋은 사회가 된다.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점점 구두선(口頭禪)에 가까워지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찾기도, 보기도 힘들어지고 있다. 이런 불편하고 마땅찮은 시대적 흐름을 두고 누군가는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은 인간의 본성이고 자본주의의 연료'라고 표현했나 보다.
안타깝게도, 세상 인심이 날로 각박해지고 있다. 극강의 이기(利己)가 횡행하면서 이웃도, 주변도 별로 중요치 않게 여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외치며 그 짧은 시간동안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바라보는 시각도 결이 비슷하다. 체면과 염치를 의식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진상을 싫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멸한다. 주로 나이가 많은 진상은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고 생각하고, 젊은 진상은 자기 논리가 완벽하니 따르라고 강요하는 특성을 드러낸다. 욕을 먹는 것보다 덕을 쌓는 게 결국은 남는 장사이자 현명한 처신이다. 선인들의 말씀을 따르자면, 존중과 공경은 돈이나 권력을 앞세운 압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낮추었을 때 흘러 들어오는 것이라 했다.
장준영 디지털 논설위원

장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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