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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구로에서]살릴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2025-05-07

수익성보다 환자 중심 육성
대형 병원도 피한 수술 자처
팔 이식부터 재건·접합까지
전문병원 제도 개편 내다봐
정부, 구조와 제도 손질해야

[동대구로에서]살릴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강승규 사회2팀장

대구의 병원 한 곳이 의료 지형도 바꾸고 있다. 병상 50개·의사 5명으로 출발한 이 병원은 개원 17년 만에 대구 종합병원 '톱6'에 올라섰다. 경북대 등 5개 대형병원 중심 체계 속에서 유일하게 민간병원이 이뤄낸 성과다. 단지 규모(병상 462개·의료진 50여명·직원 550여명·중환자실 병상 22개)만 커졌다고, 병원이 성장했다고 볼 순 없다. 이 병원은 '지역 환자를 살리겠다'는 나름의 의료 철학이 있다. 힘들고 손 안 가는 수술을 자처한다. 대학병원이 망설이는 고난도 응급 수술,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재건·접합 치료를 마다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돈 안 되는 치료에 왜 매달리냐"고 묻지만, 이 병원은 의료를 업(業)이 아닌 사명으로 인식한다. 살릴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수술대 불을 켠다. 돈보다 생명을 앞세운 병원이 지역 의료 한복판에서 확장에 성공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지금 한국 의료의 구조적 허점을 조용히 비판하고 있다.

이 병원이 처음 전국에 이름을 알린 건 2017년. 국내 최초 팔 이식 수술을 성공시켜서다. 기존 장기이식법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었다. 법 개정을 촉발하는 계기였다. 환자는 같은 해 프로야구 시구자로 나섰다. 생명 복원이 실현 가능한 스토리임을 전 국민에게 몸소 보여줬다. 이후 근골격계 진료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정형관절외상 등 전문성을 세분화했다. 영남권에서 유일하게 보건복지부 수지접합 전문병원과 관절 전문병원에 함께 지정됐다. 의료 역량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대학병원 위주 의료 시스템, 수도권 중심 정책, 병상 증설을 가로막는 규제 환경 속에서 지역 병원들이 생존하기 결코 쉽지 않다. 이 병원은 수도권을 모방하거나 대형병원 흉내도 내지 않는다. 대신 '우리 지역에 꼭 필요한 병원'이 되겠다는 확고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 환자가 겪는 불편을 개선했고, 대기 없는 수술 체계를 마련했다. 이 모든 변화는 외형보다 '존재 이유'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지역 의료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는 '낙후'다. 낙후된 건 지역이 아니라,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서울 기준으로 지역 병원의 가능성을 재단하고, 수도권 논리를 지역에 그대로 이식하려 드는 정책이야말로 진짜 낙후다. 의료에 자본 논리가 깊게 침투해 있다. 환자는 고객이 됐고, 생명은 비용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이 병원은 끝까지 의료의 본질을 지켜려고 애를 썼다. 수익성보다 책임, 효율성보다 사명을 중시했다. 이 병원이 외면한 건 돈이고, 고집한 건 사람이다.

지금 한국 의료는 중대 전환점에 있다. 수도권 집중, 대학병원 과포화, 지역 의료 공백이 겹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 병원의 행보는 하나의 병원이 아닌, 하나의 대안이다. '작지만 강한 병원'이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는 묻고 싶다. 왜 지역에는 이 병원 같은 병원이 더 많아지지 못하는가. 그 이유가 지역 의지 부족이 아니라면, 남은 건 제도와 구조의 몫이다. 정부가 지역 의료를 진정 고민한다면 이런 병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지원 및 정책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무엇보다 병원이 환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지역에도 병원이 있어야 하고, 그 병원이 생명을 대하는 방식은 수도권보다 더 성실하고 진중해야 한다. 대구 한복판에서 그 원칙을 묵묵히 지켜낸 병원은 바로 W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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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규

의료와 달성군을 맡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깊게 전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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