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용 금화복지재단 이사장·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지점, 대구 달성군의 강정보(江汀洑)는 단지 댐이나 수자원 시설로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이곳은 '문화가 흐르는 강변'이자, 도시와 자연이 함께 숨 쉬는 복합 생태문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하늘이 서서히 열리는 새벽녘, 푸르른 녹음이 강 위로 드리우고, 햇살은 바람을 타고 얼굴을 스친다. 도시의 분주한 리듬과는 다른 속도. 자연의 숨결이 살아 있는 이곳에서는, 인간이 한 걸음 느려져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거대한 스케일이 아닌, 고요하고 섬세한 감동이다.
한때 농업용 수자원으로 주목받던 이곳은 이제, 도시와 문명이 자연 앞에 고개를 숙이는 공간이 되었다. 콘크리트의 무게를 넘어서 강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사람들은 그 강 앞에서 인간다움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강정보의 대표적 상징은 디아크(The ARC, Architecture of River Culture)다. 세계적 건축가 하니 라시드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거대한 돛 같은 지붕과 유려한 곡선으로 물결을 형상화한다. 하나의 조각이자 시(詩)다. '강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란 의미의 디아크는 전시, 공연, 시민축제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가득하다. 밤이면 건물 전체가 빛을 머금으며, 강변은 하나의 미술관이 된다. 주변에 조성된 설치미술과 조형물들은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걷다 보면 삶의 속도가 줄고, 발걸음보다 생각이 앞선다. 문화란 그런 것 아닐까.
강정보 주변은 습지, 자전거길, 수변 산책로로 이어진다. 철새가 머물고, 아이들이 분수 주변을 뛰노는 이곳은 생태와 문화가 어우러진 평화의 공간이다. 6월의 바람은 따뜻하기보다 시원하다. 계절은 여름을 향하지만, 이곳은 쉼표처럼 고요한 중간지점에 머문다. 나무 그림자 아래 자전거가 지나고, 길 위엔 어린 시절의 기억 같은 순간이 스친다.
도시 외곽에서 이처럼 품격 있는 공공공간을 누린다는 것은 달성군이 가진 문화적 자산이다. 한 번 머문 발걸음은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곳은 우리에게 '편안한 반복'을 허락한다. 강정보는 '그냥 걷는 곳'이 아니라, '깊이 살아보는 시간'을 건네는 장소다. 물 위에 비친 구름을 바라보며, 흐르는 것들에 나를 맡길 수 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한 가지. "흐름 속에 머문다는 것, 그것이 평안이라는 사실을." 강의 속삭임 속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조용히 살아내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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