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만진 소설가
1948년 6월13일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향년이 불과 39세에 지나지 않았다. 단편 '달려라 메로스', 장편 '사양'과 더불어 자신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장편 '인간 실격' 발표로 한창 각광받던 시점이라 더욱 충격이 컸다.
체호프의 '벚꽃 동산'이 준 감동에 취해 집필한 것으로 알려지는 '사양'은 상류층 집안의 몰락 과정을 보여준다. 이 소설 발표 후 해(陽)가 기울어졌다(斜), 즉 몰락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의 사양(斜陽)은 관용어가 되었다. "사양 산업" 등이 그 사례이다.
'사양'에는 패전 뒤에도 여전히 귀족의식에 빠져있는 결핵 환자 어머니, 어머니를 돌보는 딸 가즈코, 전쟁에 징집되어 갔다가 살아 돌아온 마약 중독 아들 나오지, 나오지의 스승인 우에하라가 등장한다. 이들 넷은 하나같이 우울한 일상에 갇혀 있다. '벚꽃 동산'의 큰딸 바랴가 로빠힌에게 막연한 애정을 가지고 있듯이, '사양'의 가즈코도 우에히라에 대한 동경에 젖어 있다. 다만 바랴와 로빠힌 사이가 미묘한 감정 교차만 오가다가 끝나는 데 반해, 가즈코는 아기를 가지게 된다. 그 사이 어머니는 병사하고 동생 나오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인간 실격'과 '사양'의 어두운 분위기와 달리 '달려라 메로스'는 줄곧 교과서에 실려 있을 만큼 밝다. 왕은 걸핏하면 사람을 죽이는 폭군이다. 목동 메로스가 왕 처단을 결심한다. 물론 암살 기도는 실패로 끝나고 메로스는 사형 처분을 기다린다. 메로스가 여동생 결혼식을 위해 사흘만 풀어달라고 왕에게 요청한다. 인질로 자신의 벗을 맡겨둔다는 것이 조건이다. 홍수와 산적의 방해를 뚫고 메르스가 기한 내에 돌아오고, 그것을 본 뒤 왕도 크게 뉘우쳐 선량한 임금으로 바뀐다.
일반 백성을 흔히 양민(良民)이라 했다. 양은 선량(善良)이다. 격양가(擊壤歌)를 부르는 백성들은 반상(反上) 행위를 배척한다. 제 몫이 아니면 도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메르스와 그의 벗 세리눈티우스 같은 인간형이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디오니스 국왕의 환골탈태는 희귀 사례이다. 그 덕분에 그는 소설에 등용되었다. 권력자는 유방백세(流芳百世)의 꽃다운 이름을 역사에 남기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늘 유념해야 한다. 자칫하면 본인은 천세를 '인간 실격' 평가, 후손은 백세를 '사양'의 그늘에 파묻혀 헤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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