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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3.8조가 973만원으로’ 개미 울린 엘앤에프

2026-07-31 06:00

대구의 대표적 2차전지 소재 기업인 엘앤에프가 금융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3조8천억 원 규모의 계약이 사실상 백지화됐다는 내용의 정정 공시와 관련해 한국거래소를 압수수색하고 강제 수사에 착수했다. 엘앤에프는 지난 2023년 2월 테슬라와 3조8천347억원의 하이니켈 양극재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으나, 계약 종료를 이틀 앞둔 지난해 12월 29일 장 마감 후 공급 물량 변경에 따라 공급 계약이 973만316원으로 감액됐다고 정정 공시했다. 계약 이행률이 0.0002%에 불과해 사실상 계약 파기나 다름없다.


수사의 핵심은 '미공개 정보 이용'의 고의성 여부다. 엘앤에프는 악재성 정정 공시를 내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 2일 자사주 100만 주를 처분해 1천281억 원을 조달했다. 호재성 계약으로 주가를 띄워놓고, 내부적으로는 계약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악재를 인지한 상태에서 자금을 서둘러 확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2년의 계약 기간 내내 납품 실적이 전무했다면, 경영진이 몰랐을 리 없다. 악재를 숨긴 채 진행한 자사주 매각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자본시장법 제174조 위반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사측은 "이전부터 준비해 온 정상적인 자금 조달"이라고 강변하지만, 대법원 판례의 잣대는 엄격하다. 법원은 공시가 최종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합리적인 투자자의 관점에서 주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정보가 구체화되었다면 이미 미공개 정보가 생성된 것으로 본다. 특사경은 엘앤에프와 테슬라 간에 오간 이메일, 회의록, 공문 등을 철저히 분석해 공급 차질을 인지한 시점과 자사주 매각 결정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명백백 밝혀내야 한다.


이번 사태로 가장 타격을 입은 이는 'K-배터리'의 미래를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이다. 정보의 극단적 비대칭성 속에서 개미 투자자들은 '폭탄 공시'가 터질 때까지 아무런 방어벽이 없었다. 실제 정정 공시 이튿날 엘앤에프의 주가는 9.85% 폭락했다. 소액주주들의 주머니를 털어 기업의 부실을 메운 꼴이다. 엘앤에프 사태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전형적인 불공정거래 패턴이다. 지난 2016년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당국은 내부자들을 구속기소하고 자율공시였던 기술계약을 의무공시로 전환한 바 있다. 당국은 이번 사태를 일벌백계해 시장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규모 공급계약의 진행 상황을 분기별로 의무 공시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구멍을 메우는 '엘앤에프 방지법' 마련도 시급하다. 개미를 기만하는 시장에 미래는 없다. 신뢰를 잃은 자본시장은 투기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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