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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025-06-19
이은경 스토리텔링연구원장

때는 2012년,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이 도입될 즈음이다.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의 의무 휴업일을 매월 둘째·넷째 일요일로 하고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을 금지했다.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전통시장을 활성화한다는 목적이었다. 유통업계의 반발은 극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가 멀다고 생겨난 대형마트가 '유통 공룡'이라 불리며 한창 몸집을 키워가던 중이었으니. 경제부 유통 담당 기자로서 나는 규제의 필요성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급증하는 대형마트의 매출 규모를 보도하고, 골목상권의 몰락을 보여줬으며, 전통시장을 찾아 대형마트를 비판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악을 물리치는 전사처럼 의기양양하게. 그러던 중 한 통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대형마트 입점 상인이라고 했다. 왜 이런 기사를 쓰냐? 대형마트의 성장으로 사라지는 골목상권을 지키고 전통시장도 살릴 수 있도록, 규제를 통해 유통 질서를 지키고 상생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나라 유통산업의 발전을 꾀하고. 꽤 유창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한숨을 쉬며 그가 질문했다. 일요일에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두부 콩나물 사러 시장에 갈 거냐? 일요일에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대형마트에 입점한 우리도 일요일엔 장사하지 말라는 거냐? 소상공인이 전통시장에만 있냐? 세상 어떤 것도 100 프로는 없구나. 선도 악도 진실도 거짓도. 호기롭게 쓴 기사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10여 년이 지나 2025년, 다시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공휴일 의무휴업 원칙을 되살려 대형마트 3사가 운영 중인 전국 393개 점포는 매월 2회 (평일이 아닌)일요일에 쉬게 된다. 현재 해당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정한 152개 점포도 문닫는 날을 바꿔야 한다. 전국 1천450여 개에 달하는 기업형슈퍼마켓(SSM) 점포도 같은 규제를 받게 된다.


공휴일 의무휴업으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매출이 늘어났다는 통계는 빈약하고 납품업체 및 관련 산업 전반에도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는 반대 주장과,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은 마트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라는 찬성 주장은 10여 년째 유효하다. 하지만 현장의 변화는 이런 오래된 논쟁을 무색하게 만든다.


대형 오프라인 마트가 유통 채널의 최대 통로이던 유통 환경도,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쇼핑 행태도 10여 년 전과는 다르다. 이제 이 세계의 강자는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아니라 배달의민족과 쿠팡이다. 일률적인 규제가 아니라 급변한 유통 환경에 기반한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한 까닭이다.


지금의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논란은 시대 변화에 따라 기존 정책의 유효성을 제고하고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상생의 길을 찾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시장은 이미 단순히 규제 강화거나 규제 완화라는 이분법적 논리로는 상생하며 지속 가능한 유통 생태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힘들고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정치는 부지런히 세심하게 답을 찾아야 한다. 근사한 명분과 그럴듯한 당위성만을 내세워 쉽게 갈 수 없는 길이다. 그것이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주의' 정책에도 부합할 것이다. 10여 년 전 그때, 나는 배웠다. 선한 의지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이은경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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