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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하늘나라에 가려면

2025-06-26 16:51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2018년 6월27일 미국 작가 할란 엘리슨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 중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1975년 영화로 개봉된 과학소설 '소년과 개'가 아닐까 여겨진다. '소년과 개'가 소설로 발표된 때는 1969년이다. 소년 빅과 초능력 개 블러드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다. 빅은 여자를 발견해주는 블러드가 필요하고, 블러드는 먹을 것을 구해주는 빅이 필요하다. 소설은 여자들이 매우 희귀한 까닭을 그들이 지하세계에서 살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지하세계에서 온 여자 퀼라가 빅을 유인한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블러드가 빅을 말린다. 성욕에 무너진 빅은 블러드의 말을 듣지 않는다. 노련한 독자는 개가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성격'으로 묘사되는 이 대목에서 놀라운 결말을 예감할 수 있다.


퀼라는 미끼였다. 그녀는 남자를 지하세계로 데려오는 임무를 띠고 지상에 올라와, 빅을 대상으로 지목했을 뿐이다. 빅은 여자들로 가득 찬 신세계에 환호하지만, 지하세계의 권력은 빅을 침대에 결박해둔 채 정자를 채취하는 '비인간'으로 취급한다. 지하세계의 권력 핵심으로 진입하는 데 실패한 퀼라가 빅에게 "저들을 모두 죽이고 우리가 이 세계를 다스리자!"고 제안한다. 빅은 엄청난 살상 뒤 퀼라와 함께 지상으로 탈출한다. 오래 굶어 반쯤 죽은 몰골의 블러드가 입구에서 빅을 기다리고 있다.


소설 결말이 참담하다. 퀼라가 블러드를 버려두고 가자고 한다. 고민하던 빅이 오히려 퀼라를 죽여서 블러드에게 먹이로 준다. 죽어가던 블러드가 생기를 되찾아 빅과 함께 훨훨 걸어간다. 많은 독자들은 퀼라의 돌연한 절명에 충격을 맛본다. 여러 '성격'들이 죽고, 또 핵공격으로 수많은 인간이 사망할 때에도 거의 오불관언 수준이던 감정 변화를 퀼라의 죽음 앞에서는 통렬하게 일으킨다. 개의 먹이가 되었다는 것 때문인가?


우리나라는 노동환경에서 기인한 질병 탓에 사망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일터 자체에서 생명을 빼앗기는 노동자만도 매년 700명을 넘는다. 그런데 사회에는 충격의 기류가 없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강 건너 불보는 표정을 보여준다. 빈부귀천이나 피부색 등과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부르짖다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다시 인류의 성자로 추앙받는 존재가 그리스도이다. 이 사실을 날마다 되새기지 않고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피조물'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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