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작가의 작품을 보다 다양한 담론으로 바라볼 기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전시기획자라는 직업 덕분에 나는 작품을 만날 기회를 매일 얻는다.
가장 먼저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내 두 눈만을 도구 삼아 작품을 바라본다. 내 눈과 작품 사이에 어떠한 아쉬움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됐을 때 작품의 캡션, 즉 제목과 재료, 사이즈 등의 정보를 습득한다. 제목과 재료로 얻은 힌트로부터 생기는 궁금증들을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쏟아내고, 대화 이후에도 남아있는 의문은 참고 자료를 통해 보충하며 이 작품을 바라보는 내 시선의 근거를 부족하게나마 한 편의 글로 완성한다.
늘 마음 속에 부스러기처럼 남아있던 작품에 대한 물음표들을, 두 달간의 문화산책 지면을 통해 결론 없이 쏟아내는 기회를 가져보고자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이 글을 읽어주시는 귀한 분들이 한 점의 작품과 마음을 나누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길 기대한다.
지난주, 경북 칠곡의 오모크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작가 엄소영의 개인전을 관람했다. 우연한 기회로 마주한 한 작품 앞에서 꽤 오랜 시간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처음,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위를 향해 뻗어나가는 검은 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 관리해 주는 이 없이 속수무책 자라나는 나무와 같다. 흑백의 명암으로만 이뤄진 이 작품에서 이토록 몸을 짓누르는 듯한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은 정돈되지 않은 그것의 가지와 무성한 풀잎들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마음 때문일까? 뻗어나가는 검은 선들의 에너지 안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절규하는 듯한 인물의 형상이 보이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작가의 의도일까?
또다른 작품 'Untitled' 속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형상들은 눈이 4개 달린 얼굴을 가진, 시뻘건 코와 입을 가진 다수의 존재(사람이라고 하기엔 유령, 혹은 인형의 형태에 가까운)로 표현된다. 연극의 시작을 알리며 무대의 커튼이 젖혀지는 듯한 연출 하에 서있는 존재들은, 대부분 우리가 연극 무대의 커튼 뒤에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화려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닌 듯하다. '짜잔' 했더니 나오는 것은 음습하고 무서워 보이는 알 수 없는 존재들. 함께이지만 다정해 보이지 않고, 어깨가 닿일 듯 바로 옆에 서 있지만 전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듯한 이것들은 무엇일까? 작가가 경험한 일련의 사건 혹은 감정의 의인화일까? 혹은 그녀가 마주하는 관계 속 타인의 모습들은 아닐까? (참고로 지면에서 언급한 모든 작품은 엄소영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um_so_young)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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