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정도 원불교 대구경북교구 사무국장
장마 시즌이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장마는 항상 종일 축축하게 비가 내리는 것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국지성 폭우처럼 짧은 시간 동안 특정 지역에 몰아 내리는 양상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드러나는 현상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평소 날씨가 이러하니 종종 소리 없이 비가 내리면 마치 큰 비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우산 없이 밖에 나갔다가 잠깐 사이에 옷이 흠뻑 젖어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실감한다.
이처럼 살다 보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새 무시할 수 없는 큰일로 커져 있는 사례를 종종 본다. 요즘 온 세상이 기후 위기를 말하는 것처럼 설마 하면서 방심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현실의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위기를 눈앞에 직면해야 비로소 그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거나 방향 전환을 시도하지만, 오랜 시간을 통해 반복되어 온 습관은 결코 짧은 시일에 바뀌지 않는다. 온 인류가 길고 긴 노력을 통해 조금씩 회복해 가야만 하는 과제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별로 자각 없이 무디어지고 있는 것이 바로 '도덕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청문회나 뉴스를 통해 드러나는 정치지도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불법적 행위가 내로남불처럼 서로에게 '타격감 제로'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도덕적 불감증에 점점 물들고 길들어져 간다는 것을 느낀다. 성찰 없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일탈은 심화하고, 적반하장으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식으로 자신의 도덕적 타락을 사회 전반의 현상으로 일반화하고 합리화해 간다. 나 자신도 속으로는 그들과 나를 분리하여 '타자화'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정도 일탈은 허용 가능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자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도덕적으로 실수하며 삶은 이율배반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성자(聖者)들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스스로 자각하고 참회하여 개선하는 것으로 인간적인 삶을 완성해 갈 것을 권한다. 선가(禪家)에는 '우행호시(牛行虎視)'라는 표현이 있다. 항상 행동을 소처럼 진중하게 하면서도 정신은 호랑이처럼 깨어있으라는 의미다. 깨달음이란 진리 그 자체를 오득함과 더불어 일상의 행실에서 죄업을 소멸해 가는 두 길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잘 살피는 자각과 성찰로 작은 도덕의 허물이 큰 죄악으로 커나가지 않도록 함으로써 삶을 참되고 복되게 물들여 가는 우리의 일상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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