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는 찜통더위…예년보다 20일 빠른 열대야
‘장마실종’, 무더위는 장기화
폭염·열대야에 냉방병·전력수요 급증…일상도 ‘비상’

지난 2일 전국적인 폭염이 이어진 가운데 대구 수성못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구지방기상청은 당분간 맑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올해 무더위가 예년보다 이른 시기에 찾아오면서 열대야 현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구에선 지난달 19일, 기상 관측 이래 118년 만에 가장 빠른 열대야가 관측됐다. 그 기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3일 대구기상청에 확인결과, 밤사이 대구지역 최저기온이 26℃를 유지하며, 나흘 연속 열대야가 관측됐다. 열대야는 전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 이상 유지되는 현상이다. 경산·칠곡·고령 등 대구인근 경북 내륙지역에서도 밤사이 최저기온이 25℃를 웃돌며 연일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올해 열대야는 발생 시기가 예년보다 빠르고 빈도도 부쩍 늘었다. 대구의 평균 첫 열대야 발생일이 7월9일(1991년~2020년 기준)이란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약 20일이나 빨리 열대야 모드로 접어들었다. 기후변화탓에 북태평양 고기압의 조기 확장과 '장마 조기 종료' 현상이 맞물리면서 열대야 현상이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열대야 장기화 양상도 예측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80년대 당시 대구의 연간 열대야 일수는 평균 8.7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3년(2022년~2024년)간 연평균 열대야 일수는 20일로 급증했다.
열대야가 기약없이 나타나면서 시민 일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온다습한 날씨 탓에 밤잠을 설치는 직장인이 비일비재하고, 에어컨 사용이 빈번해 벌써부터 냉방병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직장인 황모(28)씨는 "열대야 탓에 벌써 며칠째 잠을 설쳤다"며 "너무 더워 자다 일어나서 에어컨을 켜고 다시 잠을 청하는 게 일상이다. 아직 7월 초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혀를 끌끌찼다. 식당 업주 이정훈(29)씨는 "밤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실내 온도가 30℃를 훌쩍 넘는다. 가게 문 닫기 바로 전까지 에어컨을 계속 켜둘 수밖에 없다"며 "밤까지 에어컨 바람만 쐬며 일하다 보니 최근 두통이 잦아졌다"고 했다.
대구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 이른바 '한증막 더위'가 한동안 지속될 태세다. 설상가상 이날 기상청은 제주와 남부 지방의 장마가 종료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발표했다. 당분간 시원한 장맛비 소식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3일 대구와 경산, 경주 등의 낮 최고기온은 36℃까지 치솟았다. 포항은 올들어 가장 높은 35℃를 찍었다. 4일에도 낮 최고기온은 33~36℃ 분포로 예상된다. 지역별로는 대구·경산·경주 36℃, 포항·의성·칠곡 35℃ 등이다. 5일에도 낮 최고기온이 33~37℃에 달할 것으로 예보됐다.
전문가들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평년보다 일찍 북상해 장마전선을 밀어낸 뒤 고온다습한 남서풍이 유입되면서 낮에는 폭염, 밤에는 열대야가 동시에 발생하는 기상 패턴이 더 잦아졌다고 분석했다.
계명대 김해동 교수(환경공학과)는 "예전에 우리가 알던 한반도의 여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해수온이 오르면서 기후 양상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장마 실종' 현상으로 인한 기록적인 폭염과 함께 심각한 가뭄 피해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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