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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차별을 넘어서-장애인 이동권, 경계를 허물다] ①‘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가고 싶은 길’로

2025-07-19 16:53
위 이미지는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장면을, 아래 이미지는 이동권이 잘 보장되는 사회에서 저상버스의 경사로가 제대로 설치돼 휠체어 이용자가 편리하게 탑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버스 내부 승객들의 표정 역시 각각의 상황을 반영해 대조된다. <챗GPT 제작·포토샵 활용>

위 이미지는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장면을, 아래 이미지는 이동권이 잘 보장되는 사회에서 저상버스의 경사로가 제대로 설치돼 휠체어 이용자가 편리하게 탑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버스 내부 승객들의 표정 역시 각각의 상황을 반영해 대조된다. <챗GPT 제작·포토샵 활용>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혈관과도 같아요.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어요. 움직이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우리가 가진 꿈도 펼칠 수 없습니다."


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 최형석 협회장의 말이다. 이 말처럼 이동권은 장애인의 일상과 삶 전반을 떠받치는 핵심 요소다. 그러나 장애인이 마주하는 현실은 훨씬 더 높은 장벽 앞에 있다. '가고 싶은 길'은 많아도 '갈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난 3월 영남일보 디지털팀의 'TK큐' <나는 시민기자 이준희입니다> 촬영 당시, 이준희씨가 대구도시철도 3호선에서 내리는 모습.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지난 3월 영남일보 디지털팀의 'TK큐' <나는 시민기자 이준희입니다> 촬영 당시, 이준희씨가 대구도시철도 3호선에서 내리는 모습.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저상버스, 한 번도 못 타봤습니다"


대구시는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의 교통약자 시설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국토교통부 통계누리 2023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현황을 살펴보면, 대구의 저상버스 도입률은 46.5%다. 시내버스 1천566대 중 728대가 저상버스다. 도입률은 서울(66.7%)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다. 전국 17개 시도평균 도입률(38.9%)보다도 7.6%포인트 높다. 대구도시철도 1~3호선엔 엘리베이터 304대, 전용 개찰구 156개, 장애인화장실 196개소, 장애인 픽토그램 225개, 출입구 엘리베이터 경사로 159개소 등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이런 '숫자'는 장애인의 '체감'과 꼭 일치하진 않는다. 최형석 협회장은 "저상버스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다"고 했다.


실제 대구지역 장애인 상당수는 저상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집을 나서 정류장까지 가는 길부터가 험난하다.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일정하지 않은 인도를 지나야 한다. 정류장까지 도착해도 저상버스를 안전하게 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리프트(경사로)를 내리는 동안엔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한다. 버스 기사조차 작동법을 모르거나 간혹 리프트가 고장 나 승차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민호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팀장은 "정류장 구조나 킥보드, 공용자전거가 놓인 위치에 따라 장애인이 저상버스에 못 타는 경우도 있고, 실제 탑승객이 많지 않아 리프트가 고장나도 제때 고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도시철도는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지만, 승강장 틈에 휠체어 바퀴가 빠지는 위험을 마주하기도 한다. 출퇴근 시간엔 휠체어 전용칸 이용이 어려운 상황이 빈번하다.


지난 4월20일 대구지역 장애인단체들은 국가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에 장애인 차별 사례 31건을 모아 진정을 제기했다. 이 중엔 수요응답형 교통체계(DRT)에 리프트 등 승강설비를 갖추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탑승하는 게 불가능했다는 사례, 버스 승강장 높이가 낮아 리프트 설치가 불가능해 저상버스를 탈 수 없었다는 사례 등이 포함돼 있다.


관(官)의 인식과 장애인의 현실 사이엔 여전히 간극이 있다. 대구시 버스운영과 측은 "현재 상·하반기 정기 저상버스 리프트 작동 점검을 진행 중"이라며 "출퇴근 시간에도 탑승 예약제를 신청하면 (장애인도) 저상버스를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도시철도와 달리 저상버스는 도로마다 여건이 달라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이 크게 없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영남일보 디지털팀의 'TK큐' <나는 시민기자 이준희입니다> 촬영 당시, 이준희씨가 대구 시내 도로를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지난 3월 영남일보 디지털팀의 'TK큐' <나는 시민기자 이준희입니다> 촬영 당시, 이준희씨가 대구 시내 도로를 전동휠체어를 타고 지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15분 거리, 1시간 기다리는 나드리콜


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교통수단은 교통약자 콜택시 '나드리콜'이다.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 이용한 나드리콜은 총 69만4천971건이다.


전체 이용자 중 휠체어 사용자는 30.5%로, 휠체어 없이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평균 대기시간은 18분 48초였는데, 전체 이용자의 16.7%(11만6천227건)가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1시간 넘는 장기 대기도 2만6천983건 발생했다.


특별교통수단(휠체어 차량)은 218대뿐이다. 이마저도 평일 주간에 주로 투입된다. 야간(오후 10시~오전 7시) 운행 차량은 4대에 불과하다. 최근 요금 인상으로 최장거리 기준 4천500원이 된 점은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겐 또 다른 부담이다.


실제 장애인들은 일상에서 불편을 고스란히 체감하고 있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영남일보 시민기자 이준희(38)씨는 "주로 도시철도를 이용하지만, 비 오는 날에 약속이 있거나 병원 치료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나드리콜을 이용하는데 '대기시간' 때문에 언제 호출해야 할지 많이 곤란하다"며 "차라리 일반 택시에 리프트를 다는 비용을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해주면 장애인들이 이동을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최 협회장은 "15~20분 거리 목적지를 가기 위해 최대 1시간30분을 기다린 적도 있다"며 "이용자가 몰리는 출퇴근 시간엔 차량 배차가 더 어렵다. 더욱이 요즘처럼 더운 날 나드리콜을 부르는 건 벅찬 일이다"고 했다.


대구시는 현재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교통약자들을 위해 '나드리콜 합리화 계획' 수립을 진행 중이다. 노약자 이용객을 장기요양등급 1~3급을 받은 사람들로 제한함으로써 사용자 감소를 유도하고 있다. 대구시 택시물류과 측은 "계획이 시행된 후 의미있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며 "나드리콜을 많이 이용하는 시간대 및 사용객을 분석해 탄력적인 운행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 최형석 협회장이 지난 8일, 대구 중구 사무실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는 모습.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 최형석 협회장이 지난 8일, 대구 중구 사무실에서 영남일보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는 모습.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 개선 방안은…


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와 대구교통약자이동편의기술지원센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대구시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대구 시내버스 정류장 3천400개를 점검한 결과 1만968건의 지적사항이 나타났다.


단기로 시급하게 해결할 과제로는 △접근로 상 1㎝ 이상의 빠질 위험 있는 격자에 덮개 설치 △버스정보 조회기기 설치 △보행 장애물 개선 △가로수 가지치기 등이 꼽혔다.


중기적 관점에선 △휠체어 이용자들의 활동 공간 확보 △시각·휠체어 사용자 동선 분리 △휠체어 진출입 0.8m 이상 확보 등으로 나타났다. 장기적으론 △보도와 차도의 높이 적합하게 맞추기 △보행로 유효 폭 2m 확보 △진행 방향 기울기 1/18 이하 설치 등이 거론됐다.


이 보고서는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충분한 활동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며 "보도와 차도 높이를 맞추고 접근로 유효폭을 확보하는 건 시일이 걸리지만, 휠체어 사용자 등 교통약자들이 공공시설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매년 이동편의시설 모니터링 및 시민촉진단 사업을 통해 정류장, 인도, 건물 등 편의시설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최 협회장은 "단순히 설치 여부가 아니라, 장애인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외국에 가면 바닥을 안 보고 그냥 다녀도 휠체어가 엎어질 일이 없다"며 "다양한 사용자의 특성을 고려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도시 설계에 적극 반영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사회는 비장애인에게도 안전하고 편리한 도시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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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디지털콘텐츠팀 서민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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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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