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과거 어느 시인이 읊었다. "인생은 쉬운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 더 많고,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라고. 공감 백배다. 그 가운데서도 예기치 않게 중병(重病)이 우리 몸에 찾아오는 일이다. 그 질병 가운데서 꼽으라면 '암'이다. 암은 누구에게나 공포의 아이콘이다. 요즘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만약 암에 걸린다면…' 충격을 받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지, '조졌다'라는 절망감도 들 게다. 아냐, 그렇다고 좌절만 할 순 없지. 이런 저런 상상을 반복하다보면 이내 머리가 아파진다. '역시 난 범인(凡人)일 뿐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예전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박사라는 분이 있다. 1934년 생으로 올해 91세다. 그는 1998년 간암 진단을 받았다. 이후 폐로까지 전이됐다. 생존율은 5% 미만.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암과 싸우지 않고 잘 사귀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동료 의사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는 "내 몸 속에 있는 암은 곧 슬며시 꼬리를 감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곤 현대의학의 힘을 신뢰하며 삼시세끼 잘 먹고, 잠 잘자고, 규칙적인 걷기운동을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완치에 가까운 회복을 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건강하게 살아가며 수많은 암 환자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암 경험담을 담은 책을 내기도 했다.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그는 이 책에서 "암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큰 선물이기도 했다"라고 썼다. 이른바 '암 친구론'이다. 암을 '적'이 아닌 '동행자'로 여기는 혁신적 마인드다. 그는 암을 '고약하고 예민한 친구'로 표현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깊게 빠지는 늪과 같다는 것. 암은 정확히 파악하고, 조심스럽게 달래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과학적 치료를 받되, 스스로를 믿고 '긍정적 마인드'를 잃지 않는 자세 말이다. '암과 싸우는 전사'가 되기보다 '암과 공존하며 삶을 새롭게 이끌어 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구구절절(句句節節) 고개가 끄덕여 진다.
암 투병 중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얼마전 한 차담회에서 만났다. 적이 놀랐다. 암 환자라고는 믿기 어려울만큼 안색이 좋았다. 이 도지사는 "평소 다져 온 체력이 뒷받침 되니 항암이 순조롭다. 이왕 내 몸에 들어온 암, 함께 살아가며 반드시 내보내겠다"고 했다. 직원 회의에서도 "암세포가 1개월 만에 60% 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확실히 강한 멘탈의 소유자다. 평소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몸에 밴 덕분이리라. 차담회를 마친 뒤 그는 기자에게 "겸손한 자세로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식사도 잘 하겠다"며 "꼭 회복해 산불 피해 지역을 제대로 복구하고, 가을 경주 APEC도 성공적으로 치르겠다"고 말했다. 앞선 한 박사의 긍정적 마인드('암 친구론')를 이 도지사도 체득하고 있음이라.
암은 분명 고통스럽고 두려운 존재다. 하지만 마음을 바꾼다면 암은 자신을 더 단단하게, 더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올해 101세인 일본의 한 여성 약사가 '세계 최고령 약사'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뉴스가 최근 화제를 모았다. 그의 장수 비결은 '흔들리지 않는 배짱'이라고 한다. 또 장수한 세계적 인물들의 그 비결은 대부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한다. 배짱과 호기심은 '마음'이다. 세간사(世間事), 마음 먹기에 달려있음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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