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발목잡는 '바가지 상혼' 방치해선 안된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시민들도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암투병중인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경주에 현장 사무실을 마련하고, 각국 대표단에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숙박, 식사 등 고품격의 서비스 제공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 경주의 일부 숙박업소에서 평소의 최대 10배 수준의 요금을 책정, '바가지 상혼'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경주의 일부 모텔에선 평일 4만원 안팎이던 숙박요금을 회의 기간 예약 때 30만원 이상으로 책정하거나 10만원대 호텔 객실이 60만원대로 치솟는 사례가 파악된 바 있다. 회의 기간엔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 업소도 있다. 아무리 국제행사 특수라 해도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 SNS엔 경주의 '바가지 상혼' 횡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확산하자 경주시는 최근 부랴부랴 시장 명의로 숙박업소에 협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바가지 요금' 문제는 예상 가능한 사안인 만큼 대비에 소홀히 한 것은 안이한 행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APEC 기간의 '바가지 상혼'은 고도(古都) 경주의 이미지 훼손은 물론 국가의 품격에도 큰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심대한 문제다. 일부의 파렴치한 욕심이 성공적인 회의 준비를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특히 이번 APEC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참석, 글로벌 외교 격전지로 부상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낯뜨거운 점만 전 세계에 부각된다면 그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행정기관의 강력한 현장 지도, 업계 자정노력 등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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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없던 달빛철도, 李 정부 첫 예타 면제 사업 되길 바란다
영·호남 시·도지사와 지역 국회의원들이 지난 17일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철도' 건설사업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동선언문에서 "달빛철도 건설사업은 동서 화합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어내는 국가균형발전의 핵심사업"이라며 달빛철도 건설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했다.
달빛철도 사업은 대구∼경북~경남~전북~전남~광주 198.8㎞ 구간을 1시간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동서횡단 철도망 구축 사업이다. 지난해 헌정사상 최다인 여야 국회의원 261명의 공동발의로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됐으나, 경제성 등을 이유로 예타 면제가 되지 않아 출발도 못하고 멈춰 서 있다.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2030년 완공도 차질이 우려된다.
이재명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모두가 잘사는 균형성장'을 국정 목표로 삼고, 5극3특 초광역권을 중심으로 지역이 주도하는 균형성장 전략을 내세웠다. 새 정부 국정과제로 확정된 달빛철도 건설사업 추진을 위한 예타 면제 확정 등 실질적 조치가 시급하다. 다행히 최근 국토교통부가 관련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내년 초까지 이를 마무리해 이 정부의 첫 예타 면제 사업으로 지정하겠다는 구상이다.
국토부의 의지가 표명되면서 공은 경제성 논리로 이 사안을 1년 넘게 미뤄왔던 기재부로 넘어갈 전망이다. 이번 공동선언문에서 밝혔듯, "달빛철도 건설은 이제 단순한 지역의 숙원이 아니라 함께 잘사는 나라로 나아가기 위한 시대적 요구이자 과제"이다. 달빛철도가 이 정부의 예타 면제 1호 사업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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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野, 권성동 구속에 6년 만의 장외집회, 그것도 대구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권성동 의원의 구속과 관련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첫 장소는 동대구역 광장, 21일 오후 2시다. 국민의힘이 장외에서 집회를 여는 건 6년 만의 일이다. 22대 국회 현역 의원 첫 구속이자, 3개 특검 수사 첫 의원 구속 사례였던 만큼 국민의힘이 받았을 충격은 짐작하고 남는다. 이뿐 아니다. 6년 5개월 만에 열린 '패스트트랙' 결심공판에서 소속 의원이 줄줄이 징역형을 구형받고, 의원 다수가 특검 수사 대상이 된 것도 "여기서 뚫리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두 가지 정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권 의원의 구속이 '6년 만의 장외집회'로 반응할 만한 사안이냐는 것이다. 영장전담판사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분명히 했다. 혐의 내용도 심각하다. 통일교인의 표와 조직, 재정 등을 제공하는 대신 통일교 현안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거액을 수수한 혐의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헌법정신에 위배되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 자체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장외집회는 대개 정당이 선택할 마지막 수단이다. 사안의 경중(輕重)을 살피지 못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는 듯하다. 나라 안팎에 큰 시련이 닥쳤는데 정국 경색이 불가피하게 된 점도 걱정이다.
둘째, 왜 하필 대구인가. "권 의원을 잡아갔으니까 대구에 다 모여라"하면 대구시민들이 쉬이 공감할까. 텃밭 대구에서부터 장외 열기를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대구로선 다시 보수의 높은 벽 속에 갇히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늘 이념과 정쟁의 전장(戰場)으로 대구가 내몰리는 게 과연 대구 발전에 도움 될까. 보수의 심장이라며 아무렇게나 취급하면 안 된다.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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