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한 지역과 인재 대표
제품이 시장과 멀어지면 실패하듯, 정책이 현장과 멀어지면 실패한다. 개발 단계부터 사용자가 참여한 제품이 성공하듯, 정책도 설계 단계부터 시민이 참여할 때 성공한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듯, 정책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협치(協治)가 필요하다. 협치는 정책의 입안, 심의, 결정, 집행, 평가, 전 과정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과정으로 행정에서는 '거버넌스(Governance)'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거버넌스가 가장 발달한 분야가 청년정책이다. 청년기본법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청년정책 수립 절차에 청년의 참여 또는 의견 수렴을 보장하도록 명시한 덕분이다. 청년 참여형 예산 편성, 중앙부처 청년보좌역 배치 등 좋은 사례도 있지만, 아직은 대부분 의견 수렴 등 수동형 참여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정치가 담아내지 못했던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지난 10월16일, 대구 수성구에서 열린 '스위스 자치 아카데미'에서 찾았다. 주제 발표자는 스위스 바인펠덴(Weinfelden) 시(市)의 '시정위원'으로서 인구 약 1만2천여 명의 소도시에서 시의회, 시정위원회, 행정기구가 협력하며 운영되는 구조를 소개했다. 시장과 함께 투표로 선출된 7명의 '시정위원회'가 정책의 공동설계자로서 직접 행정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정위원'은 시의원도, 공무원도 아닌 시민의 대표로서 활동하는 봉사직이다. 발표자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직업전문학교 교사로서 일을 하고 있는 34세의 청년이다. 그녀는 사회복지부서를 맡아서 주 1회 행정 회의, 주 3~4회 전문위원회에 참가하며 행정과 시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정위원회'를 시범적으로 도입하자. 지자체장 후보들이 광역·기초 단위에서 주요 부서별 '시정위원'을 러닝메이트(running mate)로 세우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청년정책에는 청년 활동가, 산업정책에는 경제 전문가, 복지정책에는 사회복지 전문가 등 '시정위원' 후보들과 함께 출마하는 방식이다. 이는 시민이 행정의 동반자가 되는 한국 지방자치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시민의 참여가 행정을 변화시키고, 행정의 변화가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든다. 대구시부터 먼저 '시정위원회'를 도입하자. 지방분권의 발원지인 대구시가 '시민참여형 지방자치 모델'을 선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실천적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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