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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캠페인 통·나·무 시즌2]<12>김종태 전 교장 “하늘에 한 약속, 폐지 줍는 손이 멈출 때까지 지킵니다”

2025-10-23 16:55

대구 232호 아너소사이어티 김종태 전 교장
퇴직 후에도 매일 새벽 리어카 끌며 폐지 모아 기부
하늘에 한 다짐 40년 간 지켜온 ‘폐지 줍는 교장’

18일 오전 폐지줍는 교장으로 알려진 김종태(78)씨가 영남일보와 인터뷰에서 폐지를 주워 기부를 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18일 오전 '폐지줍는 교장'으로 알려진 김종태(78)씨가 영남일보와 인터뷰에서 폐지를 주워 기부를 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18일 오전 폐지줍는 교장으로 알려진 김종태(78)씨가 영남일보와 인터뷰에서 폐지를 주워 기부를 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18일 오전 '폐지줍는 교장'으로 알려진 김종태(78)씨가 영남일보와 인터뷰에서 폐지를 주워 기부를 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있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남을 위해 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요."


동네 이웃들은 김종태(78)씨를 '폐지 줍는 교장'이라 부른다. 초등학교 교단에서 40여 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그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리어카를 끌고 나간다. 이웃들이 내놓은 폐지와 고철을 수거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모은 폐지와 고철은 누군가의 학비와 생계비가 된다. 김 전 교장(대구 송일초등 퇴직)은 "교직은 떠났지만, 배움과 나눔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라며 "학교는 아니지만 어디서든 아이들이 잘 공부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쏟고 싶다"고 했다.


김 전 교장은 대구교대에 합격해 1970년 한 시골분교에서 첫 교편을 잡았다. 교직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인 1990년, 대구 동인초등학교에서 발생한 한 사고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특수반 실과 수업 중 한 여학생이 3층 창문 밖으로 추락한 것이다. 다행히 학생은 잔디밭으로 떨어져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다. 그는 "그 순간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제발 무사하기만 하면 평생 남을 위해 살겠다고 빌었다"며 "그 아이가 무사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날 맹세한 약속을 평생 지키며 살고 있다"고 회상했다.


그날 이후 그의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주말마다 틈틈히 봉사활동이나 기부를 이어갔다. 2006년엔 학교 전체가 참여하는 신문지·헌책 모으기 운동을 펼쳐 난치병 어린이 돕기 기금 1천만 원을 마련했다. 교직원과 학생이 십시일반 함께 모은 돈으로 '금계 장학금'도 만들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작은 돈도 모이면 큰 힘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스스로 기부를 경험하는 게 가장 큰 교육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2011년 퇴직 후에도 나눔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퇴직 후 어떤 방식으로 나눔을 이어갈 수 있을까'하고 한동한 고민한 끝에 무릎을 탁 쳤다. 그가 선택한 것은 폐지 수거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우선 달서인재장학재단에 1천100만원을, 자신이 근무했던 학교들에 각 500만원을 기탁했다. 2023년엔 1억원을 기부하며 대구 23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기부활동을 인정 받아 지난해엔 제13회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그는 "요새는 동네 사람들이 먼저 '김 선생에게 드릴 폐지가 있다'며 저를 기다린다"며 "큰 돈을 모은 것도, 갑자기 결심한 것도 아니다. 한 푼 두 푼 모은 세월이 쌓였을 뿐이라 부끄럽다"고 전했다.


김 전 교장은 "리어카를 끌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팔을 다치고, 모과나무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스스로 다짐한 게 있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며 "늘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폐지 줍는 교장'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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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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