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술 대구남부경찰서 봉천지구대 경감
최근 경찰은 교제폭력, 이른바 데이트폭력에 대해 피해자의 의사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 개입하는 매뉴얼을 확립했다. 이전까지는 교제폭력에 대해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처럼 경찰이 적극 개입할 수 있는 법과 지침이 부재했다. 그로 인해 교제폭력이 살인 등 강력사건으로 이어졌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경찰 등 범정부적 관심 속에서 새로운 매뉴얼이 마련된 것이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경찰은 이를 우선 반영해 가해자 제재에 한계가 있었다. 지구대에서 피해 신고를 접수하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구두·서면 경고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
문제는 교제폭력이 결코 개인 간 사적인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복성과 지속성이 강하고, 결별 후에는 스토킹으로 이어지며 강력범죄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가장 위험한 단계라는 것이다.
이번 경찰 방침은 '스토킹처벌법'의 입법취지와 과도한 확대 해석 문제 등으로 학계와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나뉘었지만, 법무부 유권해석을 통해 적용 가능성이 확인됐다. '스토킹처벌법'을 근거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거나 경찰의 개입을 원치 않더라도 긴급성과 반복 우려 등 위험성이 인정되면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전기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 긴급응급조치를 직권으로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12 신고를 받고 최초 출동한 경찰관이 우선적으로 긴급응급조치를 취하고, 이후 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이 잠정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또한 사실혼 관계로 판단될 경우 가정폭력으로 의율하여 긴급임시조치도 적극 신청하도록 했다. 이는 피해자를 적극 보호하고 교제폭력을 공공안전 영역에서 다루겠다는 제도적 전환을 의미한다.
경찰청은 제도적으로도 스토킹·데이트폭력 등 보복범죄 방지를 위해 고위험 범죄 피해자 보호 민간경호 서비스 예산을 2024년 7억 원에서 2025년 24억 5천만 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이는 피해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지만, 점점 위협이 증가하는 만큼 향후 예산을 더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이와 함께 지난 8월 경찰은 교제폭력으로 인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전국에 '교제폭력 대응 종합 매뉴얼'을 제작·배포했다. 이 매뉴얼은 출동 초기부터 가해자를 격리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단계별·구체적 대응 방안을 마련해 일관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중요한 진전이다. 무엇보다 국회가 나서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엄정대응을 위한 교제폭력 대응 입법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교제폭력 대응에서 경찰은 피해자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기관이다. 무엇보다 경찰관 개개인의 태도 변화가 중요하다. 교제폭력을 '연인 간 사소한 갈등'으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잠재적이고 중대한 사회적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 피해자의 말을 세심히 경청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며 두려움과 불안을 줄여줄 수 있는 숙련된 대응도 필요하다.
교제폭력은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다. 이번 제도적 변화는 경찰이 적극 개입할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이다. 경찰은 '더 이상 피해자를 혼자 두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피해자 중심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지자체와 관련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필자는 지역 지구대 팀장으로서 교제폭력 대응이 단순한 사건 처리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경찰의 본질적 책무임을 강조하고 싶다.
김인술<대구남부경찰서 봉천지구대 경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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