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새 패러다임 기업승계] 일본 중소기업의 생존 방식 'M&A'<4>
일본 오사카상공회의소 입구 모습. <오사카상의 제공>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사태로 많은 기업들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왔을 무렵, 이웃 일본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M&A 장터를 선보였다. 중소기업을 주 고객으로 인수합병을 알선하는 이른바 '기업 복덕방'이 잇따라 선보인 것이다.
후계자를 찾지 못하거나 사업이 벽에 부닥치자 공들여 키워온 기업을 M&A 시장에 내놓는 중소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의 필요성을 높인 것이다. 기업 복덕방은 1997년 오사카상공회의소가 설립한 '비공개기업 M&A시장'이 최초였다. 또 이듬해 도쿄상공회의소도 'M&A 지원 시스템'을 통해 중개업무를 시작했다.
이처럼 공신력 있는 경제단체가 M&A를 중개함으로써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비밀이 보장된다는 것이 장점으로 평가됐다.
스미토모 히사시 (왼족 첫째) <주>스미토모 대표가 오사카상공회의소 사업승계·인계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야마모토제대소 인수 협약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사카상의 제공>
#1. "기업을 남긴다는 것, 지역을 지킨다는 일"
"아버지의 공장을 잇는 것은 단순한 세습이 아니라 거래처와 기술, 사람을 함께 이어가는 일입니다."
일본 오사카시의 <주>스미토모 2대 대표인 스미토모 히사시 사장의 말이다. 스미토모는 식품 포장 자재를 생산하는 지역 기반 제조업체로, 2대 대표인 히사시 사장이 오랜 기간 회사를 이끌어 왔다. 최근 들어 경영을 맡은 아들에게 점진적으로 승계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한편 식품 봉투를 만드는 야마모토제대소는 후계자 부재로 사업 지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히사시 사장의 아들은 지난 4월 야마모토제대소를 M&A 형태로 인수했다. 아버지 회사의 가업승계와 함께 거래 관계에 있던 중소기업의 기술과 고용을 함께 인수한 성공사례다.
오사카상의 관계자는 "신뢰할 수 있는 거래처가 사업을 이어받는 것은 지역경제에 매우 긍정적인 사례"라며 "이 모델을 통해 중소기업 간의 상생형 승계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고바야시 마사토시(왼쪽 둘째) 고바야시 오토 대표와 사노 토모카즈 (왼쪽 셋째)가 오사카상공회의소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사카상의 제공>
고바야시 오토 전경. <고바야시 오토 제공>
고바야시 마사토시(왼쪽) 고바야시 오토 대표와 사노 토모카즈가 기업 인수합병을 결정한 뒤 작업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바야시씨 제공>
#2. 1996년부터 오사카 이바라키시에서 '고바야시 오토'를 운영하던 고바야시 마사토시 대표는 5년 전부터 승계 문제를 고민했지만, 자녀가 타 기업에 근무 중이어서 가업을 잇기 어려웠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고바야시 대표는 일본정책금융공고가 주최한 사업승계 매칭 행사에도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자동차 정비 분야 창업을 꿈꾸던 사노 토모카즈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첫 대면 자리에 부터 사업 인수 절차와 준비 서류, 향후 일정 등을 조율했다. 계약서 작성과 주요 계약 이전 절차를 30회 이상 자문했고, 인수자가 창업자 신분임을 감안해 일본정책금융공고 제출용 창업계획서 작성도 세밀하게 진행했다.
이에 2024년 8월 고바야시 오토는 창업 희망자인 사노 씨가 경영하게 됐다. 사업을 인수한 사노 씨는 "처음부터 창업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다"며 "안정적인 사업을 이어받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고바야시 전 대표도 "중개기관이 절차와 리스크, 자금조달까지 상세히 설명해 줘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첫번째 사례는 공급망 단절로 인한 '연쇄폐업'을 막은 '서플라이체인 승계' 모델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서플라이 체인 사업 승계는 제조 공정 등을 담당하는 거래처나 판매처가 후계자 부족 등으로 폐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래처의 사업을 승계해 서플라이 체인의 유지 발전을 실현하는 것이다.
두번째 사례는 창업 희망자에게 기존 사업체를 승계시키는 모델로, 일본 지방 중소기업의 지속성을 높이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개인사업자와 창업 희망자의 성공적 사업승계를 통해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소규모 사업의 세대교체형 M&A 정책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이런 기업간 인수합병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례의 인수합졍 과정을 지원한 곳이 바로 오사카상공회의소의 사업승계·인계지원센터라는 것이다. 센터는 기본적인 기업매칭 뿐만 아니라 외부 전문가 투입을 통한 승계계획 수립과 계약서 작성까지 지원했다.
◆'스몰 M&A' 시장을 열다
오사카 상공회의소는 1997년 일본 전국 최초로 '비공개기업 M&A 시장'을 개설했다. 2011년에는 영세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스몰 M&A 시장'을 추가로 운영하며 현재까지 수백 건의 상담 및 성약 사례를 축적하고 있다.
센터의 핵심 역할은 △경영자 고령화 기업 대상 승계진단 △후계자 탐색 및 M&A 매칭 △전문가 자문 및 계약 지원 △자금 연계 컨설팅 등이다.
일본 경제산업성 통계에 따르면 오사카 내 중소기업 10곳 중 7곳이 60세 이상 대표가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 가운데 후계자 승계가 이어지고 있는 곳은 절반 이하다.
이에 따라 오사카상공회의소는 상공회의소 내에 '기업승계 인수·지원센터'를 두고 중소기업진단사,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인력과 연계해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중소기업M&A를 지역 경제 유지의 핵심 축으로 위치 시킨것이다. 중소기업의 지속성 향상에 빼놓을 수 없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사카상공회의소 사업승계·인계지원센터.<오사카상공회의소 제공>
M&A이미지
◆ M&A와 자금 지원…정책금융과 보조금의 이중 트랙
오사카 상공회의소의 사업승계지원 활동은 단순한 기업 이전이 아니다. 이는 '기술 이전+고용 유지+자금 순환'이라는 세 가지 축을 묶는 지역 경제 보존 정책이다.
이러한 인수합병을 통한 중소기업 승계는 필연적으로 공공자금 지원과 맞물려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오사카 상공회의소는 올해도 '중소기업 생산성 혁명 추진사업 사업승계·M&A 보조금' 공모를 진행했다. 대상은 오사카부 내 중소·소규모 사업자로, 상공회의소는 매년 2개 내외의 기업에만 상담 및 확인서를 발급한다.
보조금은 기계설비 교체, ICT 도입, 인수자금 일부 보전 등에 활용되며 금액은 수백만 엔 규모다. 단 확인서 발급이 보조금 선정 보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해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센터는 상공회의소 내 '경영상담실'과 협력해 자금지원 상담, 경영혁신 지도, M&A 전문가 자문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 특히 일본정책금융공고·상공회의소·지방자치단체 간 3자 협력이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 모델은 한국의 지방 상공회의소나 중소기업 지원기관이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준다. '가족 내 승계'에 치우친 한국의 승계 지원 정책과 달리, 오사카는 '거래처 승계'와 '청년 창업형 M&A' 까지 정책 트랙에 포함시켰다. 결과적으로 지역 중소기업 생태계 전체를 유지하는 연결 고리로 작동하고 있다.
오사카상공회의소 전경.<오사카상공회의소 제공>
◆ '폐업' 대신 '승계'을 선택
오사카부 사업승계·인계지원센터의 상담 건수는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특히 '제3자 승계(M&A)' 상담이 가파르게 늘고 있으며, 연 2만 건을 넘겼다는 보고도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중소기업 승계정책이 가족 중심에서 '시장형 승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에서 오사카 모델은 참고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방 상공회의소가 공공성과 민간 연결성을 동시에 갖춘 '중간지원조직'으로 기능하면서 지자체·정책금융기관과 의사결정 라인을 공유하는 점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M&A가 단순한 매각이나 투기 수단이 아닌, '지역의 기술과 일자리를 보존하는 도구'로 위치한다는 점이 주목되는 부분이다.
카네다 아키 사업승계·인계지원센터 총괄책임자는 "기업이 사라지면 지역의 노하우와 고용도 같이 사라진다"며 "승계는 사업의 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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