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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북극•히말라야에 새긴 첫걸음…전세계 6곳 신루트 개척

2025-11-26 10:04

▮출향인사를 찾아서/ 상주 출신 고산거벽 등반 김세준 대장
대한민국 고산거벽 등반 1세대
치밀하고 집요한 성격으로 도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여정
미지의 대상에 새길 내고 싶은 욕구
“원정대 길이 곧 인류 위한 첫 걸음”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은경 기자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은경 기자


산악 전문 매체 '월간山'은 2019년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국 산악계를 빛낸 50인'을 생사를 떠나 선정했다. 여기에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미터급 16좌를 완등한 엄홍길 대장, 최초의 히말라야 탐험활동에 나섰던 故 박철암, 평생 산악조난 활동을 벌였던 故 변완철과 故 성산, 故 남행수 등이 포함됐다. 상주출신의 세계적인 암벽 등반가 김세준 대장(익스트림라이더 대표강사)은 고산거벽 전문 탐험가로 50인 명단에 포함됐다. 김 대장은 "되돌아보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 갔다 한 날들이네요.(웃음)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 그 곳에서 보았던 가슴 절절한 무수한 풍경들이 있어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라고 전했다.


◆고산거벽 1세대 등반가


누구나 한번쯤 '운명의 순간'이 있다. 별 생각 없이 만났던 사람, 예기치 않게 들렀던 장소, 쉽게 흘러버렸던 시간이 어느 순간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결정적 장면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암벽 등반 일인자 김세준 대장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서른이 된 1998년 어느날, 스포츠 신문 기사를 보고 무심코 찾아간 지하 암벽장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릴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젊은시절에 한 5년쯤 헬스를 했는데, 혼자하는 운동에 별 재미를 못 느끼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스포츠신문에 실린 암벽등반 기사를 보고 찌릿한 전율을 느껴 찾아갔죠. 그때까지만 해도 제 인생이 이렇게 풀릴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아웃도어 매니아 부부가 운영하던 지하 암벽장 시설은 매우 열악했다. 여름에 비가 오면 물이 차서 매트가 둥둥 떠다니고,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설은 낙후되고, 취약했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기대감과 비슷한(?) 류의 사람을 만난 것에 들떴기 때문일까. 그는 틈만 나면 지하로 가 미친 듯이 암벽에 몰입했다.


"암장의 사람들은 주변에서 만나지 못한 자유로운 영혼들이었어요. 끊임없이 도전하고, 한없이 몰입하는 그들과 교류하면서 엄청 행복했지요. 저는 빨리 그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고, 암벽도 배우고 싶어서 일년에 52주 중에서 51주는 암장을 찾아갔어요. 오죽하면 주인 부부가 '우리 암장에 미친 사람이 하나 있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토록 행복했던 인연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를 암벽으로 이끌어준 암장 주인 김승철이 히말라야에서 추락사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김 대장은 이후 2002년부터 이 암장의 대표강사를 맡아 인공등반과 고산거벽 등반 기술 전수에 힘쓰고 있다.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세준 제공>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세준 제공>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세준 제공>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세준 제공>


◆전세계 6곳 신루트 개척


그는 고산거벽 전문가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탐험가다. 수직에 가까운 아찔한 거대 암벽 위에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다.


첫 해외 등반은 1999년 캐나다 부가부였다. 암벽등반을 배운지 1년 만이었다. 의욕은 하늘을 찌를 듯 컸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국내에서 연습한 그에게 캐나다의 거대한 암벽은 결코 호락하지 않았다.


특유의 집요함과 치밀함으로 내실을 다진 그는 이듬해부터 다시 차분하게 시동을 걸고 히말라야, 북극,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과 죽음의 공포를 헤쳐나갔다.


그가 개척한 고산거벽 신루트는 전세계 6곳이다. 미국 요세미티의 높이 1천미터 대암벽 엘 캐피탄을 단독 등반하고, 2008년 히말라야 메루피크(6600m) 북벽, 파키스탄 히말라야 라톡1(7,145m) 북벽, 키르기스스탄 천산산맥 악사이산군 코로나 5봉(4,860m) 등을 신루트 개척했다. 그는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대한민국 산악대상, 2014년 대한민국 개척등반상을 수상했다.


"키르기스스탄에 갔는데 루트 이름이 인상적이었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러시아가 개척후 북한을 찬양하는 뉘앙스의 이름을 지은 것이었죠. 은근 부화가 치밀어 그 옆에 있는 봉우리에 6일 동안 매달려 개척을 하고 '코리안'이라고 이름 지었죠."(웃음)


◆"나의 도전, 인류 위한 첫 걸음"


2004년 캐나다 배핀섬 원정은 산악계를 떠나 한국 사회 전체에 큰 화제가 됐다. 히말라야나 알프스, 요세미티 정도에 머물던 한국 산악계가 새로운 대상지를 찾아 나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끈 원정대는 이 등반에서 초등 루트 2개를 개척했다.


"한 4일쯤 올랐을 때쯤 바위 중간에 작은 표식이 보이더라구요. 누군가 이 곳을 왔다 갔다는 흔적이었죠. 속에서 욕이 올라왔지만 깔끔하게 포기하고, 내려와 다른 루트를 찾았습니다."


신루트 개척을 위해 떠난 등반에서 이미 누군가가 다녀간 길을 다시 올라갈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남자 셋이서 4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들어갈 때 바다가 2~3m 두께로 얼어 있었어요. 50도까지 떨어진 북극의 암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죠. 나중에는 식량도 부족했는데 혹시나 해서 가져간 낚시대를 바다 사이의 크랙에 드리웠죠. 한나절 만에 고기 한 마리를 잡았어요."


그는 다녀온 수많은 등반 중 2008년 인도 히말라야 메루피크 북벽 세계 초등을 가장 기억에 남는 등반으로 꼽았다.


"메루피크 북벽 원정은 아무도 오르지 못한 거벽에 길을 내는 '등반가의 꿈' 같은 여정이었습니다. 50m짜리 한 피치를 이틀동안 등반하고, 강한 눈보라 때문에 포탈레지에서 초콜릿 몇 알로 50시간을 버티기도 했습니다. 10일이라는 시간이 10년 같았죠. 하지만 김태만, 조우영, 왕준호, 김형욱과 함께 마침내 하늘로 오르는 길을 열었습니다."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 고독하고 외로운 여정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가 생각하는 거벽등반의 매력을 물었다.


"그냥 산에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어요. 어쩌면 미지의 대상에 새 길을 내고 싶은 욕구 아닐까요. 우리 원정대가 내는 길이 곧 인류의 첫 걸음이 되니까요."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세준 제공>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세준 제공>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세준 제공>

우리나라 고산거벽 등반 1세대 김세준 대장은 산에서 보낸 날들에 대해 "저승길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한 날들이다. 인샬라, 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많은 인연들과 가슴 절절한 풍경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김세준 제공>


◆젊은 클라이머 지원 절실


2020년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는 한국 암벽등반에 직격탄을 던졌다. 해외 원정대가 올스톱 되었기 때문이다. 엔데믹이 되면서 취미로 암벽을 찾는 인구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전반적인 문화는 여전히 침체 상태다.


"안타까운 것은 코로나 이후 기업체 후원이 줄면서 업계 전체가 침체국면에 있다는 것이에요. 이대로 가다간 우리나라 클라이밍 문화의 존폐가 우려스러울 지경이에요. 젊은이들을 키우기 위한 정부 지원 등이 절실합니다."


고독과 번민, 극한의 고통을 이기며 대한민국 고산거벽 등반의 역사를 써온 김세준 대장이 꾸는 다음 꿈은 무엇일까.


"글쎄요, 산쟁이가 다른 게 있을까요. 제 오랜 파트너 왕형준, 김태만과 함께 떠날 마지막 등반을 고민중이에요. 파키스탄 어딘가에서 신루트를 개척하고 있지 않을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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