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중년을 의미하는 '영포티(Young Forty)'란 단어가 2030세대 사이에선 '젊은 척하는 꼰대'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직장에서 종종 '영포티'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가 경험한 40대 차장은 겉보기에 누구보다 젊고 감각적인 인물이다. 새로 뜨는 패션 브랜드나 카페 정보를 먼저 공유하고, 참신한 기획 아이디어를 내며 "센스 있다"는 평가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일에 대한 태도 앞에서는 달라진다. "조롱의 뜻이 아니라, 차장님을 보면 외적으로 정말 '영(young)'해요. 옷 스타일도 세련되고, 신입보다 더 빠르게 트렌드를 읽으니 멋있죠. 그런데 정작 회의할 땐 '나는 20대때 밤새워 일했다'는 말을 반복하세요. 요즘 젊은 직원들은 의지가 없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요. 모든 40대가 같진 않겠지만, 그럴 때마다 최근 유행하는 '영포티'란 단어가 떠올라요."
젊은 중년을 의미하는 '영포티(Young Forty)'란 단어가 조롱의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원래는 자기관리에 적극적인 40대를 의미했지만, 지금의 2030세대 사이에선 '젊은 척하는 40대'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젊은 세대는 단순히 외형적인 특징보다 언행 불일치가 부각되며 불편한 감정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미디어에서 언급되는 '세대 갈등'의 문제는 아니라고 꼬집었다.
'영포티' 단어의 등장은 10여년 전으로 올라간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 2015년 펴낸 책 '라이프트렌드 2026'에서 '젊게 살고자 하는 40대'를 이르는 말로 처음 사용됐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맞벌이 가구 비율은 40% 안팎에 그쳤다. 평균 출산 연령도 28세로 40대 대부분은 자녀가 중·고등학생이었다.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40대 미혼자 비율이 높아지면서, 가족 부양을 최우선으로 두던 전통적 중년상 대신 개인의 경험에 투자하는 신중년이 등장했다. 유통업계에서도 트렌드에 민감하고 구매력을 갖춘 이 신중년 세대를 '영포티'라 칭했다. 14면에서 계속
젊은 중년을 의미하는 '영포티(Young Forty)'란 단어가 최근 온라인 상에서 변형된 의미로 쓰이고 있다. 사진은 챗GPT가 생성한 영포티 이미지. <영남일보 DB>
◆젊은 척하는 꼰대?…멸칭어 된 '영포티'
하지만 이제 영포티는 멸칭어가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2030세대를 중심으로 40대를 희화화하고 비꼬는 단어로 퍼졌다. 젊은 세대에서 사용률이 높은 아이폰을 40대 상사가 쓰는 것을 두고 영포티라며 조롱한 글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온라인에서 세대를 나눠 싸울 때 영포티란 단어를 앞세워 공격하기도 하고, 평소 즐겨 입는 옷을 두고 '이거 영포티 브랜드인가요?'라고 질문하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
공기업 차장 신모(46)씨는 "요즘 영포티란 말이 조롱처럼 사용된다는 걸 보고 당황스러웠다"며 "억지로 젊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원래 좋아하는 스타일일 뿐인데 그걸 두고 비웃는 분위기가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 직원들과 잘 소통하려 노력해도 결국 영포티로 낙인찍힐까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영포티가 2030세대와 갈등하는 원인으론 경제적 측면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젊은 세대는 높은 주거 비용과 치열한 경쟁, 불안정한 고용 환경 속에서 미래 전망을 갖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반면 시장에서 40대는 주소비층이다. 한 온라인 쇼핑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남성의 골프웨어 구매액은 전년보다 37% 늘었다. 직장에서도 호봉 체계상 더 많은 월급을 받아간다. 일정 수준 경제력을 갖추면서도 비교적 가까운 세대라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계에서 칭하던 '영포티'란 단어가 트렌드에 민감하고 구매력을 갖춘 40대에서 '젊은 척하는 40대'란 의미로 변질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2030 "실제론 조롱 안 해…세대 아닌 소통의 문제"
다만 실제 반응은 사뭇 다르다. 온라인에서는 패션, 스타일 등 외형을 두고 원초적인 비난이 난무한다. 하지만 취재진과 인터뷰한 젊은 세대들은 권위적 태도를 문제 삼았다. 3년차 직장인 장모(30)씨는 "영포티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지만, 애초에 영포티 세대도 취업난을 겪은 세대라 상대적 박탈감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문제는 태도다. 40대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MZ를 흉내내면서 수평적인 척하지만 실제 소통에서 위계를 앞세우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영포티에 적대심을 느끼는 경우도 소수다. 청년정책 플랫폼 '열고닫기'가 최근 20~49세 청년·직장인 3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영포티(Young Forty)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71%가 커뮤니티와 댓글 등을 통해 영포티 조롱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89.1%는 '일부 사례를 전체 40대의 이미지로 일반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응답했다. 왜곡된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부정적 인식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20대 공무원 B씨는 "온라인 상의 영포티 조롱이 실제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몇몇 극단적인 사례를 근거로 세대 갈등으로 연결짓는 분위기가 더 불편하다. 밈을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하는 건 과하다"고 했다.
원규희 열고닫기 대표는 "영포티 논쟁은 세대 간 대립이 아니라, 결국 표현 방식과 커뮤니케이션의 태도 문제임이 이번 조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면서 "영포티를 나이에 대한 낙인으로 소비하기보다, 배우고 존중하며 함께 일하는 기준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담론이 확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도 "실제로 40대를 조롱하는 젊은 세대가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미디어에서 과하게 부풀려진 프레임이 아닐까"라고 꼬집었다.
젊은 세대는 영포티 담론에 대해 실제 40대를 영포티라 조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하며, 세대 갈등보다 "태도의 문제"라고 봤다. <게티이미지뱅크>
◆영포티도 '88만원 세대'…전문가들 "허구적 현상"
영포티 담론 자체가 허구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중은 최근 유행하는 옷을 40대가 구매하는 것에 주목하지만, 이들은 원래 애용하던 브랜드의 신제품을 구입하는 것뿐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아이폰 첫 모델도 영포티 세대가 20대일 적 나왔다. 이와 관련해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포티 담론은 많은 개인을 특정 개념으로 묶는 마케팅 용어의 오용이 만든 환상"이라며 "세대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다 있다. X세대 시절에도 윗세대에 대한 유사한 조롱이 있었다. 영포티 조롱은 이름만 바뀌어 재현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세대 교체가 빠르게 이뤄지며 분노의 대상이 바뀐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예전에는 한 세대를 30년으로 봤지만 지금은 10년 단위로 세대 교체가 일어난다. 기술이 발전하고 우리나라는 특히 압축적으로 성장이 이뤄지면서 세대 갈등도 즉각적으로 표출되는 구조가 됐다"고 했다. 이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격의 대상은 86세대였다. 86세대가 나이를 먹고 물러나는 시점에서 40대가 갈등의 표적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포티 현상이 중간 세대라면 누구나 겪는 고충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으로 직장에선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하면서도 말단 직원들과도 소통해야 하는 중간 위치에 있기 때문. <챗GPT 생성>
또 영포티 세대는 '88만원 세대'로 현재 2030처럼 취업난을 겪은 세대다. IMF 이후인 2000년대 취업에 허덕이다 월 88만원밖에 받지 못한 이들이 영포티다. 지금도 비정규직 등 고용 불안정에 놓여 있기도 하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조기 퇴직의 역설과 사회제도의 구조적 지체' 논문에 따르면, 50세 이전 퇴직자의 재취업률은 80.6%로 50세 이후 퇴직자(86.3%)보다 낮았다. 상용직 재취업 비율도 30·40대 퇴사자가 54.3%로, 50세 이후 퇴직자(57.9%)보다 3.6%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포티 담론이 경제적 격차 문제와 연결된다는 시각에 대해 정 교수는 "40대가 재력을 갖춘 안정적 세대라는 시각은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다"며 "취업과 사회 편입 시기가 늦어지면서 30대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지금의 40대를 기득권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영포티 현상이 세대 갈등보다 중간 세대라면 누구나 겪는 고충이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의 중위연령은 46세다. 한 대기업 40대 팀장은 "직장에서 윗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하면서도 말단 직원들과도 소통해야 하고, 또 승진에 신경써야 한다. 늘 눈치의 중심에 서 있다보니 간혹 의도치 않은 오해를 사는 듯하다"며 "세대 갈등이란 거창한 담론으로 주목하기보다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한다"고 했다.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