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주)루트랩 대표이사
한국 금융체계는 지금 거대한 디지털 전환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지난 6월 국회에 제출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그 변화를 제도적으로 이끌 첫 단추이며, 그 중심에는 원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 가치와 1대1로 연동되어 안정적 거래를 보장하며, 금융과 행정이 신뢰를 매개로 연결되는 디지털 인프라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20일 국정감사에서는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방향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죠. 금융위원회는 "연내 발행 가이드라인과 관리 기준을 마련하되, 이자 지급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준비자산은 100% 안전자산으로 예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이 통화정책과 결제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중앙은행이 준비자산과 유통망의 감독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민간의 혁신과 공공의 통제가 교차하는 이 지점이 바로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가상화폐'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신뢰 기반의 디지털 결제 시스템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중앙은행과 민간이 협력하는 형태로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해외 송금과 디지털 결제를 혁신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 흐름에 발맞추되, 단순 모방이 아니라 행정과 복지를 아우르는 공공형 모델을 구축해야 합니다. 지역화폐, 복지수당, ESG 인센티브 등을 스테이블코인 기반으로 통합하면 예산 효율성과 정책 투명성이 크게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죠.
대구·부산·인천 등 일부 지자체는 이미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활성화하며 실증 성과를 축적해와 훌륭한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방자치단체의 노력과 중앙정부의 제도가 연결된다면,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은 제도적 진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해봅니다. 물론 중앙은행과 금융당국, 지자체,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다층적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하고, 법정화폐 담보율·유통한도·소비자 보호기준을 명확히 하는 노력은 필수적이겠으며, 단기 금융이익보다 공공서비스와 연계된 지속가능 구조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게 만드는 화폐가 아니라, 오래 믿을 수 있는 화폐여야 합니다. 시장 확대보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결제 인프라가 우선이겠으며, 법제화 과정에서도 '혁신의 속도'보다 '신뢰의 구조'가 중요하며, 준비자산의 투명한 관리, 발행사 책임 강화, 소비자 보호장치 마련이 병행돼야 합니다. 특히 한국은행이 제시한 '결제 안정성과 통화주권 보존' 원칙은 향후 제도 설계의 기준점이 될 것입니다.
현재 언론에서는 스테이블 코인 제도와 관련하여 속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저는 방향의 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은 반드시 공공성과 신뢰성을 기반으로 한 제도적 혁신이어야 합니다. 정부는 규제보다 인프라 조성에, 기업은 투기보다 사회적 신뢰망 구축을 우선하여야 합니다. 혁신은 빠를 수 있지만, 신뢰는 천천히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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