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대구 체육인의 밤 행사에서 대구 체육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구체육상 대상을 받은 임성욱 대구시태권도협회 상근부회장.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지난 25일 대구 경상공고 체육관에서 도복을 입은 임성욱 대구시태권도협회 상근부회장이 기합을 넣고 있다. 이지용기자
임성욱 대구시태권도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18일 대구시체육회가 수여하는 '대구 체육상'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수상했다. 태권도 국가대표로 출발, 경상공고 태권도코치에서 교장까지 오른 독특한 이력의 그를 지난 25일 경상공고 체육관에서 만났다.
▲대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대구 체육인으로서 최고 영예인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궁금하다.
"감사하다. 가장 기뻐해줄 아내와 가족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대구 태권도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더 낮은 자세로 노력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지역 체육 발전과 후배 체육인, 태권도인들을 위해 맡은 역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교직과 일선 현장에서 물러난 요즘의 일상은 어떠신지.
"대구시 태권도협회상근부회장으로서 현장과 행정을 잇는 일을 하고 있다. 직접 수업이나 지도에 나서는 때와는 다르지만, 협회의 운영 전반을 살피고 제도 개선, 현안 조정, 후배 지도자들과의 소통에 집중하고 있다. 한마디로 차세대 인재 양성에 힘을 보태는 일이다.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기에 오히려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무게감이 있다. 여전히 태권도는 내 삶의 일부라는 것에 안도와 행복을 느낀다."
▲태권도와의 첫 인연은 언제부턴가. 이 종목에 평생 헌신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당시 대구 수창초 입학식 때, 도복을 입은 선배들이 멋있었다.(웃음) 저는 몸이 왜소했고, 태권도를 하면 덩치가 커질까 싶었다. 아버지 손을 잡고 학교 태권도 선수부를 찾아간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임 부회장은 경북체고 재학 시절인 1986년 태권도 국가대표로 선발, 미국서 열린 제1회 월드컵 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87년 계명대 입학 후엔 제8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 1987년 대통령상 체육훈장 기린장과 1988년 대통령상 체육훈장 거상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태권도 선수 생활을 18년간 했다.
"돌아가신 안재복 선생님과 중·고교 시절 윤종욱 선생님, 오일남 선생님 덕분에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세 분께서 태권도 기술보다 바른 언행, 인성을 먼저 가르쳐 주셨다. 스승들이 '태권도는 발차기가 아니다. 삶을 다스리는 공부'라고 하셨다. 그게 어린 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세계 챔피언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12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며 피와 땀의 의미를 온몸으로 깨달았다. 인생의 전진을 위해 노력 또 노력한 끝에 챔피언이라는 타이틀까지 도달했다.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제자들을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며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때부터 태권도는 제게 직업이 아닌 사명이 됐다. 태권도는 제가 헌신한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 삶의 길을 열어준 스승이다."
▲경상공고 교장 재직 시절을 포함해 오랜 시간 교육자로 활동했다. '운동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덕목이 있었는가.
"실력보다 인성 아닌가. 또 결과보다 과정 아닌가. 운동은 결과가 분명한 세계다. 그럼에도 저는 학생들에게 '성적은 기록에만 남는다. 하지만 사람 됨됨이는 평생 간다'고 가르쳤다. 예를 들면 훈련에 성실하게 임하는 태도, 규칙을 지키는 습관, 동료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강조했다. 이게 갖춰지지 않으면 어떤 성과도 오래가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권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
"패배를 대하는 자세와 이후의 행동들이다.힘들 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과정이야말로 운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이다."
▲1993년 경상공고 태권도 코치에서 출발해 지난 2024년 교장으로 퇴임했다. 독특하고도 귀한 커리어인데.
"특별한 비결은 없다. 맡은 자리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 코치로 출발했을 때,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성적 내는 지도자이기 전에 아이들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자고 다짐했다. 기술 지도뿐 아니라 학업과 인성을 더 엄격하게 살폈고, 생활 지도와 예절을 철저히 강조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학교장이셨던 전 김익원 이사장에게 신임을 얻게 됐다. 또 교육자로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석사, 박사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공부했다. 체육을 하면서도 스스로 교육자라는 정체성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개인적 성과보다 원칙을 지키고, 갈등이 생기면 피하지 않고 책임지려는 태도를 유지한 것도 제게 힘이 됐다. 저에 대한 신뢰가 쌓일수록 주변에서 제게 더 큰 역할을 맡겨주셨다. 저에게 남은 일은 그에 대한 보답 뿐이었다"
▲대구 태권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재 대구 태권도가 가진 위상은 어떤가.
"과거 대구 태권도의 황금기가 압도적인 경기력과 전국대회 성적을 중심으로 한 시기였다. 이제 성과를 넘어선 구조적 개편과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는 단계다. 대구 태권도의 가장 큰 강점은 전통과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두터운 지도자층, 학교 체육과 생활체육, 전문체육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저변 구조는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없는 자산이다. 사람 중심의 지도 문화, 세대를 잇는 지도자 리더십, 지역체육과의 연계성은 대구 태권도만의 강점으로 꼽고 싶다."
▲최근 '공부하는 학생 선수' 정책으로 인해 훈련 시간이 줄고 팀 해체가 잇따르고 있다. 엘리트 체육의 위기라는 말이 많다.
"엘리트 체육의 위기가 공부하는 학생선수 정책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엘리트 체육은 많은 시간을 투자한 소수가 성과를 내는 체계가 아니라,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가장 높은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교육·과학·시스템으로 설계된 체육이어야 한다. 얼마나 오래 훈련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성장했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물론, 지도자의 책임감, 훈련의 진정성, 생활관리와 인성교육 등 과거의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태권도가 과거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
"과거, 한국 태권도가 국제무대에서 보여줬던 압도적인 모습이 워낙 강렬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국제 태권도 환경은 경기규칙과 전자장비, 판정 시스템의 변화, 각국의 과학적 훈련 도입으로 인해 예전처럼 기술과 정신력만으로 격차를 벌리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한국 태권도가 뒤쳐졌다기보다 전 세계가 한국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태권도 꿈나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먼저, 도복을 입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용기이자 자랑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승패와 메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겠다고 선택한 마음이다. 요즘, 이대훈, 박태준, 김소희, 오혜리 등 유명한 선수들이 많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국가를 대표한 선수들이 위대한 것은 결과만이 아니라 끝까지 자신만의 길을 지켜냈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복사판이 되기 보다 여러분 각자가 처음이 되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대구 체육계의 선배로서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으신지요.
" 첫째, 경험을 정리해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현장에서 몸으로 겪어온 시행착오와 판단의 기준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후배 지도자들과 나누고 기록으로 남겨 대구 태권도의 자산이 되었으면 한다. 둘째, 세대의 다리를 잇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선배 세대의 가치와 젊은 세대의 방식이 충돌하지 않고 연결될 수 있도록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싶다. 마지막으로, 선수와 지도자가 존중받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 성과만으로 평가받는 체육이 아니라 과정과 책임이 함께 인정받는 체육, 은퇴 이후의 삶까지 이어지는 건강한 태권도 생태계를 만드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한다."
이효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