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종·다민족 국가시대, 외국인들은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닌 친근한 우리 이웃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들을 단순히 '노동력'이 아닌 '구성원'으로 대하는 사회통합의 관점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특히 수도권 과밀화 속에서 저출산·고령화 위기에 직면한 경북지역은 외국인 유입이 지방소멸을 막는 하나의 대안이다. 이미 외국인들은 농·어촌과 산업현장에서 '일손'을 덜어주는 것을 넘어 교육과 첨단산업 분야에서 활약하고, 지역공동체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일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외국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국 생활 21년, 토리 엘리엇 포스텍 교수 "외국인 주거안정 정책 마련됐으면"
토리 엘리엇 포스텍 교수는 외국인을 위한 정책으로 주거안정책을 최우선 순위로 꼽았다. 본인 제공
한국에서 생활한 지 21년이 지난 토리 엘리엇(Tori Elliott)씨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현재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영국 에든버러 네이피어 대학교(Edinburgh Napier University) 박사과정을 병행하고 있다. 학자이자 연구자,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의 삶은 포항이란 도시와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
엘리엇 교수가 수많은 한국의 도시 가운데 포항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포스텍을 과학·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역량을 갖춘 대학으로 평가하며, 문학과 과학의 접점을 탐구하는 자신의 연구 주제와 인문사회학부의 환경이 이상적으로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한다.
대도시의 복잡한 일상보다는 소도시 특유의 여유와 안정감을 선호하는 그에게 포항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도시이기도 했다. 교통체증이 적고 산과 바다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 어린 자녀를 둔 가족에게는 자연 속에서 다양한 야외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고 했다. 실제로 살아본 경북에 대해 엘리엇 교수는 "역동성과 안정감이 공존하는 지역"이라고 표현한다. 포항의 바다 풍경은 경주의 완만한 전경으로 이어지고, 다시 대구의 현대적인 도시 풍경으로 확장된다고 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예술과 학문을 사랑하는 연구자로서 그는 서울에서 열리는 대형 미술전시와 국제학술대회가 경북에서도 더 활발히 열리길 바란다. 향후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가 국내 주요 전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역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또한 부산이나 전라도로 이어지는 철도 노선이 보다 자주 운행된다면 생활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경북이 더 많은 외국인 전문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도 꼽았다. 그는 '정착을 전제로 한 정책적 시선'을 강조한다. 포스텍과 같은 국제적 거점을 중심으로 국제학교 설립을 검토하고, 장기거주 외국인을 위한 주거안정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엘리엇 교수는 "외국인 전문인력이 단기체류자가 아닌, 한국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라며 "경북 역시 이미 많은 이들의 '진짜 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베트남 출신 뚜안씨 "한국인들 도움 있었기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어"
베트남 출신 뚜안씨가 부인과 베트남에 있는 세 딸을 향해 사랑의 손하트를 하고 있다. 박용기 기자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베트남 쌀국수 가게를 하고 싶어요." 경북 구미대학교 인근에 있는 한 고무제품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베트남 출신 노동자 '뚜안(40)'씨의 꿈이다. 뚜안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기계 앞에 선다. 오전 9시에 시작된 그의 하루는 저녁 7시가 돼서야 끝난다.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서 태어나 스무 살을 갓 넘긴 2008년, 한국으로 온 그는 17년 동안 일을 멈춘 적이 없다. 처음 도착한 곳은 울산이었고, 이후 친구를 따라 2009년 지금의 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엔 한국 날씨가 너무 추웠어요. 그리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어요." 한국 생활 첫 기억을 묻자 뚜안씨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그는 지금 생각하니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낯설어서' 버거웠던 것 같다고 했다. 아직 한국어가 완벽하진 않지만, 일하고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뚜안씨의 일은 고무 원료를 기계에 넣고, 자동으로 압착·가열된 제품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일은 고되지만 열심히 일한 그는 회사로부터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2019년 E-7 비자(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 비자)를 취득했다. 비전문취업(E-9), 선원취업(E-10), 방문취업(H-2) 비자와 달리 E-7은 장기체류가 가능하다.
베트남에는 세 딸이 있다. 큰딸은 13살, 둘째는 9살, 셋째는 6살로 뚜안씨의 부모님이 돌보고 있다. 뚜안씨는 3년 전 한국으로 온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딸 생각이 많이 나지만, 딸들을 생각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요."
한국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를 도와주고 있는 든든한 사람도 있다. 구마마하 붓다센터 진오 스님이다. 스님은 뚜안씨의 크고 작은 일들을 옆에서 돌본다. 뚜안씨를 만난 날도 스님은 그의 주민센터 서류일을 돕고 있었다. 최근 스님으로부터 파크골프도 배웠다. 뚜안씨는 "진오 스님을 비롯해 많은 한국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 지금까지 한국에 머무르며 일할 수 있었다"며 "한국은 나의 인생을 바꾼 기회의 땅이자 제2의 고향과 같다"고 말했다.
◆ 영덕군가족센터 직원 엘레나씨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언어도 늘고 기회도 열려"
루마니아 출신 엘레나씨는 외국인들의 지역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본인 제공
루마니아 출신인 엘레나씨(28)는 석사 진학과 해외생활을 동시에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학에 대한 관심 속에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장학제도를 알게 됐고, 이를 계기로 경북대학교 사회복지실천학과 석사과정을 밟게 됐다. 낯선 나라, 한국의 첫인상은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였다. 모든 일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유학생 시절 엘레나 씨에게 한국은 도전과 불안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졸업 이후의 삶이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취업 이후 인식은 달라졌다. 현재 그녀는 영덕군가족센터에서 공동육아나눔터 담당자로 근무하며 아이와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활동을 마련하고, 부모 간 관계 형성과 양육 역량 강화를 돕는 역할이다. 엘레나씨는 "일자리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며 안정감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업무용 한국어였다. 학교에서 배운 표현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이의 간극이 컸다. 그럼에도 한국어 실력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작은 칭찬이지만,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됐다는 것이다.
영덕에서의 생활에 대해 엘레나씨는 "다문화가족과 지역주민이 비교적 잘 어울려 지내는 좋은 공동체"라고 평가했다. 다만 외국인근로자가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여전히 제도적 문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결혼이민자가 아닌 순수 외국인근로자의 경우 출산이나 질병 같은 위기상황에서 의료·복지 지원을 받기 어렵고, 체류자격 유지 역시 쉽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엘레나씨는 한국생활을 통해 가장 크게 성장한 부분으로 "비자와 자격요건 등 수많은 장벽을 넘어 실제 취업까지 이뤄낸 경험"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학습과 지역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람을 많이 만나고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언어도 늘고 기회도 열린다"고 덧붙였다.
박종진
박용기
전준혁
정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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