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볼펜, 나만의 아이템 만들려는 사람들
어른 아이 모두 ‘볼꾸’ 매력에 푹...인기 급증
발 디딜 틈 없이 몰린 체험객... 직접 고르고 만드는 볼펜 꾸미기
지난 23일 오전 대구 서문시장 2지구 3층의 한 매장 앞. 개점 시간은 오전 11시지만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사람들은 하나둘 줄을 서기 시작했다.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부모, 남편과 함께 온 임신부 등의 모습이 보였다. 연령대는 유치원생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모두 '볼꾸'를 위해 '오픈런'(매장이 열리기 전부터 기다리다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사는 현상)한 이들이었다. 볼꾸는 '볼펜 꾸미기'를 줄인 말이다.
이 매장은 동대문 시장에서 한창 유행이라는 '볼꾸'를 대구에서도 할 수 있는 곳으로, 최근 SNS 등 온라인을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곳이다. 대구 볼꾸 매장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폭 1m 가량인 좁은 통로는 긴 줄이 만들어졌다.
대구에서도 '볼꾸' 열풍이 뜨겁다. 서문시장 '볼꾸샵'들 마다 '나만의 굿즈', '나만의 아이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볼펜'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 23일 오전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최근 유행 중인 '볼꾸(볼펜 꾸미기)'를 위해 파츠를 고르고 있다. 박지현 기자 lozpjh@yeongnam.com
◆ 개성 듬뿍 담은 '볼펜 꾸미기' 인기
"연락드릴게요. 대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해당 매장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전 10시30분부터 연락처와 만들 수량을 선착순으로 기입했다. 입장은 개점 시간인 오전 11시 이후 전화 또는 문자를 받아야 가능하다. 인근 매장 영업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었다.
'볼꾸' 인기가 계속되면서 인근 다른 매장 몇 군데도 최근 볼꾸샵 대열에 합류했다.
상인 이장순(여·57)씨는 "일찍이 파츠 등 재료를 주문했는데 동대문 시장의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입고가 지연되기도 했다. 어제부터 손님들이 몰려오고 있다. 물건들을 직수입해 오다 보니 가격도 3천원 내외로 저렴한 편이다. 오셔서 2~3개는 기본이고 최대 20개를 만들어 가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리를 잡고 서서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볼펜을 꾸몄다. 다양한 색깔의 볼펜대 가운데 원하는 색깔을 고르고 파츠의 크기, 색깔, 디자인을 신중하게 골라 볼펜대에 3~4개씩 꽂으면 완성이다. 파츠 종류만 수백 가지에 달하다 보니 똑같이 만들지 않는 이상 같은 모양의 볼펜이 나올 수 없다. 만드는 사람에 따라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빠르면 10분에서 길면 1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12개를 직접 만들어 봤다. 총 가격은 2만5천500원으로, 개당 2천150원꼴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볼꾸'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직장인 구나영(여·34·대구 삼덕동)씨는 "일주일 전쯤 SNS에서 봤는데 대구에도 볼꾸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직접 해보고 싶어서 왔다. 오픈런을 해야 한다고 해 일부러 날 잡고 시간 내서 왔다. 귀여운 비즈들 내 맘대로 골라서 꽂아주면 되고 파츠 종류가 많아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만들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자녀와 함께 찾은 박원희(여·44·대구 율하동)씨는 "아침 일찍 온다고 왔는데 줄을 서게 될 줄은 몰랐다. 중1, 초1이 되는 자녀들이 있는데 함께 해보면 재밌어 할 것 같아서 왔다. 볼펜을 직접 장식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볼펜을 만들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김연서(13)양은 "오늘 처음으로 헬로키티 볼펜 꾸미기를 하러 왔는데 파츠도 많고 제가 좋아하는 것도 많아서 잘 꾸밀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지난 23일 오전 대구 서문시장을 찾은 한 학생이 최근 유행 중인 '볼꾸(볼펜 꾸미기)'를 하고 있다. 박지현 기자 lozpjh@yeongnam.com
◆ 불경기 맞물리며 인기 더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열풍이 불경기와 맞물리며 더욱 힘을 얻고 있다고 봤다. 또 과거부터 이어져 온 문구 수집 문화의 디지털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계명대 김광협(광고홍보학) 교수는 "소비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깝고,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도 크다는 점에서 인기를 더하고 있는 것 같다. 문구는 1970~1980년대부터 가성비 높은 자기표현 수단으로 꼽혀왔다. 적은 돈으로도 취향을 드러낼 수 있고,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면서다. 문구 꾸미기의 가장 큰 강점은 조합의 무한성이다. 신발이나 텀블러처럼 꾸밀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인 물건과 달리 문구는 가성비가 높고 소재와 방식이 다양하다. 초·중·고등학생, 대학생은 물론 성인들까지 폭넓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SNS의 영향도 크다. 단순히 결과물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닌 만드는 과정 자체를 콘텐츠로 소비한다. 재료를 고르고 조합하는 과정, 완성해 보여주기까지 모두 공유 대상이다. 밈 소비의 한 형태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볼꾸(볼펜 꾸미기)'12개를 직접 해봤다. 총 가격은 2만5천500원으로 평균 2천150원 정도다. 박지현 기자 lozpjh@yeongnam.com
김지혜
이나영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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