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영 수필가
두 번째 기내식을 마치자 기내가 분주했다. 곧 아부다비에 착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부다비에서 근사한 조식을 기대하며 가볍게 허기만 면했다. 하루 정도 머물다 갈 예정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에 라마단으로 뜻하지 않은 고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이슬람국가가 여행의 목적지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공항 문을 나서자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들어왔다. 도심으로 가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호객꾼들이 다가왔다. 흥정을 하고 택시를 탔다. 창밖으로 펼쳐진 끝없는 황톳빛 대지를 보며, 이 척박한 땅 아래 석유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부러웠다.
사막을 지나 도착한 도심의 풍경은 느낌이 이상했다. 아침 시간 영업 준비로 부산해야 할 도시가 기이할 정도로 적막했다. 상가는 불이 꺼져 있고 텅 빈 길에는 이슬람 전통 의상 칸두라를 입은 남성들이 느리게 지나갈 뿐이었다. 마침 열린 슈퍼마켓이 눈에 들어왔다. 빵과 물, 아이스크림을 샀다. 모퉁이 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 때 흰 칸두라를 입은 무슬림이 다가와 나직하게 속삭였다. 지금은 라마단 기간이라고. 해가 떠 있는 동안은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금식. 당황한 나는 아이스크림을 입안으로 밀어넣고, 아들은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던졌다.
우리는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설마 공항에는 식당이 영업하겠지' 하고 희망을 가졌는데 아니었다. 매점이 있어서 직원에게 사정을 얘기하니 매점 안 창고에 가서 먹으라고 일러주었다. 배고픈 나의 속도 모르고, 아들은 자존심 상해서 먹지 않겠다고 했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빛나는 그랜드 모스크도, 현대건설의 작품 부르즈 할리파도, 화려한 두바이 쇼핑몰도 허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목이 마르다고 하니 아들은 "교양 없는 아줌마가 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일몰을 한 시간을 남겨두고 두바이 쇼핑몰 구석에서 여행자를 위한 식당을 간신히 찾았다. 허겁지겁 폭풍 흡입하고 나니 지나간 소동이 우스웠다. 금식도 마음먹기 달렸는데 왜 그리 조바심을 냈을까. 배가 부르니 사막의 노을도 제법 근사했다.
라마단은 무슬림에게는 성스러운 시간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가벼운 산책을 기대했던 이방인에게는 가혹했다. 반면 라마단은 낯선 문화를 대하는 우리에게는 겸허함도 선물했다. 예기치 못한 그날의 허기진 기억들을 더듬으며, 나는 또다시 낯선 문화를 찾아 자유로운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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