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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易地思之] ‘기초선거 정당공천’ 딜레마

2026-02-24 06:00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2012년 대선에서 주요 정당 후보들은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0% 이상이 요구한 기초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그들은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이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2020년대 들어서도 여론은 기초선거 정당 공천제 폐지를 원했지만, 공천 기득권에 집착한 중앙 정치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다가 올 1월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비리 사건이 터져나오면서 다시 공천 폐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음 3개의 주장을 감상해보자.


(1) "양당의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 그런 뒤틀린 선거제도에서는 부정부패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중략) 이제 기초의회와 의원을 주민들에게 돌려주라. 풀뿌리 민주주의 일꾼들을 풀어주라.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양당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을 하면 된다."(경향신문 2026년 1월7일, 시인 김택근)


(2) "공천 관련 금품수수에 진보·보수가 따로 있을까? 이런 국회의원들이 사적으로 휘두르는 공천권은 풀뿌리 민주주의에 뿌리는 제초제와 다를 바 없다. (중략)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에게 청렴을 바라는 것은 고양이가 손에 쥔 생선을 먹지 않길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영남일보 2026년 1월16일, 기자 이하수)


(3) "국회 경력 10여년의 전직 보좌관은 '구의원은 수천만원, 시의원은 1억원, 구청장·시장·군수는 수억원이 여야 공통의 공천 헌금 시가'라고 전했다. (중략) 이참에 '뇌물'과 협잡의 온상이 된 국회의원의 지방선거 후보 공천 개입은 폐지가 마땅하다."(중앙일보 2026년 1월22일, 논설위원 강찬호)


다 전적으로 동의하거니와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이런 문제들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앞서 인용한 이하수의 칼럼은 민주당의 공천헌금 의혹이 터지자 한 진보 인사가 쓴 페이스북 글을 소개했다. "국회의원이 광역·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난리다. 참 웃기는 일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런 줄 온 국민이 다 아는 일을 가지고 웬 호들갑인가?"


아닌게 아니라 생각해보니 웃기는 일이긴 한데, 이보다 더 웃기는 일이 있다.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상 근본주의'다. '이상 근본주의'라는 말은 없지만, '정당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이상이나 원칙을 앞세워 공천제 폐지를 무슨 '반(反)정치'나 되는 것처럼 오히려 역공을 펴는 걸 그렇게 부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앞서 '공천 기득권에 집착한 중앙 정치권'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중앙 정치권의 반대가 공천제 폐지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니다. 정의롭고 양심적인 생각과 자세로 공천제 폐지에 반대하는 의인(義人)들의 반대가 더 큰 문제다. 이들은 소수일망정 워낙 논변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런 분들의 반대 논리를 감상해보기로 하자.


한겨레 기자 김종철은 "지방선거에서 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가 기본이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정당이 참여하는 게 않는 것보다 더 좋은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 풀뿌리 자치에 정당이 개입하는 유럽국가와 정당 금지를 선호하는 미국이나 일본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정치가 곧 생활인 유럽의 삶의 질이 정치를 멀리하려는 나라들보다 훨씬 낫다."


그는 기초의원에 정당 공천을 배제했던 2002년(제3회 동시선거) 선거에서 여성 의원은 2.2%에 불과했지만, 비례대표제와 함께 정당 공천이 확대된 2006년과 2010년 선거에서는 각각 11.0%와 10.0%로 크게 늘었으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소수정당 소속 기초의원의 지방의회 진출이 증가했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정당 공천이 금지되면 이들 대신에 토호 등 지역 기득권 세력만 발호할 가능성이 크며, 동네에서 정당이 약해지면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관변단체라는 것도 우려한다.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대근은 "사실 공천제는 인기가 없다. 시민들은 공천이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예속시키고 공천 비리·비효율성·정쟁을 낳는다는 지식인, 전문가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정당 혐오, 정치 불신 시대에 시민은 지방자치를 탈정치화, 정치적 중립지대화해서 정치적 청정지대로 바꿔 놓자는 견해를 좋아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갈등 없는 인간 집단이 있을 수 없고, 정치 없는 공동체가 있을 수 없으며, 정당 없는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다. 지방자치는 행정적 합리성과 효율성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정당은 이념과 정책, 시민들의 요구 수준에 부합하는지 검증을 거쳐 후보를 내 선택을 받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 이 과정이 없다면 시민은 누구를 선택할지 모르고, 후보는 누구를 대표하는지 불분명해지고,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지 알 수 없게 된다."


이 두 견해는 공천 폐지 문제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던 2014년 1월에 나온 것이다. 두 언론인의 견해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공천 폐지 반대론의 가장 강력한 논거로 여겨져 소개한 것이다. 원론적으론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지만, 문제는 두 반론 모두 한국의 정당들이 이상적이진 않을망정 그럭저럭 인내해줄 만한 수준에 있다는 걸 전제로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당은 속된 말로 '구제불능'의 수렁에 처박혀 있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최근 조선일보·서울대 국민 의식 조사에서 정당에 대한 신뢰도는 7.8%로 다른 기관들과 비교했을 때는 최하위 수준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2025년 부패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국민과 전문가·공무원은 '정당·입법' 분야를 가장 부패한 분야로 지목했다.


이런 정당을 바꿀 수 있는 그 어떤 방안, 아니 작은 변화 가능성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정당 민주주의의 이상과 당위에 대해 아무리 역설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 나빠질 게 없으며, '사적 밥그릇 싸움의 분배정의'도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해보자고 주장한다면, 이에 대해선 뭐라고 답할 것인지 그것도 궁금하다. 바뀌지 않는 '최악'에 직면해 '차악'이라도 없나 하고 궁리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신세가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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