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법사위 못 넘은 TK 통합, 결정타는 ‘내부’
심사 하루 전 나온 시의회 성명, 민주당 제동 빌미 됐다
이만규 의장 “광주·전남 보며 준비… 2년 뒤 총선도 가능”
대구시의회 의원들이 23일 오전 대구 중구 대구시의회 앞에서 대구경북 행정통합 졸속추진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구시의회 의원들은 대구시의원 수 33명, 경북도의원 수 60명의 의원 정수 비대칭과 약속 없는 20조 원 재정 지원, 권한 이양과 핵심 특례가 보장되지 않는 통합특별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윤호기자 yoonhohi@yeongnam.com
대구·경북(TK) 행정통합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는 "결과적으로 대구시의회가 더불어민주당에 명분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4일 전체회의를 열고 광주·전남통합특별법을 처리했다. 반면, TK와 대전·충남 특별법안은 추가 논의하기로 하고, 이날 의결을 보류했다. 민주당 소속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대구시의회가 TK 통합 추진을 하지 말아 달라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시간을 가지고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TK 통합에 소극적이던 민주당이 시의회 성명을 기다렸다는 듯 반대 논리를 확보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법안 처리 직전인 23일 대구시의회가 '졸속 통합 반대'를 주창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바로 다음 날 법안이 보류되면서 시의회의 메시지가 정치적 빌미로 활용됐다는 지적이다.
시의회는 성명에서 △20조 원 재정 지원 약속 부재 △광역의원 정수 비대칭 문제 △권한 이양 및 핵심 특례 미비 등을 이유로 "졸속 처리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통합의 대의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일부 시의원들은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인구 비례에 맞는 의원 정수 조정을 요구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안대로라면 대구 33석, 경북 60석으로 구성돼 표의 등가성과 의회 운영의 균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치적 맥락은 다르게 흘러갔다. 법사위 법안 심사를 코앞에 두고 공개적으로 제동을 건 모양새가 되면서, 민주당이 'TK지역 내부 이견'을 이유로 속도 조절에 나설 명분을 얻어 결국 법사위에서 보류하게 됐다는 것이다. TK 지역 정치권에서는 "시의회가 독박을 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전략적으로 말려든 측면이 있다"는 자성론도 나온다.
시의회 수장은 오히려 시간을 번 셈이라는 입장이다.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은 이날 통화에서 "유예기간이 생긴 건 잘 된 일"이라며 "통합을 하더라도 광역의원 정수, 재정 지원 등 문제가 명확히 정리된 뒤 추진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는 논의가 막연했지만 이제는 표본이 생겼다. 광주·전남이 하는 걸 보면서 우리도 차근차근 준비하면 된다"며 "빠르게 진행된다면 2년 뒤 총선에서 결판이 날 수도 있고, 유예기간을 두고 다음 지방선거에서 통합 체제로 가는 방안도 있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앞)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 회의에서 '전남광주 통합법'을 여당 주도로 처리를 하려하자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날 법사위에는 대구경북통합특별시 설치 특별법과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설치 특별법도 상정됐지만, 국민의힘의 강경한 반대에 처리가 보류됐다. 연합뉴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법안 처리 직전 강경한 성명을 낼 필요가 있었느냐"는 반문도 제기된다. 내부 보완 요구가 결과적으로 통합 동력을 약화시키는 정치적 카드로 쓰였다는 점에서 전략적 판단이 아쉬웠다는 평가다.
또 이번 6·3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가 다음 지방선거에서 둘 중 한 명은 자리를 잃게 되는 통합을 할 가능성이 낮다는 측면에서도 차근차근 준비하자는 속도 조절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로선 재협상 후 수정안 처리, 주민 여론 수렴, 장기 표류 등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다만 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법안이 한 차례 제동이 걸린 이상, 초기 추진 동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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