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 이상 메달리스트,
14.5%로 큰 비중 차지
김상겸 등 불혹에도 '활약'
'노장' 아니라 '명장' 등극
전성기는 훨씬 뒤에 올지도
이효설<체육팀장>
요즘, 묘한 심리가 생겼다. 이제는 노장이 된 스포츠 스타들의 나이를 확인하며 남몰래 안도한다. 얼마 전,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가 열릴 때도 나는 서른여덟 살의 '전설' 노박 조코비치의 우승을 열렬하게 응원했다. 개인적으로 조코비치의 팬은 아니다. 다만, 스물두 살의 세계랭킹 1위 알카라스와 맞붙어 자신의 전성기를 다시금 경신하는 조코비치를 보고 싶었다. 그의 건재가 곧 나의 가능성이기도 하다는 걸까. 중년의 나에게도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을까. 시간과 성취에 대한 은밀한 불안이 어느 노장 선수의 나이를 잊은 대활약으로 조금은 상쇄되는 것 같다.
역대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의 평균 연령이 궁금해 AI 챗봇에 물었다. 진짜, 올림픽 메달의 나이가 올라갔단다. 1980년대 시라예보·캘거리 대회 때 24세, 이번 2026 밀라노에선 28세란다. 과거엔 20대 초반이 메달리스트의 정점이었다면, 이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 메달권의 주력이라는 것. 실제로 밀라노 올림픽의 35세 이상 메달리스트 비중은 무려 14.5%로 추산된단다. 40년 전엔 2%에 불과했다. 참가에 의의를 뒀던 노장들이 이제 실질적 포디움의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흥미로웠다.
밀라노에서 3040 메달리스트는 이변이 아니라 상수로 등극했다.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종목에 출전한 김상겸 선수. 그는 운동선수로는 황혼기에 가까운 나이인 서른 일곱 살에 첫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었다. "나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다음 목표는 금메달"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대회 8강에서도 그는 1980년생으로 40대 중반인 이탈리아의 롤란드 피슈날러와 대결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딴 네덜란드의 요릿 베르흐스마 선수도 올해 마흔이다. 김상겸이 스노보드 결승에서 맞붙은 오스트리아의 벤야민 카를 선수도 불혹. '엄마 선수'로 봅슬레이 금메달을 딴 엘라나 메이어스 테일러의 나이도 마흔 한 살이다. 50대 여성 스노보드 출전자도 나왔다. 출전 자체가 경이롭다. 이건, 노장 선수의 단순 평균보다 한계점 자체가 올라갔다는 증거다.
단순히 나이가 든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전성기'의 개념이 점점 확장되는 듯하다. 그들은 여전히 시상대 정상에 오르고 있으니까. 노장이 아니라 명장이다.
비결이 뭘까. 우선, 찰나의 감각과 전술적 수읽기가 승패를 가르는 기술집약적 종목이 늘었다. 컬링, 스노보드 대회전, 바이애슬론, 봅슬레이가 대표적이다. 근력보다 경험과 전략이 중요한 종목에서 노장들의 생존력이 월등하다. 이러한 종목은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베이스가 경기력의 관건인 만큼 노련함이 젊은 패기를 압도할 수 있다. 또 신체의 관절, 근육의 부하를 줄여주는 첨단 장비의 진화도 선수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40대도 20대의 퍼포먼스를 실현하도록 돕는다.
수많은 승패를 겪으며 다져진 독보적인 평정심도 노장들의 무기다. 극한의 압박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기량을 끌어낸다. 결국 이들에게 흐른 시간은 노쇠함이 아닌, 대체 불가능한 '숙련된 기술'과 '단단한 내면'을 선물한 셈이다.
메달리스트의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하냐 묻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이 가장 지혜롭게 꽃피우는 시기는 우리가 지레짐작한 한계점, 그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의 파도를 견디고 마침내 정점에 선 모든 '현역'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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