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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경남 거창 완수대마을 오우정] “불초자가 울며 씁니다” 후손이 쓴 시문, 콧등을 울린다

2026-02-27 06:00
오우정은 김해김씨 다섯 형제의 우애를 기려 후손들이 지은 정자로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완공됐다.

오우정은 김해김씨 다섯 형제의 우애를 기려 후손들이 지은 정자로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완공됐다.

마을 초입 동산 중턱에 육각 정자하나가 돌연하다. 축대가 희고 단청이 뚜렷해 근래의 쉼터이겠거니 하였다. 그러자 하늘 보던 눈이 곧장 지상으로 떨어졌고, 그때 반들거리는 오석의 커다란 기념비를 스쳤다. 갸웃하며 여느 산골과 매한가지로 인적 없이 부산한 마을을 지나는데, 마을을 매듭짓는 벼랑아래 나신의 정자와 빛 많은 숲을 보며 몸이 덜컹 하였다. 그래서 저만치 달려 나간 차를 돌려 강변 과수원을 등지고 선 버스정류장 곁에 선다. 거기에는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마을 유래 안내판이 서있다. 완수대마을이다.


완수대마을은 덕수이씨 집의공파 집성촌이다. 마을 어귀에 석천 이만영과 부인 표씨를 기리기 위해 자녀들이 힘을 모아 세운 정자와 기념비가 있다.

완수대마을은 덕수이씨 집의공파 집성촌이다. 마을 어귀에 석천 이만영과 부인 표씨를 기리기 위해 자녀들이 힘을 모아 세운 정자와 기념비가 있다.

완수대마을 숲. 숲속에 덕수이씨칠공유적비와 칠우정이 있으며 8·9월에 늦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완수대마을 숲. 숲속에 '덕수이씨칠공유적비'와 칠우정이 있으며 8·9월에 늦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완수대마을 앞으로 삼봉산에서 발원한 황강이 흐른다. 옛날 물을 구경하는 놀이터가 있어 완수대라 했는데 지금은 마을 숲이 물 보기 좋은 곳이다.

완수대마을 앞으로 삼봉산에서 발원한 황강이 흐른다. 옛날 물을 구경하는 놀이터가 있어 완수대라 했는데 지금은 마을 숲이 물 보기 좋은 곳이다.

◆ 완수대마을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옛날에는 완서대(玩逝臺)라 하였고, 물을 구경하는 놀이터가 있으므로 완수대(玩水臺)로 고쳤다하며, 394여 년 전에 이씨 형제가 마을을 열었다고 전한다.' 완수대는 거창 주상면 완대리 황강변의 자연마을이다. 완대리는 일제강점기 때 생긴 이름으로 당시 완수대는 일제는 관리 편의를 위해 완대1구로 변경된 채 근 한세기 동안 그리 불렸다. 그러다 2006년 경 본래 이름을 되찾아 지금은 공식적으로 완수대마을이다.


커다란 오석의 비석에는 '송원정기념비'라고 새겨져 있다. 육각 정자에 현판은 없지만 송원정(松園亭)인 줄 알겠다. 정자에는 낡은 목침 하나가 놓여 있고, 반짝이는 황강은 보이지 않는다. 비문에 따르면 송원정은 덕수이씨 집의공파 24세손인 석천공(石泉公) 이만영(李萬永)과 부인 신창표씨를 기리기 위해 자녀들이 힘을 모아 2013년 5월에 완공했다고 한다. 덕수이씨의 시조는 고려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낸 이돈수(李敦守)로 율곡 이이와 충무공 이순신이 같은 뿌리다. 비문을 조금 더 더듬어 보면 집의공파의 파조는 이포(李謩), 거창 입향조는 이세신(李世臣), 그의 후손인 통정대부 이혁(李赫)이 일곱 아들을 낳았고, 그 장남인 이덕원(李德源)의 후손들이 완수대에 터를 잡았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러니까 완수대마을은 덕수이씨 집의공파 덕원종중 집성촌이라 할 수 있다. 마을 안에 재실인 화수재가 있는데 이혁의 아들 7형제를 기려 지은 것이라 한다.


완수대마을 숲 가운데에 덕수이씨칠공유적비가 자리한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용 문양이 정교하게 조각된 머릿돌을 얹은 위엄 있는 모습이다.

완수대마을 숲 가운데에 덕수이씨칠공유적비가 자리한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용 문양이 정교하게 조각된 머릿돌을 얹은 위엄 있는 모습이다.

마을 북쪽 끝자락의 완수대마을 숲은 북북서에서 남남동으로 흐르는 골짜기의 흐름을 막아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가장자리에는 대개 푸른 소나무가 도열하고, 안쪽에는 다양한 낙엽수가 어우러져있어 궁리와 정성이 느껴진다. 고요하고, 신선하다. 숲 전체가 다정히 속삭이는 듯하여 지극히 따사롭다. 숲 가운데에 커다란 비석 하나가 서 있는데, '덕수이씨칠공유적비'라 새겨져 있다.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용 문양이 정교하게 조각된 머릿돌을 얹은 위엄 있는 모습이다. 아마 7형제를 기리는 것 같다. 숲속 정자에 칠우정(七友亭) 현판이 걸려 있다. 우애 깊은 형제간이었나 보다. 칠우정 너머 이무기 같은 바윗돌 뒤로 황강이 내려다보인다. 얼음을 녹이며 반짝반짝 물이 흐른다. 이 숲에 늦반딧불이가 산다고 한다.


완수대마을 숲과 마주한 벼랑에 여러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씨 성을 가진 이들이다. 김해김씨의 오우정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완수대마을 숲과 마주한 벼랑에 여러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씨 성을 가진 이들이다. 김해김씨의 오우정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우정 누마루에 이조영이 쓴 기문과 윤철수, 이현구, 임필희, 신종호 등이 쓴 시판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오우정 누마루에 이조영이 쓴 기문과 윤철수, 이현구, 임필희, 신종호 등이 쓴 시판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 오우정


숲과 마주한 벼랑에 여러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씨 성을 가진 이들이다. 벼랑은 남동쪽으로 꺾여 언덕을 이루는데 그 아래에 반듯한 정자 하나가 서 있다. 오우정(五友亭)이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팔작지붕을 얹은 누각이다. 건물은 황강이 흘러가는 것을 내다보려는 듯 남서쪽으로 살짝 돌아 앉아 있다. 정자 양편에는 죽하 처사의 유적비와 오우정 사적비,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을 지낸 분의 효행비가 서 있다. 담장은 낮고, 마당은 시멘트를 부어 단단하다. 단단한 마당을 가로질러 단단한 계단을 따라 누마루에 오른다. 사방 빼곡하게 기문과 시판 등이 걸려 있다.


오우정은 다섯 형제의 우애를 기리는 정자다. 기문을 대략 살펴보면, 구한말 김해김씨 덕암(德菴) 김주옥(金周玉)과 그의 아내 강양이씨 이종복(李宗福)의 딸이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왔고 다섯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덕암은 초가집을 마련하여 아이들을 가르치고, 문장을 짓고, 한말의 국운을 탄식하였다 한다. 덕암은 183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다섯 아들은 관수헌(觀水軒)김완현(金玩鉉), 학산(學山)김재현(載鉉), 청농(聽農)김규현(奎鉉), 영월헌(迎月軒)김진현(軫鉉), 상화헌(賞花軒)김도현(道鉉)이다. 형제의 '효와 우애는 뿌리가 깊어 마치 맑은 물이 상류에서 흐르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그들은 이곳에 정자를 짓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생전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완현의 아들 영우(永友)와 규현의 아들 죽하(竹下)영선(永善) 등 후손들이 1936년에 정자 건립을 논의하였고, 1938년에 오우정을 완공했다. 기문은 연안이씨 진사(進士) 이조영(李祚永)이 1938년에 썼고 상량문은 해평 윤녕구(尹寧求)가 지었다. 오우정을 지은 후 후손들이 적은 시문도 있는데 마지막 문장이 콧등에 남는다. 불초자 영조가 울며 씁니다. 불초자 영우가 울며 씁니다. 불초자 영선이 울며 씁니다.


오우정 누마루에 이조영이 쓴 기문과 윤철수, 이현구, 임필희, 신종호 등이 쓴 시판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오우정 누마루에 이조영이 쓴 기문과 윤철수, 이현구, 임필희, 신종호 등이 쓴 시판이 빽빽하게 걸려 있다.

시판은 22개나 된다. 그 내용을 거창문화원에서 번역해 두어서 몹시 기쁘다. 옛날에는 길 따라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었고 하얀 목련과 아가위 꽃나무와 박태기나무가 누각을 둘러싸고 있었으며 북쪽 벼랑은 활쏘기 하던 곳이었나 보다. 운을 남긴 이들의 이름을 본다. 파평 윤철수(尹哲洙)의 이름이 있다. 어쩌면 그는 독립청원서(파리장서) 운동을 주도한 곽종석(郭鍾錫)의 제자다. 그렇다면 그 역시 파리장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다. 웅계(熊溪) 이현구(李鉉九)의 이름도 있다. 그는 거창에 은거해 망국의 울분을 시로 풀어낸 절의지사다. 은진(恩津) 임필희(林苾熙)의 이름도 본다. 그 역시 곽종석의 문인으로 그의 아들 임유동(林有棟)은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중국을 오가며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신종호(愼宗鎬)라는 이름은 혹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문도인가. 그러고 보니 기문을 쓴 이조영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제자다. 궁구할 뿐 확언할 수는 없지만, 어떤 기류가 마음속에서 단단해진다. 곧 꽃이 피고 나무는 푸르러질 테지. 봄날 완수대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거창IC로 나간다. 톨게이트 앞 회전교차로에서 3시 방향 출구로 나가 함양, 버스터미널 방면 1089번 지방도를 따라 계속 직진(회전교차로에서는 12시 방향 출구), 주상면 주상삼거리에서 무주, 구천동, 고제 방면 10시 방향으로 나가 주곡로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된다. 내오리 지나면 완대리로 첫 마을이 완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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