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학 대구문화예술진흥원 기획홍보팀장.
어느 봄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신다. 상대는 말이 없다. 빈 병이 늘어가고, 밤은 깊어지고, 그 와중에도 꽃들은 피어나고. 이윽고 상대가 입을 연다. 더는 못 살겠다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절망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죽어버릴 것 같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일단 살려야 한다. 급해진 마음에 상대의 손을 잡는다. "사랑해, 그러니 죽지 마."
김영광 시인의 시 '사랑의 발명'에 등장하는 두 사람은 더 급박하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 나라도 곁에 없으면 /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 취해 말했지 //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이 긴박한 마음을 두고 신형철 평론가는 평론집 '인생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을 계속 살게 하고 싶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마음먹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이 세상에는 한 인간에 의해 사랑이 발명될 것이다.'
산다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숱하게 반복해 온 하루지만 여전히 익숙하지 않을 때가 찾아온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에도 스스로가 미덥지 못한 순간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씩씩하게 견뎌야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둑이 무너지듯 결국에 한 번쯤은 터지게 마련이다. 문제는 바로 그때다.
아이러니하게도 봄은 생명의 계절인 동시에,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 불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급증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겨우내 억눌렸던 감정들이 싹이 돋고 꽃이 피듯 폭발하며 터져 나오게 되는 이러한 '계절성 우울장애'는 단순히 계절을 타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릴 일이 아니다. 방치해 뒀다가는 상대의 마음은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번개같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사랑이란 것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겼다는 말,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Amo: Volo ut sis)'. 신형철 평론가는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너는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누군가를 살려야겠다는 긴박한 마음이 기어이 발명해 낸 이 사랑이라는 것이 오늘도 누군가를 살린다. 비록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침묵 대신,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라도 함께 부르며 다시 마음을 살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봄을 맞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봄날에는 사랑을 발명하자. 절망해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계절 아닌가.
권혁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