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머스캣 외면은 공급 탓 아냐…맛없는 포도가 섞인 것”
18브릭스 이상·개화 후 120일 숙성 등 엄격한 선별 기준 제시
포도 농가 절반인 김천의 생존법…농협이 도박 건 사연
하규호 직지농협 조합장. 박현주 기자
경북 김천은 자타가 공인하는 '포도의 성지'로 2천381ha에 이르는 광활한 면적에 농업인의 절반(49.4%)이 포도 넝쿨로 생계를 잇는다. 2024년 기준 전국 포도 생산량의 17%(3만8천t)가 이곳에서 쏟아져 연간 생산액은 1천500억 원 규모로 성장했으나 '샤인머스캣 과잉 공급'과 '품질 고도화'라는 위기에 몰렸다. 역대 최대 위기의 파고를 넘는 해결책으로 '품질 완벽주의'를 선언한 하규호 직지농협 조합장에게 '김천 포도의 생존 전략과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품종보다 중요한 건 '맛'에 대한 신뢰
샤인머스캣 가격 하락 문제를 앞세워 품종을 바꿔야 한다는 '품종 갱신' 주장에 대해선 그는 '품종 문제'가 아니라 '품질 문제'라고 맞섰다.
하 조합장은 "시장 환경에 민감한 최상품 농산물은 언제 어디서나 대접받는다. 샤인머스캣이 외면받는 건 공급이 많아서가 아닌 맛없는 포도가 시장에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해 고품질 포도는 적정 가격을 유지한 사례가 충분한 만큼 무작정 품종을 바꾸기보다 '맛 좋은 포도'라는 농산물의 본연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라고 했다.
포도의 조기 출하 유혹을 경계하는 하 조합장은 "샤인머스캣은 개화 후 최소 120일이 지나야 특유의 당도와 식감이 살아난다. 명절 대목을 노린 미숙 포도 유통이 소비자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라고 조언했다.
◆농협이 책임지는 '매입판매'로 농가는 생산에만 전념해야
2006년 취임 당시 상인들에게 가격 주도권을 뺏기면서 판매 대금까지 떼이는 포도 농가들의 현실을 목격한 그는 '농협이 농산물을 직접 매입해 판매하는 매입판매'라는 해결책을 도입했다.
그는 "매입판매는 시장 상황에 따라 농협이 손실을 볼 수도 있는 일종의 도박이나 다름없었으나 조합원의 소득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추진한 결과 직지농협의 매입판매 평균 단가는 6천630원(1㎏)으로, 일반 수탁판매 4천262원보다 훨씬 높았다. 손실이 나더라도 자체 조성한 '유통손실보전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는 든든한 배경이 시장 가격을 떠받쳤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직지농협은 이마트와 농협 하나로마트 등 굵직한 유통 채널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이마트의 경우 성수기 물량의 상당 부분을 직지농협이 책임질 만큼 독보적인 신뢰를 구축한 상태다.
◆엄격한 품질 가이드라인…'18브릭스·15g'
그는 "직지농협의 포도가 대형 마트에서 프리미엄 대접을 받는 이유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선별 기준' 덕분이다. 직지농협이 제시하는 고품질 포도의 기준은 △당도는 18Brix 이상(일반 포도는 16Brix) △알 무게는 15g 이상(균일도 90% 확보) △외형은 선명한 연녹색과 촘촘한 송이 모양 △씨가 없고 아삭한 식감 유지 등으로 아주 까다롭다.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매입판매 대상에서 제외된다. 농가 입장에서는 고달프지만 결과적으로 김천 포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제도적 뒷받침과 농업인의 정성이 만나야
하 조합장은 지자체와 관계기관의 역할을 유달리 강조했다. 과잉 생산기와 홍수 출하 시기를 견디기 위해서는 고도의 보존 기능을 갖춘 저온 저장 시설 확충이 필수적이라는 논리다.
그는 "성주 참외가 체계적인 지원으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처럼, 김천 포도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농협은 판로를 개척하고, 농민은 120일 숙성 원칙을 지키며 최고 품질을 생산하는 것이 샤인머스캣 위기를 돌파할 유일한 해법이다"라고 덧붙였다.
하 조합장은 "농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잘 익은 포도를 출하해야 소비자가 다시 김천 포도를 찾게 된다. 직지농협은 조합원들이 오직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튼튼한 유통 방패가 돼 김천 포도의 명성을 되찾을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편, 직지농협은 지난해 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은 조합원들에게 임직원 성금 등을 포함해 3억3천200만 원의 교육지원사업비를 부담해 농민의 고통을 분담했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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