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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창] 학생 자치, 정말 어른은 빠져야 할까

2026-03-18 06:00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박정곤 대구행복한미래재단 상임이사

반장 후보로 나선 병오(가명)는 '여러 친구의 숙제를 대신해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친구들은 그 공약이 마음에 들었고, 병오는 반장으로 선출됐다. 그날부터 그는 쉬는 시간은 물론 수업이 끝난 뒤에도 혼자 교실에 남아 친구들의 숙제를 도맡았다. 학교 숙제뿐 아니라 학원 숙제까지 맡게 되었고,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외국어 과제는 번역기의 도움도 받았다. 병오는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 불평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의 하루는 지극히 성실했지만,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방학식을 마치고 교내를 둘러보던 교장 선생님이 홀로 교실에 남아 있던 병오를 발견했다. 평소 학생들의 성향을 비교적 잘 알고 있던 교장이었다. 유난히 여유 없어 보이던 병오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제야 한 학기 내내 숙제를 대신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오는 약속은 지켜야 하며,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교장 선생님은 그 태도와 꾸준함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칭찬했다. 그러면서 대신 숙제해 주는 일은 친구가 스스로 공부할 기회를 빼앗는 행위이며, 잘못된 도움일 수 있다는 점을 짚어 주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반장 선거 과정에 과연 '어른의 지도'가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숙제를 대신해 주겠다'는 공약은 반장의 역할과도, 학급 공동체의 성장과도 거리가 멀다. 인기를 얻기 위한 약속이었을 뿐이다. 이런 공약이 아무 제약 없이 받아들여졌고, 이후에도 충분한 점검과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분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잘못된 선택의 짐을 너무 오래 병오 혼자 떠안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도 묻게 된다.


이런 혼란은 교실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교육지원청 중학생 연합 학생회에서 한 학생이 '역사 교과서의 서술이 잘못되었으니 배우지 말자'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지도교사들은 다른 문제를 협의하느라 자리를 비웠다고 한다. 국가 검정 교과서를 부정하는 일이, 과연 중학교 학생회 토의 주제로 적절할까? 이런 사례에서 보듯, 아이는 자신의 판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끝까지 겪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어른은 아이들의 경기에 개입하지 않는 심판이 아니라, 규칙의 취지와 한계를 설명하며 그 경기가 성장의 과정이 되도록 책임지는 심판이다. 우리는 아직도 '아이들이 정한 일이니 지켜보자'며 개입해야 할 순간을 지나치고 있지는 않을까?


아이들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일과 아이들을 내버려두는 일은 다르다. 학생 자치 활동은 어른의 개입이 없어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사와 학부모라는 어른의 적절한 안내 속에서 비로소 제 자리를 잡는다. 자율을 가르치되 방임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아직 판단의 과정을 배워 가는 존재다. 그래서 어른의 역할은 답을 대신 내려주는 데 있지 않다. 질문을 던지고 맥락을 제공하며 생각의 방향을 다듬어 주는 데 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선택이 다른 친구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와 같은 질문은 아이들의 자율 의지를 꺾지 않으면서도 책임 있는 사고로 이끈다. 질문이 '미래 리터러시'의 핵심이기도 하다.


학생 자치, 자율 활동, 동아리 활동이 진정한 교육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어른이 한발 물러서는 용기만큼이나 한발 다가서는 책임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세계를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지도를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자율이라는 말로 필요한 개입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다. 침묵하는 어른이 아니라 책임지는 어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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