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옆에 휘영청 서 있는 고목은 벚나무다. 맞은편의 곧고 높은 나무는 은행나무다. 그 사이로 철길이 낙동강을 건넌다. 그 도하의 첫 걸음 위에 낙동강철교전망대가 올라 있다.
강을 건너기 직전, 철길 옆에 휘영청 서 있는 고목은 벚나무다. 저 벚나무에 꽃이 피어 있기를 간절히 고대하며 달려왔건만 꽃은 내일쯤 피려나. 맞은편의 곧고 높은 나무는 은행나무다. 벚나무에 꽃이 피고 지고, 은행나무의 무성한 신록이 철교의 목덜미를 시원하게 덮치는 순간을 떠올린다. 그 순간을 뚫고 철길은 철교 위를 달려 낙동강을 건넌다. 그 도하의 첫 걸음 위에 전망대가 올라 있다. 낙동강철교 전망대다.
◆ 낙동강철교 전망대
낙동강 철교 전망대. 전망대는 철교의 상부구조를 내려다볼 수 있는 15m 높이로, 철길 따라 50m 정도 뻗어 있다. 강 건너가 삼랑진, 마주보이는 산은 매봉산이다.
낙동강 철교는 2010년 폐선 되었으며 현재 레일바이크 선로로 쓰이고 있다. 철로 가장자리가 알록달록 무지개다.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예상치 못한 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강변은 아직 흙빛이다. 우거진 교목 숲은 자유롭고 자연스러우며 몇 그루 교목의 우듬지가 연둣빛이어서 감동적이다. 산책로이거나 자전거길이거나 하는 평평하고 밝은 콘크리트 선이 우거진 수풀 속에 선명하다. 풀숲을 헤치고 나아가는 물골에는 목조 교각이 걸려 있다. 시원에 근접한 넓디넓은 수풀을 보고 있으면 길이나 교각 따위가 눈에 안정감을 준다. 이토록이나 평온한 산란과 야성적인 정경을 철교는 단박에 가른다. 직선으로 예민하게, 무겁게 군림하면서.
낙동강 철교는 밀양시 삼랑진읍과 김해시 생림면을 연결한다. 철교 건설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9월에 시작됐다. 그리고 1940년 4월에 다리 하부구조를 완성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몇 달 뒤였다. 공사는 중단되었다. 교각만 선 채 시간은 흘러 광복을 맞았다. 우리 정부가 서고 1950년이 되어서야 다리 상부구조 공사가 재개되었지만 그마저 6·25전쟁으로 중단된다. 결국 낙동강 철교는 1962년에 완성됐고 2010년 경전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폐선됐다. 준공에 24년, 기찻길의 역할은 48년, 난산의 시간에 비해 수명은 짧았다. 철교는 현재 레일바이크 선로로 쓰이고 있다. 전망대는 철교의 상부구조를 내려다볼 수 있는 15m 높이로 철길 따라 50m 정도 뻗어 있다. 녹슨 트러스 구조 속으로 철길이 내려다보인다. 철로 가장자리가 알록달록 무지개다.
녹슨 트러스 구조 속으로 철길이 내려다보인다. 동쪽에는 삼랑진교와 중앙고속도로 낙동대교, 서쪽에는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 불리는 삼랑진교와 신 낙동강 철교가 있다.
마주보는 산은 작약산, 강변에서부터 저 산 아래로 파고드는 골 전체가 마사리다. 철길은 오른쪽으로 400m 정도 둥글게 휘어 나아가는데, 거기에 레일바이크 승강장이 있다.
강 건너가 삼랑진, 마주보이는 산은 매봉산이다. 동쪽으로 삼랑진교와 중앙고속도로 낙동대교가 보인다. 서쪽으로는 일명 콰이강의 다리라 불리는 삼랑진교와 신 낙동강 철교가 보인다. 신 낙동강 철교 아래에서 밀양강이 낙동강과 하나 된다. 이곳의 낙조를 '왕의 노을'이라 한다. 이는 '황후의 노을'이라 불리는 김해 분산성 낙조와 나란하다.
뒤돌아본다. 마주보는 산은 작약산이다. 강변에서부터 저 산 아래로 파고드는 골 전체가 김해 생림면 마사리다. 몇 해 전 소개했던 마사터널이 마을의 남쪽 끝이다. 마사터널은 작약산 모정고개에 있는 경전선 철길의 터널로 지금은 자전거 통행로다. 아래로 보이는 철길은 서쪽으로 400m 정도 둥글게 휘어 나아가는데, 거기에 레일바이크 승강장과 열차카페, 그리고 와인동굴 등이 자리한다. 와인동굴은 과거 경전선 생림터널이었다. 옛날 한림역을 출발한 기차는 마사터널을 통과해 강 건너 삼랑진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낙동강 범람으로 열차 운행이 자주 중단되자 1963년 새롭게 뚫은 것이 생림터널, 즉 현재의 와인동굴이다. 휘어지는 철길 가에 늘어서 있는 나무들은 벚나무일 것이다. 레일바이크가 지나간다. 셋, 다시 셋. 바이크에는 둘 혹은 셋이 앉았다. 종알종알종알 들리는 말들이 모두 외국어다.
◆ 기차마을 독산
둑 아래는 마사리의 중심 마을인 독산이다. 2017년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된 이후 2년 간 기차를 주제로 마을 안길을 정비했다.
강변의 넓디넓은 수풀은 아직 흙빛이지만 더러 연둣빛이고 푸르러 감동적이다. 둑길의 벚나무는 곧 개화할 것 같고 4월이 중순이면 강변은 노란 유채밭이 된다.
강변 둑길은 온통 벚나무다. 모두 붉은 꽃망울을 달고 있다. 만지면 톡 하고 정말 터질 듯하다. 길 초입에 '생림제'라 새겨진 제방석이 있다. 뒷면에 2004년 착공, 2011년 완공했다고 기록돼 있다. 둑 아래는 마사리의 중심 마을인 독산이다. 독메라고도 불린다. 철교가 얹어진 나지막한 언덕이 독산 또는 독메다. 조선시대부터 독메 일대에 사람들이 살면서 마을이 형성됐는데 처음에는 김해김씨가 살았다. 이후 차츰 여러 성씨가 들어왔고 지금은 67가구, 1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보행기를 앞세운 할머니가 강변으로 내려가신다. 천천히 나아가지만 이내 자취 없다. 멀리서 저 흙빛의 풀숲을 가소롭게 여겼는데, 생각보다 훌쩍 키가 크고 무성한 모양이다.
옛날에는 강변에 해양진이라는 나루터가 있었다. 뇌진(磊津)이라 부르기도 했다. 돌무더기 나루터라는 뜻이다. 그 시절 마을은 말이 쉬어가는 '마휴촌'이었고 인근 사람들은 그저 쉬이 '나루가 마을'이라 불렀다. 서애 유성룡의 부친인 유중영이 삼랑진에서 나룻배를 타고 이곳 뇌진으로 오면서 김해의 아이 배운상에게 지어준 시가 전한다. '금관의 천년 옛 땅에서/ 기특한 아이 한 명 또 있네./ 말없이 푸른 강물 쳐다보다가/ 정 간직하고 동쪽으로 향하네.' 기특한 아이는 사공이었을 테지. 자전거를 탄 청년의 앳된 옆얼굴이 휙 지나간다. 검은 배낭에 꽂힌 태극기가 벌써 멀어진다. 생림제 이전에는 독산둑이었다. 일제강점기 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휴의 풍경이 사라졌고 다리가 놓였으며 마휴는 마사가 되었다. 강변에 모래가 많아서.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강변 모래밭에 보리와 메밀, 목화, 삼베 등을 키우며 살았다. 지금 독산은 벽화마을이다. 골목 끝자락 둑 아래에는 야생화로 조성한 '기차마을 꽃길'이 있다. 꽃길 앞에 벚나무 한 그루 저 혼자만 화사하다.
골목 끝자락 둑 아래에는 야생화로 조성한 '기차마을 꽃길'이 있다. 꽃길 앞에 벚나무 한 그루 저 혼자만 화사하다.
어느 집 뒤안에 백매화와 홍매화, 목련과 개나리가 한꺼번에 피었다. 부드러운 금색의 크고 순한 개 한 마리가 개나리꽃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는 바라본다. 나는 안녕, 하고 입으로만 벙긋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개는 조용했고, 물기어린 눈동자로 올려다보면서 서 있었다. 둑 사면은 푸르다. 푸른 가운데 샛노란 갓꽃과 깨알 같은 하얀 냉이꽃. 청보라 빛 봄까치꽃과 자줏빛 광대나물이 어울어울 무리지어 피어 있다. 쑥이 많다. 어리다. 그러나 금세 쑥이 확실해? 하고 되묻는다. 그러면 대답을 못한다. 어릴 때는 종종 쑥을 캤었지만 이제는 쑥 앞에서 갸웃거린다. 문득, 지난주 바닷가에서 만났던 부부가 생각난다. 그게 뭔가요? 부인은 금방 캔 푸른 것을 들어 보이며 함박꽃처럼 말씀하셨다. 쑥. 저 앞에 할머니가 둑길을 걸으신다. 뒷짐 진 손에서 검은 봉지가 달랑거린다. 분명 쑥일 게다. 그러나 모를 때는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멀어져가는 할머니를 향해 달린다. 할머니, 할머니.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삼랑진IC로 나간다. 삼랑진IC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직진하다 송지사거리에서 우회전해 김해방향으로 간다. 삼랑진교를 건너 마사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직진, 회전교차로에서 10시 방향 밀양, 삼랑진방면으로 나가 김해 낙동강 레일파크 안내판을 따라가면 된다. 레일파크 주차장 입구 앞에서 우회전하면 낙동강철교전망대가 바로 보인다. 전망대 아래에 주차공간이 조그맣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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