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체육대회(이하 도민체전).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북도 연례 행사 가운데 손에 꼽힐 만큼 큰 이벤트였다. 체육부 기자로 있었던 1990년대 중반 쯤엔 한 해 취재 리스트 가운데 전국체전 다음으로 비중이 큰 게 도민체전이었다. 당시엔 프로야구를 제외하곤 이렇다 할 인기 스포츠가 별로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다. 도민체전이 열리면 체육부 1·2진 기자가 모두 출장을 갔다. 사진기자와 취재차량 기사도 함께였다. 일주일 가까이 여관방을 잡아 함께 숙식을 했다. 온종일 취재 후 밤늦게까지 기사를 작성, 이튿날 아침 일찍 마감(당시는 석간)을 했다. 체육면은 아예 도민체전 특별판(2~2.5개 지면)으로 제작됐다. 경기 스트레이트는 물론 금메달 선수 인터뷰, 화제성 박스, 이모저모, 취재수첩 등 챙겨야 할 기사 꼭지가 이만저만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낯선, 옛 도민체전 취재의 추억담 한 토막이다.
도민체전의 기원은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리되기 전 도청 소재지인 대구에서 제1회 대회가 열렸다. 도민체전으론 전국 최초였다. 직전 해 대구에서 열린 전국체전 때 어렵사리 지은 종합운동장을 썩히지 않을 요량이었다. 첫 회 대회 땐 강원도에서 경북도로 새로 편입된 울진군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체력은 시·군력(力)'이었다. 도민체전 성적은 지역의 위상과 직결됐다. 선수들은 사생결단의 각오였다. 그저 달리고 던지며 친목을 다지는 행사가 아니었다. 지역의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체육부 기자 시절 종종 뵈었던 고(故) 박만태 경북체육회 고문(전 영남일보 체육부장)은 생전 "해마다 도민체전 열기가 과열돼 선수끼리 멱살을 잡거나 심판에게 대드는 일이 예사였다"며 "이를 말리고 수습하는 게 큰 일이었다"고 했다.
1981년 직할시 분리로 도민체전에서 사라진 대구 선수단이 2019년, 무려 38년 만에 도민체전에 깜짝 등장한 것도 잊을 수 없다. 도민체전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다. 지역 언론은 이를 대구·경북 상생협력의 상징으로 평가했다. 경북과의 경계선이 그어져 있어도 삶의 뿌리까지 끊어지진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2020년엔 코로나19로 대회가 취소되고, 이듬해에도 정상적 개최가 여의치 않았다. 대회가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그 공백을 실감했다. 도민체전은 바로 그런 존재로 내 뇌리에 각인돼 있다. 기어코 봄은 오듯, 2022년 포항에서 다시 본궤도에 올랐을 때 선수와 관중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올해 제64회 도민체전이 다음 달 3~6일 안동·예천에서 펼쳐진다. 두어 달 전만 해도 내심, 이번 도민체전의 '각별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었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이 성사된다면 '도민체전'이란 이름으론 마지막 대회여서다. 아울러 새로운 통합 공동체의 첫 출발을 알리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행정통합이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열리는 이번 도민체전은 일말의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도민체전이 주목을 덜 받을 이유는 결코 없다. 특별한 의미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경북 북부권의 핵심축이자 화합·협력의 상징인 안동과 예천이 함께 주관한다는 점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체전이 미래 대구경북행정통합의 자양분을 쌓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대회가 '경북도청 이전 10주년'을 기념한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2026년 안동·예천 도민체전의 성공을 기원한다. 다음 대회는 '대구경북통합특별시민체전'이다.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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