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위원장 맡은 의성 출신 김현권 전 의원
김 위원장 “고준위 방폐장 부지 올해부터 배제 작업 시작”
13년 걸리는 영구 처분장 부지 선정, 속도보다 절차적 동의 우선
27일 서울 종로구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 사무실에서 김현권 위원장이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 제공>
올 초 이재명 정부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확정 지어 눈길을 끌었다. 당초 정부에선 재생에너지 확대를 약속했지만 AI(인공지능) 산업과 전기차 대중화 등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탈석탄 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었다.
이처럼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지만 지난 50년간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 있다. 바로 원전을 가동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고준위방폐물·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다.
다행인 점은 수많은 진통 끝에 제22대 국회 들어 여야 합의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처리됐다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이 같은 '난제'를 진두지휘할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가 출범했다. 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와 부지 조사 및 선정 등 필요한 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예정이다.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은 제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며 현실 정치를 경험한 경북 의성 출신의 김현권 전 의원이 맡았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국회 기후위기 비상자문위원회 사회적 대화 위원장과 2050 탄소중립위원회 위원 등 다양한 기후위기 대응 관련 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의 정무적 감각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고준위 방폐물 처리 문제는 첫발을 내딛게 됐다. 그를 만나 총 13년으로 예상되는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과정과 원전 밀집 지역인 대구·경북(TK)을 비롯한 영남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 초대 위원장으로서 어깨가 무거울 텐데.
"지금 전 세계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에너지다. AI 시대를 맞아 전력 수요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늘고 있고, 중동 전쟁 등으로 에너지 안보 문제까지 겹쳤다. 국제에너지기구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에너지 자립도는 19%에 불과한데, 그 19% 중 무려 79%를 원자력이 차지한다. 석유나 가스가 전혀 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원자력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필수 에너지원이다. 그렇다면 발전소 운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폐기물 처분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은 앞으로 쓸 전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쓴 전기'에 대한 마땅한 책임이다."
◆ 위원회의 구체적인 임무와 당면한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3년에 걸쳐 '영구 처분장 부지'를 확보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당장 2030년부터 포화 시점이 닥치는 발전소 부지 내 '임시 저장 시설'을 짓는 일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광, 울진, 고리 원전의 부지 내 임시 저장 시설 건설을 위한 주민 협의를 올해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 영구 처분장 부지 확보 역시 올해부터 과거 지진 단층이 있었거나 인구 밀집도가 높은 '부적합 지역'을 배제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를 바탕으로 2027년에 지자체 공모를 받고, 기본 조사와 심층 조사를 거쳐 최종 후보지를 복수로 선정한 뒤 주민투표를 통해 최종 확정하게 된다."
◆ 부지 선정에만 13년이 걸리는데, 지난 50년간 미뤄온 숙제 치고는 속도가 너무 더딘 것 아닌가.
"과거 부안 사태 등 정부 차원에서 9번이나 부지 확보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우리는 뼈아픈 실패를 통해 갈등을 겪으며 사회적 학습을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여야 합의로 탄생한 이번 특별법이다. 핀란드와 프랑스, 스웨덴 등 우리보다 부지 확보에 앞서 나가 있는 선도국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이 '서두르면 더 늦어진다'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다고 과정을 건너뛰다 절차적 하자가 발생하면 반대하는 측의 명분만 강해진다. 지질학적 안전성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주민 수용성(동의)을 확보해 나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김현권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부처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과거 방폐장 유치 때와 비교해,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변화가 있나.
"과거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이 들어설 때 특별지원금 3천억원이 지원됐다. 그런데 그 돈이 경주시, 즉 지방자치단체로 지원이 이뤄졌다. 경주에 가보니 거리에 '3천억 어디 갔노?'라는 현수막이 붙기도 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내게 돌아오는 혜택'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이번 특별법에는 특별지원금의 절반까지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시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이런 특수 시설을 수용해 국가에 기여한 지역에 대해 국가는 단순한 금전 보상을 넘어 그 지역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발전 계획을 책임지고 수립한다. 최근 고리 2호기 계속 운전 결정으로 지자체에 1천300억 원의 지원금이 나가는데, 해외의 경우 이를 지자체에 그냥 지원하기 보다 전문성을 갖춘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그곳에 주민이 참여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금을 운용하도록 한다. 우리도 이런 방식을 고려하는 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 원전이 밀집한 영남 지역 입장에서는 고준위 방폐장 유치 가능성이나 운송 문제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영구 처분장 대상지는 해안선을 끼고 있거나 근접한 곳이 유력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간 각 원전에서 발생한 중저준위 폐기물들이 경주 월성으로 올 때 모두 해상 운송을 거쳤다. 향후 고준위 폐기물 역시 해상으로 운송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흩어져 있는 발전소에서 폐기물을 운송하는 경로와 동선을 최소화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현재 원전들의 배치도를 감안하면 동해안 지역이 유력한 후보군 중 하나로 꼽힐 수밖에 없는 구조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27일 서울 종로구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 사무실에서 김현권 위원장이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 제공>
◆ 고준위 방폐장의 위치도 문제지만 기술적인 안전성에 대해 불안해하는 국민도 많다.
"현재 우리의 고준위 방폐물 처분 기술력은 선도국 대비 60~80%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이를 10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특별법에 따라 강원도 태백에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을 조성해 실증 연구를 진행한다. 앞서간 나라들도 모두 이 과정을 거쳤고, 일본은 이미 두 번째 지하 연구 시설을 운영 중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제조업 및 토목 강국이다. 본 시설을 짓기 전까지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세계적인 안전 표준 모델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 원전과 전력 인프라가 집중된 영남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영남 지역은 수많은 원전을 품고 국가 전력 생산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금까지는 막대한 전기를 생산해 타 지역에 공급하는 측면이 컸다면, 이제는 이 에너지를 활용해 지역 산업을 어떻게 키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당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15기가와트(GW)의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 안보나 전력망 효율을 보더라도 첨단 산업 시설을 수도권 한 곳에 몰아두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대만 TSMC 공장이 전국에 분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 지역이 가진 막대한 에너지원(원전)을 바탕으로 어떻게 첨단 산업화를 이뤄낼 것인지 중앙정부와 치열하게 협의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