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위기 속 선택된 구조적 처방
생활 인프라 개선 넘어 지역경제 회복 실험
완공 이후가 더 중요해진 도시재생의 다음 단계
2026년 준공 예정인 해오름센터 조감도. 창업 지원과 주민 커뮤니티 기능을 결합한 복합 거점 공간으로, 봉화군 도시재생사업의 핵심 시설로 조성된다. <봉화군 제공>
경북 봉화군 도시재생사업이 올해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주민 커뮤니티와 창업 지원의 복합 거점 공간인 해오름센터 등 핵심 거점시설들이 차례로 준공을 앞두고 있다. 봉화군의 도시재생사업은 단순한 경관 정비나 시설 확충을 넘어 '인구 감소·생활기반 약화'란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정책 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지방소멸위험지수 분석(2024년 3월 기준)에 따르면 봉화군은 전국 228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소멸 고위험군 상위권에 포함됐다. 경북 22개 시·군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한다.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봉화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초고령화, 상권 축소, 주거 환경 노후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2022년 시작된 봉화 도시재생은 봉화읍 내성지구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큰 축을 이룬다. 물리적 정비와 주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병행하며 생활기반 유지와 공동체 회복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 특히 올해 하반기 준공 예정인 해오름센터, 그린 생활지원센터, 늘봄춘양은 앞으로 봉화 도시재생 정책의 성과를 가늠할 핵심 거점으로 평가된다.
생활 기반 회복이 보여준 도시재생의 실제 효과
도시재생 사업에서 가장 먼저 체감되는 변화는 생활 인프라 개선이다. 내성시장 아케이드 설치는 전통시장 이용 환경의 가장 기본적인 취약 요소였던 기후 의존성을 완화했다. 약 100m 규모의 비가림 구조는 체류시간 증가와 소비 환경 개선이라는 직접적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도심 주차 문제 해소를 위한 주차타워 조성 역시 상권 접근성 개선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지방 소도시 상권의 경쟁력은 상품 다양성보다 접근 편의성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기반시설 개선의 효과가 주목된다. 노후 주택 정비 지원사업은 도시재생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20년 이상 경과된 주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집수리 사업은 거주 안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 단열 성능 개선과 생활 안전성 보강은 고령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 특성과 맞물려 복지정책 성격을 갖는다.
도시재생이 관광중심 개발로 흐르는 다른 지역과 달리 봉화는 생활기반 유지에 무게를 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전국의 도시재생 사례를 보면 시설 준공 이후 활용도가 낮아지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물리적 공간이 조성되더라도 운영 주체와 프로그램이 확보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지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봉화군은 시설 조성과 함께 주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병행했다. 로컬식품 개발 교육, 콘텐츠 제작 교육, 창업실습 과정 등은 단순 체험을 넘어 실제 소득 창출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최근 진행된 인공지능(AI) 활용 홍보교육과 로컬 브랜딩 교육은 지역 상권의 디지털 대응 역량 확보를 시도한 사례로 평가된다. 인구 규모가 작은 지역일수록 온라인 시장 접근성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있다. 생활목공 프로그램과 야생초 활용 교육 역시 공동체 활동과 생활 기술을 결합한 형태다. 이는 주민간 관계망 회복이라는 사회적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 도시재생의 성과는 시설 완공이 아니라 운영 지속성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시도는 정책 실험의 성격을 띈다.
춘양면 행정·문화·복지 기능을 통합한 복합시설 '늘봄춘양' 조감도. 지역 생활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면 단위 도시재생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봉화군 제공>
3대 거점시설이 보여줄 지속가능성의 조건
올해 준공 예정인 해오름센터는 창업지원 기능과 주민 커뮤니티 기능을 결합한 복합 공간으로 꾸며진다.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경제 활동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을 지가 핵심 과제다. 그린 생활지원센터는 돌봄 기능과 체류 기능을 함께 배치한 구조다. 고령화 대응 복지 공간과 방문객 체류 공간을 결합해 지역 내 소비 활동을 유도하는 모델이다.
춘양면 늘봄춘양은 행정·문화·건강 기능을 통합한 복합 시설로 조성된다. 면 단위 지역에서 공공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이 기대된다. 다만 시설 구축 자체가 지역 활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용률 확보와 운영 프로그램 지속성이 정책 효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봉화 도시재생은 특정 시점에 종료되는 사업이 아니라 장기간 변화 과정을 전제로 한다. 준공 이후 운영 단계가 정책 효과를 확인하는 실질적 시험대가 된다. 봉화 사례는 지방소멸 위험 지역에서 도시재생 정책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정책 실험으로 평가된다. 생활 기반 유지, 공동체 회복, 소규모 경제 활동 창출이라는 세 가지 목표가 실제로 맞물려 작동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앞으로의 운영 과정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 5년의 준비 끝에 모습을 드러내는 핵심 시설들은 결과라기보다 조건에 가깝다. 도시의 지속 가능성은 건물의 형태가 아니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활동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봉화읍 내성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집수리 교육에 참여한 주민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봉화군 제공>
박현국 봉화군수 "도시재생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일"
박현국 봉화군수
2022년 시작된 봉화군의 도시재생사업은 내성지구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중심으로 생활 인프라 개선과 공동체 회복, 지역 경제 기반 구축을 동시에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박현국 봉화군수<사진>는 이번 도시재생의 핵심 성과에 대해 "단순히 건물을 새로 짓는 수준을 넘어 지역 상권의 자생력과 보편적 복지 기반을 동시에 마련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군수는 내성시장 아케이드와 주차타워 조성 사업을 언급하며 "지역 상권이 갖고 있던 구조적 제약을 해소해 소상공인이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주거 환경 개선 역시 주요 성과로 꼽았다. 그는 "노후 주택 집수리 지원과 노인 돌봄 기반 확충은 단순한 시설 개선이 아니라 군민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완하는 정책이었다"며 "누구도 복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도시재생의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주민 참여형 운영 구조다. 봉화군은 마을관리 사회적 협동조합을 통해 주민이 직접 시설 운영에 참여하는 모델을 도입했다.
박 군수는 "행정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이 경제적 주체로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며 "주민들이 직접 수익 구조를 만들고 그 성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와 경제 기능을 결합한 시설 구조 역시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오는 8월 준공 예정인 그린 생활지원센터는 노인 돌봄 기능과 체류형 공간을 함께 배치했다. 복지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일부 공간에서 수익을 창출해 운영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박 군수는 "재정 부담만 증가하는 복지 구조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복지와 경제 기능이 공존하는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9월 준공 예정인 늘봄춘양은 행정과 문화, 건강 기능을 결합한 복합 공간으로 조성된다. 면 단위 지역에서도 문화와 복지 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지역 간 격차를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박 군수는 "행정 서비스와 문화 프로그램, 건강 관리 기능을 한 공간에 통합함으로써 주민들이 여러 시설을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줄일 수 있다"며 "생활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 곧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재생 정책이 단기간 성과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운영 주체의 역량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군수는 "주민들이 이미 교육과 실습 과정을 통해 로컬 브랜딩과 상품 개발 역량을 축적해 왔다"며 "행정은 초기 정착 단계에서 필요한 교육과 홍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업을 통해 확인한 가장 중요한 가능성은 주민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라며 "도시재생에서 축적된 경험을 농업과 관광, 지역 산업 전반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산림 자원과 농특산물 등 지역 자원을 활용한 로컬 경제 활성화를 중장기 전략으로 제시했다.
박 군수는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한 로컬 브랜드 경쟁력이 높아지면 경제적 성과가 다시 복지 확대와 공동체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도시재생의 의미를 시설이 아닌 사람의 변화에서 찾았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낡지만, 주민의 역량은 지역의 미래를 만든다"며 "이번 도시재생은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살아갈 힘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끝으로 "올해 준공될 거점시설은 도시재생의 결과라기보다 다음 단계를 위한 기반에 가깝다"며 "봉화군 도시재생이 실제 지역 구조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자신했다.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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