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존중받을 때, 교육이 살아난다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교사의 권위와 수업권이 소리 없이 침식되고 있다. 겉보기엔 잔잔한 수면 같아도 그 아래의 균열은 이미 깊다. 아래 학년으로 내려갈수록 교사의 피로도는 더 높아진다. 현장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싸우는 학생을 꾸짖었다고 아동 학대로 항의받는 교사, 단호한 훈계가 정서적 학대로 몰릴까 봐 침묵을 택하는 고립, 자는 학생을 깨우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어버린 현실. 이 역설적인 장면들은 공통된 경고를 보낸다. 가장 교육적인 행동이 가장 위험한 행위가 되어버린 교실에서, 교사는 교육의 주체가 아니라 민원을 방어해야 하는 수동적 관리자로 전락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교권의 약화는 곧 수업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고스란히 학생의 학습권 침해로 돌아온다. 교사가 적극적으로 지도하지 못하는 교실에서는 규칙이 흐려지고 배움의 긴장감이 사라진다. 수업은 깊이를 잃고, 학생들은 자신을 단련하며 배우는 기회를 놓친다. 방임이 권리로 오인되고 훈육이 폭력으로 매도되는 혼란 속에서, 공교육은 성장의 사다리가 아닌 각자도생의 현장이 된다. 결국 교권 침해는 교사 개인의 수난이 아니라, 교육 공동체 전체의 붕괴를 예고하는 위험한 신호탄이다.
오늘날 학교는 '민원 없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잘 가르치는 일보다 문제를 만들지 않는 일이 중요해지는 순간, 교육은 본질에서 멀어진다. "무사히 한 주를 넘기는 것이 목표"라는 자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의 배경에는 권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권위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권위 그 자체를 부정하는 우를 범했다. 그러나 권위주의가 억압이라면, 정당한 권위는 책임과 신뢰에서 비롯되는 힘이다. 교사의 권위는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배움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중심축이어야 한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관계의 예술이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때로는 학생의 흥미를 돋우는 '광대'이고, 학생의 잠재력 파내는 '광부'이며, 학생의 특정 자질을 구체화하는 '예술가'다. 그러나 이 다면적인 역할은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전제될 때만 가능하다. 학부모의 역할 또한 치명적이다. 과잉된 보호 본능이 교육의 저울을 흔들 때, '내 아이'라는 울타리는 공동체의 교육 토양을 갉아먹는 독이 된다. 진정한 사랑은 단기적인 감싸기가 아니라, 아이가 사회의 질서 속에서 타인과 어울리며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 교사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결국 내 아이를 가장 안전하고 품격 있게 키우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교육 당국이 응답해야 한다. 현장의 고통을 직시하고, 교사가 안심하고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로부터 교사를 보호하고, 교사의 교육적 판단에 대해 '사법적 잣대' 대신 '교육적 중재'가 우선시되는 법적 기제가 절실하다. 동시에 교사들 역시 전문성과 윤리성을 갈고닦아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교육 행정가들은 표심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잣대 삼아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압축 성장의 속도전 속에서 원칙을 세우지 못했고, 민주화의 열기 속에 꼭 필요한 권위마저 해체해 버린 결과다.
이제 방향을 다시 잡아야 한다. 권위는 강요가 아니라 신뢰 위에서 꽃피는 법이다. 교사는 전문성을 지키고, 사회는 그 고귀한 헌신을 존중해야 한다. 학부모는 교사를 교육의 동반자로 믿어주고, 학생은 절제와 존중을 배워야 한다. 작은 존중의 습관 하나가 교실의 공기를 바꾸고, 그 분위기가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자질을 넘을 수 없다"라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하다. 교사가 존중받는 교실에서만 배움의 전 과정은 살아 움직인다.
교권 회복은 교사만을 위한 이기적인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선택이자 공동의 약속이다. 교실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외면하는 교실 붕괴는 결국 우리 모두의 미래를 무너뜨릴 거대한 파열음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이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실은 조용히, 확실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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