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4명 '극단적 생각 해본적 有'
불안,무기력 등으로 고립되는 청년多
"심리상담 거부감 느끼는 경우 많아
취업 연계하며 자연스레 마음 어루만져줘"
'자립'이란 출발선에 선 청년들은 통상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여건상 선택의 여지 없이 일찍 홀로서기에 나서는 '이른 독립'과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른 현실의 벽 앞에서 자립을 미루는 '유예된 독립'이란 양면성이 공존한다. 영남일보가 '사회적 책임'이란 굴레 속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상편(이른 독립)엔 '자립준비청년'과 '가정 밖 청소년'을, 하편(유예된 독립)엔 '캥거루족'과 '전업자녀'의 목소리를 담아내 이들이 온전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자립준비청년 가운데 우울감과 무기력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지원기관들은 정서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혼자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는 현실이 가혹할 뿐…"
김서연(가명·여·25)씨는 대구지역 자립준비청년(아동양육시설에서 만 18세에 보호가 종료돼 사회에 홀로 나와 자립을 준비해야 하는 청년)이다. 김씨는 5살 때 보육원에 맡겨졌다. 나이가 들어 만 18세가 될 무렵, 퇴소 시점이 도래하자 그의 고민은 컸다. 시설 이용 기간을 연장(만 24세까지 연장)해 봤자, 언젠가는 시설 밖 삶을 혼자서 지탱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게 뻔해서다. 결국, 독립이란 '선택의 기로' 앞에 선 김씨는 일찍이 사회 공동체 속으로 스며들어 인생 경험을 쌓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정했다. 그는 "자립청년이란 틀 안에 계속 갇히다 보면,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빨리 사회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보육원을 나온 김씨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늘 누군가가 방향을 정해주던 환경에 있다가, 오롯이 혼자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리면서다. 그는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인생이 순탄하지 않다 보니, 장밋빛 미래에 대한 구상을 짜기가 힘든 편이다. 사회의 소중한 일원이 된 것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현재 김씨는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독립 초기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지원 제도를 활용해 어느정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구색을 갖춘 상태지만, 직업이 있음에도 불확실한 미래에 막막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는 "퇴소할 때 받은 자립정착금 1천만원은 보증금과 생활용품, 대학에 필요한 노트북 등을 마련하고 나니 순식간에 사라졌다"며 "현재까지 매달 50만원씩 지급되는 자립수당이 큰 도움이 됐지만, 2개월 뒤면 지원이 끝난다. 불안한 마음에 현재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것 외에도 필라테스 강사 등 부업을 알아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친구(자립준비청년)들의 자립정착금이나, 자립수당 등을 노린 외부인들이 교묘하게 돈을 빼앗는 경우도 봤다. 이를 다잡아 주거나, 상담할 주변 어른이 사실상 없다. 우리 스스로가 사회성이 다소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김씨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외로움'이다. 낯선 사회 환경에서 풍기는 '이질감'과 사회에 혼자 남겨졌다는 '좌절감', 홀로서기에 따른 '고독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면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는 "힘든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운동 등 개인 취미를 통해 외로움을 이겨내는 편이다. 무기력함이 올 때면 이를 꽉 깨물고 버티는데 여간 쉽지 않다"며 "자립준비청년들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특히, 가족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피하게 되는 편인데,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까운 사람들은 눈치를 채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이걸 어떻게 견뎌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가장 큰 목표는 '가족 만들기'다. 막연한 불안감이 앞서다 보니 저축을 하며 결혼 자금을 모으고 있다"며 "시설에서 생활하다 홀로 독립하는 경우 대처 능력이 부족할 수 있는 만큼, 반찬 만들기나 금융 교육 등 실생활에 필요한 교육이 지금보다 더 확대되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대구 남구 대구시청소년자립지원관에서 가정밖청소년 김민우(가명·23)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윤화 기자
◆"부모가 있지만, 우리들은 사회로 내몰렸다"
자립준비청년처럼 원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사회로 내몰린 또 다른 이들도 존재한다. 바로 '가정밖청소년'(가정폭력·학대·갈등·해체·방임, 가출 등으로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청소년 쉼터 등에서 사회적 보호 및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이다.
취재진이 만난 김민우(가명·23)씨도 여느 자립준비청년과 같이 독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부모님의 이혼 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구에서 부친과 함께 지낸 김씨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원룸을 전전했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고가 지속되자, 가정생활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20살이 지난 후 자신이 직접 복지 쉼터를 찾게 됐다. 그렇게 여러 곳에 연락을 돌린 끝에 21살이 되던 무렵 지역 내 청소년 중장기 쉼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가 분류된 집단은 '가정밖청소년'. 하지만, 그로부터 약 2년 후 그는 시설을 퇴소했다. 시설 퇴소 시기(만 24세까지)와 맞물린 것도 있지만, 성인 나이에 언젠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홀로서기를 해야 했기에 굳은 결심을 내렸다.
그는 "학생 시절도 아니고 성인이 된 나이에 쉼터에 입소했지만, 그 당시 상황은 절박했다. 월세조차 내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가정밖청소년으로 분류된 탓에 겨우 시설에 입소했다"며 "나를 받아준 쉼터가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컸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입소한 탓에, 퇴소 시기도 그만큼 빠를 수밖에 없어서다"고 말했다.
현재 김씨는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일찍이 어렸을 때부터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한 탓에, 성인이 돼서는 괴리감이 덜 할 것으로 판단했지만 오산이었다. 오히려 성인이 돼 독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피부로 와닿는 애로사항이 더 많았다.
그는 "월세와 생활비 등을 감당하면 남는 돈이 많지 않아 미래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미용 분야로 진로를 고민하고 있지만, 선뜻 도전하기가 망설여진다. 직업 훈련이나 진로 준비까지 병행하려면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며 "부친을 마냥 등질 수도 없다. 갈등이 있더라도, 내 혈육이 아닌가. 최근 LH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행운도 얻었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가계부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보육원이든 쉼터든 어려운 환경에서 지낸 것은 마찬가지다. 심리적으로 고립된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누가 더 힘든지를 비교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다만, 내가 대구시민으로서 우뚝 설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가 더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하소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설 밖 아이들, 경제적·심리적 어려움↑
29일 대구시에 확인 결과, 대구지역 자립준비청년은 2024년 373명, 2025년 352명, 2026년(2월 기준) 372명으로 매년 300여명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대구지역 가정밖청소년을 전담하는 지역 내 청소년 복지시설 5곳(일시고정형쉼터·여자단기청소년쉼터·남자단기청소년쉼터·여자중장기청소년쉼터·남자중장기청소년쉼터)의 입소자 수는 2023년 692명, 2024년 756명, 2025년 656명이다.
통상 이들 모두가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되는 시기는 시설 밖으로 내몰리는 '사회 진입 초기'다. 각종 지원 제도에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경제적 계획이 부족해 사회 정착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성인으로서 정상적인 사회 구성원에 속하지 못했다는 심리적 압박이 가해지면서다.
현재 이들은 5년간 자립수당(매달 50만원·시설 입소 2년 충족)을 제공받는다. 대구에선 전담기관을 통해 LH 연계 주거 지원, 학업 지속을 위한 교육비 지원, 취업 프로그램 지원 등이 추가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소한의 주거와 끼니에 대한 걱정이 없는 구조가 갖춰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진입에 돌입한 자립준비청년과 가정밖청소년이 느끼는 실질적인 정책 체감도는 미미한 편에 속한다고 진단했다.
인천대 전지혜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이들은 사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주거·생계·취업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며 "특히 안정적인 주거 기반이 부족한 상태에서 불안정한 일자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경제적 취약성이 장기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거와 학비 등 기본 생활은 상당 부분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오히려 근본적인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지원을 받더라도 이를 어떻게 써야 하고, 현 생활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른다. 더군다나, 지원 제도를 잘 몰라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도 문제다"며 "현재 주거비나 생활비 등 단기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립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사례관리와 지속적인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겪는 심리적 어려움도 문제다. 고립이나 은둔 상태로 이어지는 상황 대다수가 사회적 실패를 경험할 때인데, 이를 극복할 회복 욕구가 없거나 재기 속도가 더딘 경향을 보여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자립지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자립준비청년 중 평생 한 번이라도 자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6.5%에 달했다. 같은 조사에서 전체 청년(10.5%)보다 4배가량 높았다.
이를 두고 전 교수는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경험으로 인해 신뢰 관계 형성이 어렵고, 사회적 지지망이 부족해 고립감을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이게 우울감이나 무기력으로 이어져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지원과 함께 정서적 돌봄이 병행되는 체계가 중요하다. 주거·일자리 지원뿐 아니라 상담, 멘토링 등 관계 기반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사후 관리를 평생 이어갈 수 없는 만큼, 이들을 제대로 성장시킬만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전담 인력 충원 등 지원 체계의 내실화를 통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대구지역 자립준비청년과 가정밖청소년의 규모 및 지원 제도 비교. Gemini 생성 이미지
◆같지만 다른 '자립준비청년'과 '가정밖청소년'
이들 집단 모두 만 18세가 되면 시설(만 24세까지 연장)을 나와야 하지만, 지원 기준에 있어선 다소 상황이 엇갈린다. 자립준비청년은 보건복지부가, 가정밖청소년은 성평등가족부가 전담 부처인 까닭에 지원 정책에 조그마한 격차가 발생한 것이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 등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다가 보호가 종료된 경우로, 사실상 부모의 보호가 공식적으로 단절된 상태에서 자립을 시작하게 된다. 이에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각종 복지제도 이용 시 개인 단위로 판단받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됐다. 반면, 가정밖청소년은 가정폭력이나 갈등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원가정을 떠나 있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부모와의 관계가 유지된 상태가 대다수다. 이로 인해 국가장학금 신청 등의 소득 산정 과정에서 부모의 소득 기준도 함께 고려돼 제약을 겪는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가정밖청소년과 자립준비청년 모두 보호시설에서 2년 이상 생활한 경우, 퇴소 후 최대 5년간 월 50만원의 자립수당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자립준비청년은 보호 종료 후 1천만원의 자립정착금을 받지만, 가정밖청소년은 경기(1천만 원), 부산(1천200만 원)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받지 않는다. 대구 역시 해당되지 않는다.
다른 지원 제도에서도 차이가 확인된다. 자립준비청년은 모두 디딤씨앗통장(아동발달지원계좌)에 가입할 수 있지만, 가정밖청소년은 일정 소득 기준(차상위계층 이하)을 충족해야만 가입이 가능하다. 또, 보육원에서 5년 이상을 지내면 군 면제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청소년쉼터 출신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명지대 권일남 교수(청소년지도학과)는 "자립준비청년과 가정밖청소년은 모두 원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사회에 나선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가정밖청소년은 법적 가족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가 많아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보호시설에서 생활했더라도 가족관계증명서 상 부모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따라 지원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의 신뢰성 문제는 고려해야겠지만, 실제로 원부모와 연락이 끊긴 경우엔 이를 반영할 수 있는 별도의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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