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주 새마을문고 대구북구지부 회장
꽃이 피는 계절은 역설적으로 잔인하다. 봄의 색채가 짙어질수록 그 빛에 가려진 개인의 그늘은 더 선명해진다. 거리가 생동하는 이 시기에 내가 집어 든 책은 구병모의 '절창(切創)'이다. 제목에서 풍기는 서늘한 기운이 봄의 온기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흔히 '절창'을 빼어난 노래(絶唱)로 떠올리지만, 이 소설은 '날카로운 도구에 베인 상처(切創)'를 뜻한다. 작가는 삶의 표면 아래 숨겨진 흉터를 드러내고, 무심한 말과 편견이 남긴 흔적을 마주하게 된다.
이 상처는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절창'은 우리가 일상에서 스쳐 지나치던 이웃의 아픔을, 책장을 넘기는 순간 또렷이 드러낸다. 독서는 내가 겪지 못한 삶에 닿아보는 공감의 과정이며, 그 공감은 흩어진 개인을 다시 공동체로 잇는 힘이 된다.
그래서 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시간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마주하며 마음의 벽을 허문다. 이 공감은 서로를 이해하는 기반이 되고, 결국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이런 경험은 현장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새마을문고에서 이웃들과 책을 나누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절창'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의 상처는 예기치 못한 순간 깊게 파고들고, 그 틈으로 삶의 의욕과 신뢰가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그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 그것이 치유의 출발점이다.
이 깨달음은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문제로 이어진다. 타인의 상처에 무감각한 사회는 결국 균열을 맞는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또 다른 아픔을 낳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나누는 이유는 분명하다.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나의 상처를 돌아보며 치유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 독서는 서로에게 닿아 있음을 확인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공감의 행위다.
이러한 공감이 이어질 때, 공동체는 비로소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때 책을 매개로 사람을 잇는 공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래서 새마을문고는 책을 넘어 마음을 잇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웃의 상처를 함께 들여다보고 보듬는 사랑방이어야 한다. 그 속에서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을 나누며,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아픔에 응답하는 공감의 연대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이 봄, 잠시 숨을 고르고 책의 첫 장을 넘겨보기를 권한다. 치유는 그 순간 시작되며, 우리는 책 속의 길 위에서 상처를 삶의 힘으로 바꾸는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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