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산성은 서쪽의 단애를 천연 성곽으로 활용하고 북·동·남쪽의 8~9부에 약 812m의 성곽을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금오산성, 가산산성과 함께 영남의 중요한 산성이었다.
산이 곧 성이라 했다. 천길 단애가 가로로 길게 이어져 난공불락의 성벽을 이루었고 정상은 테이블처럼 평평해 왕궁을 지을 만했다. 어릴 때 TV에서 처음 보았던 고구려 오녀산성의 모습이다. 그것은 경외에 가까운 놀라움으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장면이었다. 수십 년이 지나 우연히 본 구미 천생산(天生山)의 사진에서 오래전의 감상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하늘이 만들었다는 천생산, 그곳 역시 성이었다.
천생사. 수많은 석상과 불상, 수백 개의 돌탑, 자연 바위를 이용해 만든 와불이 특이한 절집이다.
천생산성까지 가장 빠르게 오르고 싶다면 천생사에서 시작하면 된다. 절집 왼편에 등산로가 있다.
◆ 천생산
천생산은 사방 곳곳에서 오를 수 있다. 하늘이 내린 성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서쪽의 황상동 검성지이고, 가장 대표적인 들머리는 남쪽의 천생산성 산림욕장 또는 유아 숲 체험원이며, 가장 빠르게 오르고 싶다면 동쪽의 장천면 신장리 천생사에서 시작하면 된다. 신장리 마을 초입 장천에서부터 천생산 전원마을을 지나 천생사 초입까지 벚꽃에 파묻혀 간다. 기대하지 못한 호사다. 멀리 평평한 산마루가 점점 가까워지다 이내 그 산에 들면 돌탑과 불상으로 가득한 천생사가 지나온 길을 내려다본다. 조금 어수선한 침묵 속에 영혼이 빠져나간 듯 실눈을 뜨고 누운 백구가 객을 맞는다. 갈 길을 모르는 듯 서성이는 몇 사람을 스쳐 돌탑과 진달래와 산벚과 조팝꽃이 이끄는 길을 따라 정상을 향해 오른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우뚝 멈추어 방향을 점친다. 어디로 가야 하나.
우선 유일하게 뚜렷한 오솔길로 들어가 본다. 빛 좋은 터에 창건주의 것이라는 부도 한 기가 서 있다. 천생사가 나무 줄기사이로 내려다보이고 어느새 목탁소리와 경 읽는 소리가 들린다. 이 길이 아니다. 오솔길을 되돌아 나와 추진력을 위한 숨을 훅 내쉬며 험한 바위지대로 올라선다. 최선의 낮은 돌을 골라 오르다 보면 등산로임을 말해주는 밧줄을 잡을 수 있고 사람의 손길이 더해진 계단을 밟을 수 있다. 이 길이 맞다. 수직의 집채 만 한 바위가 머리위에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다. 오, 오, 저 큰 바윗덩어리에서 역암층과 사질역암층, 사암층이 뚜렷이 구분된다. 강자갈 같은 돌멩이와 타포니도 쉽게 보인다. 서당 개 삼년인가, 대견한 풍월에 볼이 실룩댄다. 천생산은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 지형이다. 산 정상부가 탁자와 같이 평평한 것은 퇴적층이 융기되면서 수직 균열이 생기고 비바람에 깎인 결과다.
천생산성 북문지. 촘촘한 돌계단 앞에서 나무 계단 길과 북문지를 통과하는 길로 갈라지는데 두 길 모두 정상으로 향한다.
천생산성 암문 근처에 연못이 있다. 성 안에는 군기고 등의 건물과 연못 2개, 우물 등이 있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것이 미덕암이다. 천생산성은 산 서편 정상부의 긴 천연 성곽으로 활용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 천생산성
집채만 한 바위를 지나면 '정상 1.5㎞'라는 이정표와 함께 참나무 류가 우세한 숲길이 제법 편하게 이어진다. 산성의 흔적일지도 모를 사각형의 물구덩이를 지나면 안부사거리에 닿고, 촘촘한 돌계단을 오르면 천생산성 북문지가 열린다. 여기서 나무 계단 길과 북문지를 통과하는 길로 갈라지는데 두 길 모두 정상으로 향한다. 북문지를 통과해 성곽을 따라간다. 머지않아 동문지를 지난다. 분홍 줄딸기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참나무 충영(蟲癭)도 많이 보인다. 암문지와 치와 숲속의 연못도 본다. 한 커플이 암문지의 로프 울타리 곁에서 쑥을 뜯는다. "이게 토종 쑥이야." 토종 쑥도 궁금하지만 내 마음은 양지꽃에 가 있다. 먼 산들이 바다 같다.
남쪽 산은 유학산이다. 그 곁으로 칠곡 가산 일대가 가깝다. 천생산성은 서쪽의 단애를 방어시설로 활용하고 북·동·남쪽의 경사면 8~9부에 약 812m의 성곽을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의 금오산과 마주 보며 구미 동쪽을 둘러싸고 있는데, 금오산성, 가산산성과 함께 영남의 중요한 산성이었다 한다. 고려시대에 천생산성을 이용했다는 기록과 유물이 있고, 조선 초와 임진왜란 후 그리고 조선 후기까지 산성의 기능을 했다. 박혁거세가 성을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장천면 일대에서는 박혁거세의 이야기를 믿으며 혁거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생산 상봉의 천생산성 유래비와 제단. 2004년에 세운 비석에 혁거세와 곽재우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시문으로 쓰여 있다.
미덕암. 사방이 확 트인 깎아지른 절벽, 세 면이 그대로 천 길 낭떠러지다. 구미 시가지와 낙동강, 금오산, 황악산, 멀리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 서편 천혜의 성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여러 개의 치와 망루를 대충 인지한다. 이정표 외에 안내판이 없기 때문에 미리 숙지한 평면도로 가늠할 수밖에 없다. 남문지를 지나면 자그마한 천생산성 석비가 정상석을 대신해 쭈뼛한 자세로 바위 앞에 서 있다. 그 곁에 천생산성 유래비와 제단이 큼직하게 자리하는데 대개 이 일대를 천생산 상봉으로 여긴다. 여기서 남서쪽으로 쑥 돌출된 거대한 바위가 미덕암이다. 사방이 확 트인 깎아지른 절벽, 세 면이 그대로 천 길 낭떠러지다. 구미 시가지와 낙동강, 금오산, 황악산, 멀리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한 마리 말이 저 낭떠러지 위에 서 있었다. 장군은 말 등에 쌀을 부어 마치 말을 목욕시키는 것처럼 연극을 했다. 그러자 성 안에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왜군들이 그 광경에 속아 단념하고 물러났다고 한다. 미덕암은 쌀(米)을 물로 보이게 한 덕(德)이라는 뜻이다. 귓바퀴에 꽃 꽂고 목덜미에 꽃목걸이 두른 바위에 오래된 시간이 흘러내린다. 뒤죽박죽한 시공간에 말려든 기분이 든다.
안부 너머는 정상부보다 조금 낮게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는 벼랑이다. 곽재우 장군이 봉화를 올린 곳이라 하여 통신바위라 불린다.
거대한 단애와 함께 평평한 마루의 오솔길을 따라 북쪽으로 간다. 정상부에는 소나무 숲이 울창한데 그 아래 진달래가 맑아 천상의 화원이다. 페인트가 잔뜩 지워진 헬기장을 지나 소나무 전망대라 불리는 단애의 가장자리에서 내다본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미덕암에 한 사람이 장군처럼 서 있다. 나는 미소를 숨기기 위해 미덕암에서 소나무 전망대로 이어지는 벼랑을 쳐다본다. 벼랑은, 이미 무성하게 자라난 수목과 빛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오솔길 끝에서 산세는 안부로 뚝 떨어지고 길은 북문지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다. 안부 너머는 정상부보다 조금 낮게 다시 북쪽으로 나아가는 벼랑이다. 곽재우 장군이 봉화를 올린 곳이라 하여 통신바위라 불린다. 빛이 천중에서 한 걸음 서쪽으로 나아가 통신바위의 층리는 보다 선명하고 먼 산은 더욱 바다 같다. 나무계단을 내려가 다시 북문지 앞 촘촘한 돌계단에 닿고 안부사거리와 집채만 한 바위를 지나 다시 천생사다. 천생산성을 한 바퀴 온전히 걸은 셈인데, 깜짝 놀랄 만큼 묘하게 짧은 시간이었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55번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가산IC에서 내린다. 톨게이트 지나 구미방향으로 우회전해 25번 국도를 타고 직진, 신장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계속 직진한다. 신장리 천생산 전원마을 앞길따라 계속 오르면 천생사다. 화장실 옆에 주차장이 크고, 절집 왼편 끝에 천생산성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있다. 천생사 마당의 자연 와불과 법당 안 바위도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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