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의사회 119곳 정밀조사…주사기·바늘 등 ‘기초 품목’ 증발
76%가 ‘가격 쇼크’ 체감…32.6%는 “50% 이상 급등” 가격 폭리 우려
<경북도의사회 제공>
11일 대구 달성군 한 내과 의원. 평소라면 넉넉히 쌓여 있어야 할 주사기 보관함이 바닥을 드러냈다. 원장 A씨(65·내과 전문의)는 "도매상에 전화를 돌려도 '재고가 부족하다'는 말만 반복한다"며 "운 좋게 물량을 구해도 가격이 이미 50% 이상 뛰었는데, 그렇다고 환자에게 주사 비용을 더 받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이란 전쟁발 호르무즈 해협 사태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이 대구경북 의료 현장을 덮쳤다. 주사기, 수액백 등 석유화학 기반 필수 소모품의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지역 의료계가 유례없는 '비품 대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유독 대구경북 등 지방 의료기관에 가혹하게 다가오는 이유로 '유통 구조 왜곡'과 '구매력 차이'를 꼽는다.
경북도의사회가 지난 8~9일 지역 병·의원 119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소모품 수급 불안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진료의 가장 기초가 되는 주사기(33%)와 주사바늘(21%)의 수급 차질이 가장 심각했다. 이어 수액백(PVC)(13%), 폴리글로브(8%), 생리식염수(6%), 주사액(4%), 의료용 폐기물 전용봉투(4%) 순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외래 진료와 처치에 필요한 필수 비품 전반에서 '공급 불안'이 확인된 것이다.
<경북도의사회 제공>
비용 부담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다. 응답 의료기관의 76%가 가격 상승을 체감하고 있었고, 상승 폭은 더 가팔랐다. 가격 인상을 경험한 응답자 중 '10~30% 상승'이 44.2%로 가장 많았고, '50% 이상 급등'했다는 응답도 32.6%에 달했다. 10% 미만 상승과 30~50% 상승이 각각 11.6%였다. 반면 가격이 하락했다는 응답은 0%였다. 물량은 줄고 가격은 널뛰는 전형적인 공급망 붕괴 상황이다.
왜 유독 지방이 취약할까. 의료계는 물량 배분의 '우선순위' 문제를 지목한다. 물류비가 급등하고 공급이 부족하면 유통업체는 자연스럽게 물량 확보가 쉽고 결제 규모가 큰 수도권 대형병원 위주로 물량을 우선 공급한다. 상대적으로 구매 규모가 작은 지방 중소 병·의원들은 배분 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의료 양극화'가 심화되는 구조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대구시의사회도 지역 9개 구·군 의사회를 통해 긴급 실태 파악에 나섰다. 의료 현장에서는 "도매상을 통해서도 물량을 안정적으로 받기 어렵고, 일부 품목은 2주 단위로만 제한 공급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이러한 필수 의료 소모품 수급 불안은 지역 의료전달체계의 근간을 흔든다. 동네 의원에서 기초 처치가 불가능해지면 환자들은 결국 재고가 남은 대형병원으로 몰리게 되고, 이는 가뜩이나 심각한 상급종합병원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이길호 경북도의사회장은 "주사기와 바늘은 모든 진료의 기본이자 필수재로, 현재의 수급 불안은 유통 문제를 넘어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경고 신호"이라며 "정부는 필수 의료소모품을 전략 물자로 관리하고 지방 의료기관에 대한 우선 공급망 확보 등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도의사회 제공>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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