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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쓰레기봉투 누가 뒤진다”…불안한 경주 원룸가

2026-05-06 17:24

원룸 주택가 공병 찾다 종량제 봉투까지 뒤지는 사례 빈번
1인 여성 가구 “생활 흔적 노출될까 밤늦게 쓰레기 배출”
하루 빈 병 30개 3천 원…슈퍼·관광버스 주변 수거 경쟁도
경주시 “동천동 사례 적지 않아”…안내·계도 검토

경주 동천동의 한 원룸 건물 옆 배출장소에 일회용 음식 용기와 페트병, 유리병 등이 뒤섞인 채 흩어져 있다. 원룸 입주민들은 일부 수거인들이 공병과 캔을 찾는 과정에서 봉투가 뜯기고 쓰레기가 방치되는 사례가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독자제공>

경주 동천동의 한 원룸 건물 옆 배출장소에 일회용 음식 용기와 페트병, 유리병 등이 뒤섞인 채 흩어져 있다. 원룸 입주민들은 일부 수거인들이 공병과 캔을 찾는 과정에서 봉투가 뜯기고 쓰레기가 방치되는 사례가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독자제공>

"내가 버린 쓰레기봉투를 누군가 뒤져 본다고 생각하면, 그냥 불쾌한 정도가 아니에요. 혼자 사는 입장에서는 불안하죠."


경주 동천동 원룸에 혼자 사는 직장 여성 A씨는 최근 쓰레기를 내놓는 시간부터 바꿨다. 종량제 봉투와 재활용품 봉투가 뜯긴 뒤 주변에 쓰레기가 흩어진 일을 겪고 나서다. A씨는 "무엇을 먹었는지, 언제 집에 있었는지 같은 생활 흔적이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래서 일부러 밤늦게 쓰레기를 내놓는다"고 말했다.


경주 동천동과 황성동, 성건동 원룸가에서 공병과 캔을 찾기 위해 재활용품 봉투는 물론 종량제 봉투까지 뒤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일부 수거인은 원룸 앞에 놓인 재활용품 봉투를 열어 소주병과 맥주병, 캔류를 찾고, 이 과정에서 주변에 놓인 종량제 봉투까지 뒤지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필요한 병과 캔만 가져간 뒤 남은 쓰레기를 정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한 원룸 건물주는 최근 세대 입주민들에게 건물 주변 쓰레기 사진을 보내 배출 정리를 당부했다. 사진에는 박스와 일회용 음식 용기, 페트병, 유리병 등이 건물 옆과 보행로 주변에 뒤섞여 있었다.


해당 쓰레기를 배출한 원룸 세대도 봉투가 뜯긴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한 입주민은 "누군가 공병이나 캔을 찾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며 "가져가는 것보다 뜯어놓고 정리하지 않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골목이 지저분해져서만은 아니다. 종량제 봉투 안에는 배달음식 용기, 우편물 봉투, 영수증, 약봉지, 택배 송장 등 개인 생활의 흔적이 담긴다. 누군가 다시 열어보면 사생활 노출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경주 동천동의 한 원룸 건물 주변에 종이박스와 일회용 음식 용기, 유리병 등이 뒤섞여 흩어져 있다. 입주민들은 공병과 캔을 찾는 과정에서 재활용품 봉투뿐 아니라 종량제 봉투까지 뒤지는 사례가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독자제공>

경주 동천동의 한 원룸 건물 주변에 종이박스와 일회용 음식 용기, 유리병 등이 뒤섞여 흩어져 있다. 입주민들은 공병과 캔을 찾는 과정에서 재활용품 봉투뿐 아니라 종량제 봉투까지 뒤지는 사례가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독자제공>

1인 가구가 많은 지역 특성도 불안을 키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4년 경북의 1인 가구 비율은 38.9%로 전국 평균 36.1%보다 높았다. 경북 전체 117만4천597가구 가운데 45만7천153가구가 1인 가구였다. 경주 동천동과 성건동 일대도 직장인 비중이 높은 원룸과 빌라가 밀집한 지역이다.


현장에서 목격한 수거 방식은 과거의 폐지 수집과 달랐다.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원룸가 골목을 돌았다. 자전거 앞쪽에는 공병과 캔을 싣고 뒷자리에는 끈으로 묶은 폐지와 박스를 실었다.


수거인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 않았다. 이들은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빠르게 이동했고 접근에 경계심을 보였다. 대신 이들이 공병을 현금화하기 위해 찾는 동네 슈퍼를 찾았다.


원룸가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B씨는 "고정적으로 공병을 가져오는 어르신이 2~3명 정도 있다"며 "대부분 하루 30병 정도를 들고 온다"고 말했다. 일반 슈퍼에서는 하루 30병 이상은 받지 않기 때문이다.


빈 병 보증금이 병당 100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한 번에 손에 쥐는 돈은 3천 원가량이다. B씨는 "가게 문을 열기도 전에 아침 일찍 와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며 "병을 판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고 소주나 맥주를 사가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3천 원을 받고 좋아하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냥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빈 병을 둘러싼 경쟁은 원룸가 골목에만 머물지 않는다. 황성공원 주차장처럼 단체관광버스가 드나드는 곳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목격된다. 관광버스 기사 C씨는 "주로 산악회나 야유회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주차장으로 들어오면 정차하는 곳을 따라 어르신들이 우르르 몰려온다"며 "빨리 빈 병을 달라고 요구하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공동주택에서도 갈등이 생긴다. 주민과 상인 등에 따르면 일부 수거인은 아파트 재활용수거장에 모인 빈 병을 가져가다 적발돼 가져간 물품가액보다 훨씬 큰 금액을 변상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원룸 입주민들이 소주병과 맥주캔 등을 종량제 봉투에 넣지 않고 별도 재활용품으로 배출하면 종량제 봉투를 뒤질 유인은 줄어든다. 수거인이 종량제 봉투까지 열어보는 이유 중 하나가 '돈이 되는 물건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기대이기 때문이다.


경주 주택가의 한 슈퍼 앞에 이날 오전 수거된 빈 병 상자들이 쌓여 있다. 인근 원룸가에서 공병을 모아오는 수거인들은 하루 30병 안팎을 현금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재 기자>

경주 주택가의 한 슈퍼 앞에 이날 오전 수거된 빈 병 상자들이 쌓여 있다. 인근 원룸가에서 공병을 모아오는 수거인들은 하루 30병 안팎을 현금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재 기자>

다만 이들이 빈 병을 모으는 이유를 모두 생계형 빈곤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윤철용 경주시 시민복지국장은 "기초생활보장 기준이 많이 완화됐고 기초연금도 지급되고 있어 모두를 극심한 빈곤층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며 "일부 어르신들에게는 오랫동안 이어진 생활 습관처럼 굳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헌 경주시 자원재활용팀장은 "동천동에는 이런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재활용품을 무단으로 가져가는 행위는 경우에 따라 절도 문제가 될 수 있어 어르신 관련 부서와 협의해 안내 공문을 보내고 계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타 지자체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부산 수영구는 빈용기 반환수집소에 노인일자리 전담 인력을 배치해 빈 병 회수와 보증금 반환 업무를 맡기고 있다. 대구 남구 등 일부 지자체는 원룸과 단독주택 밀집지역에 재활용 동네마당을 운영하고 있다. 비가림 시설과 품목별 분리수거함, CCTV 등을 갖춘 거점형 배출 공간을 마련해 재활용품과 종량제 쓰레기가 뒤섞이는 문제를 줄이는 방식이다.


경주시는 2018년 12월 경주시 재활용품 수집 노인 및 장애인의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 제정 전인 2015년에는 재활용품 수집 어르신 전수조사를 벌여 140여 명이 관련 활동을 하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10년이 넘은 통계이고 이후 업데이트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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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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