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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역사적 트라우마 응시…비극 기록하는 문화예술의 힘

2026-05-15 17:12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2007) 스틸컷.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재현했다. <네이버 영화 제공>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2007) 스틸컷.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재현했다. <네이버 영화 제공>

생각할 사(思).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태어난 이상 죽는다. 불확실한 세계에 던져진 이상 고통받는다. 이 두 명제는 부정하지 못할 자연적인 법칙이자 불변의 진리이며 평생 그럴 것이다.


슬퍼할 도(悼). 하지만 주어진 삶을 다 살아내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죽는 것은 이상하고 잔인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온전한 죽음을 맞을 권리가 있지만 현실은 이를 자주 앗아간다. 그 뒤에는 대개 국가폭력이나 참사 같은 사회적 비극이 자리한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사진은 2024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사진은 2024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생각할 사(思).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물었다. 죽음은 흔히 과거의 사건, 더 나아간다면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과거는 종결된 시간이 아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우려면,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려면, 산 자들은 하늘의 별이 된 이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


슬퍼할 도(悼). 작가 한강은 또 묻는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아무런 모순도 해결하지 못하는 이 폭력성과 수동성이 세상에 너무 팽배해 있어서 변화의 동력이 축적되지 못한 채 산산이 흩어진다. 이때 잊혀져가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을 환기시키는 것이 있다. 바로 문화예술이다.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2023). 세월호 참사를 간접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필름영 제공>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2023). 세월호 참사를 간접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필름영 제공>

◆'간접 경험'의 힘…"타인의 삶 보다 잘 이해"


문화예술은 인간의 마음을 유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다른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감정의 폭을 넓히고 타인의 고통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국가폭력이나 사회적 참사를 문화예술로 기록하는 일은 중요하다. 역사 기록이나 언론 보도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개인의 삶과 감정, 긴 시간의 상처를 엿볼 수 있어 비극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세월호, 대구지하철화재 등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씨네소파 제공>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세월: 라이프 고즈 온'. 세월호, 대구지하철화재 등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씨네소파 제공>

대구 독립영화관 '오오극장'의 노혜진 홍보팀장은 "사회적 비극을 다룬 영화를 상영할 경우 영화가 끝난 뒤 '기억하겠다'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면서 "한 사람의 삶을 긴 호흡으로 따라가며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리다보니 기억을 더 쉽게 하는 것 같다. 이름만 알고 상세하게는 몰랐던 사건들을 영화를 통해 접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또 "영화 역시 하나의 아카이빙 작업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창비) 표지. <알라딘 제공>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창비) 표지. <알라딘 제공>

대표적으로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詩的) 산문"이란 평을 받으며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들 수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국가의 위상을 드높인 것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깊고 어두운 심연을 세계에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 작가의 대표작인 소설 '소년이 온다'는 피로 물든 광주 거리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상처와 잊히지 않는 기억의 무게를 담아내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항쟁의 비극 속에서 잊힌 영혼들과 그들이 남긴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작품들은 인간 내면을 치밀하게 파고드는 언어와 고통을 세밀하게 응시하는 상상력을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인식을 선사했다. 직장인 김모(29)씨는 "예전에는 5·18이나 제주4·3을 역사적 사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강 작가 작품을 읽고 나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감정이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며 "단순히 사건을 아는 것과 누군가의 고통을 엿보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10월 항쟁·지하철참사…대구서도 다양한 작업 이뤄져


대구에서도 10월 항쟁, 가창골 민간인 학살, 인혁당사건, 2·18 대구지하철화재참사 등 수많은 비극이 있었다. 지역에선 이를 기억하기 위한 작업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외신에도 보도된 '메모리즈'(2004)는 현종문 감독이 학부 시절 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목격하고 만든 독립영화다. 사고 후 1년간 부상자와 유족 등을 촬영하면서 수습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영화는 당시 참사의 원인과 부실한 지하철 관리 실태를 고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소재로 한 현종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메모리즈(Memories). <영남일보 DB>

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소재로 한 현종문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메모리즈(Memories)'. <영남일보 DB>

시민들과 뜻을 같이 하는 경우도 있다. 2021년 극단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의 안민열 대표가 연출을 맡은 연극 '030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위한 서곡' 역시 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다룬 작품인데, 시민 배우들과 함께 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처음 기획 단계부터 특정 관객층이 아닌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을 만들었고, 소방관들은 물론 유가족들도 초대해 작품을 소개했다. 안 대표는 "젊은 관객들은 뉴스로만 접했던 사건을 공연을 통해 다시 체감하게 됐다고 이야기했고, 공연이 끝난 뒤 시민들이 유가족 손을 잡고 위로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며 "문화예술을 통해 살아 있는 기억을 마주하게 해 저 역시 책무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2021년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이 시민배우들과 함께 선보인 연극 030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위한 서곡 공연 모습. <백치들 제공>

2021년 연극저항집단 백치들이 시민배우들과 함께 선보인 연극 '030218-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위한 서곡' 공연 모습. <백치들 제공>

이하석 시인의 시집 '천둥의 뿌리'(2016) '기억의 미래'(2023) '희게 애끓는, 응시'(2024)에는 대구 10월 항쟁과 민간인 학살을 주제로 한 작품이 다수 수록됐다. 시인은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학살이 벌어진 가창골에서 가만히 '소리'를 들으며 아픈 역사를 드러낸다. "길이 들면 새들 울음으로 찢어대는/ 숲의 초입에/ 칼국숫집이 저녁을 환하게 밝힌다// (중략) // 오래전, 처형의 일기를 써 내렸던 물,// 나가보니 그 물소리로 삭은 기억의 숲이 어둠을 짓뭉개고 있다// 다시 들어와 국수를 들면서, 저마다 뿔들 주억대며,/ 자신들의 안安과 부否를 후루룩거리는 소리들을 듣는다."('기억의 미래' 중 '가창댐 아래서' 부분)


이하석 시집 기억의 미래(2023). 대구 10월 항쟁, 가창골 민간인 학살 등을 주제로 한 시편이 다수 수록됐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이하석 시집 '기억의 미래'(2023). 대구 10월 항쟁, 가창골 민간인 학살 등을 주제로 한 시편이 다수 수록됐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문화예술은 왜 꾸준히 사회적 비극을 담아왔을까. 예술인들은 비극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이하석 시인의 답변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그런 비극으로부터 우리가 살아남았잖아요. 살아남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죽은 자들을 위한 어떤 진혼 의식이라고 할까. 죄의식이나 슬픔의 감정을 작품을 통해 완화하는 과정 속에서 문학 같은 예술 작업이 이뤄지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통의 미학화 우려…편향성도 경계해야


다만 문화예술이 비극을 다룰 때 늘 순기능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영화·뮤지컬 등 상업성을 띠는 장르의 경우, 유가족의 고통을 미학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다. 상업예술의 경우 궁극적으로 상업적 목적이 저변에 깔려 있기에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서사를 제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의 공감이나 눈물,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장치로 타인의 아픔을 활용하게 되는데, 이를 상품화한다는 윤리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이에 대해 주형일 영남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비극을 다룬 콘텐츠는 그런 위험을 경계하고, 단순한 흥미 소비를 넘어 사회적 기억을 함께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한국에선 국가폭력이나 사회적 참사를 다룰 경우 '진실 밝히기' 담론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 교수는 이 또한 창작자가 주시해야 할 지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역사적으로 누적된 경험으로 어떤 비극이 발생했을 때 국가권력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한다는 의심이 강하게 나오고, 비극을 기록하는 영화도 상당수가 진실 밝히기 성격을 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겉으로 보기엔 좋아보이지만 어떤 편향성을 갖고,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 특정한 정치적 목적으로 창작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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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희

문화팀 조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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