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서 차로 50분, 문복산·백운산 자락 깊은 산골
물 좋고 산 깊은 골짜기, ‘時多’라는 이름으로 남아
시다교 건너 만나는 마을, 길목엔 캠핑장·펜션 이어져
30여 가구가 지키는 고령 마을, 곤달비·콩·감자 재배
문복산과 백운산 자락에 둘러싸인 경주시 산내면 대현2리 시다마을 전경. 높은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어 바깥에서는 안쪽 풍경이 쉽게 보이지 않는 깊은 골짜기 자연마을이다. <장성재 기자>
경주 산내면 대현2리 깊은 골짜기에는 '시다마을'이 있다.
"시다바리 할 때 그 시다입니까."
처음 이름을 들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렇게 물을 법하다. 그러나 산내면 대현2리 시다마을의 '시다'는 일본어투 속어가 아니다. '때 시(時)'와 '많을 다(多)'를 쓰는 오래된 지명이다.
19일 찾은 산내면 시다마을은 말 그대로 산속의 산이었다. 경주 도심에서 차로 50분가량 걸렸다. 산내면 소재지를 지나 대현리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길은 점점 좁아졌다. 가는 길에는 캠핑장과 펜션이 여럿 보였다.
시다마을은 시다교를 건너야 닿을 수 있었다. 다리를 지나자 낮은 집과 밭, 비닐하우스가 이어진 오래된 산골마을의 시간이 시작됐다.
경주시 산내면 대현2리 시다마을 입구의 시다교. 경주 도심에서 차로 50분가량 떨어진 이 마을은 다리를 건너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장성재 기자>
내비게이션에 울주와 언양 방향이 나오기도 했다. 행정구역은 경주지만, 지형상 경주와 울산의 경계 산골에 가까웠다. 문복산과 백운산 자락을 끼고 있어 골짜기는 깊었다.
버스정류장에는 서편·시다·태종이라는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대현1·2리 안에 남은 자연마을의 호칭이다. 대현2리에는 '시다'와 '태종', '동편'이라는 마을이름이 전해진다. 시다는 물과 농사의 때, 고려 유신의 기다림을 품은 이름이다. 태종이라는 지명은 고려 말 피난 세력과 조선 건국 세력의 충돌을 떠올리게 하는 전승과 맞닿아 있다. 동편은 동창천 동쪽이라는 지형에서 나온 이름이다.
시다마을 입구 인근 버스정류장. 정류장에는 '서편·시다·태종'이 표시돼 있어 대현2리를 이루는 자연마을 이름을 한눈에 보여준다. <장성재 기자>
시다마을 정자에는 時多쉼터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산내면 지명유래 자료에는 시다마을을 두고 큰 가뭄에도 골짜기 물이 마르지 않고 절후에 맞게 농사가 잘돼 힘들이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고려가 저문 뒤 이 골짜기로 들어온 유신들이 다시 올 좋은 날과 평온한 세상을 기다렸다는 이야기도 이름에 담겨 있다.
마을 유래로 풀면 '농사의 때가 넉넉한 마을', '좋은 때를 기다린 마을'에 가깝다. 산골에서 물은 곧 삶이었다. 밭을 일구고 가축을 기르고 마을을 이어가는 힘이었다.
경주시 산내면 대현2리 시다마을 정자에 걸린 '時多쉼터' 현판. '시다'는 일본어투 속어처럼 들리지만, 이 마을에서는 '때 시(時)'와 '많을 다(多)'를 쓰는 오래된 지명으로 전해진다. <장성재 기자>
마을 안팎에는 다른 구전도 덧붙어 전한다. 시체가 많다는 뜻의 '屍多' 설이다. 대현2리의 태종은 이방원이 고려 유신들의 반란군을 토벌했다는 전승과 연결돼 있다. 이 이야기가 시다마을에도 겹치면서 많은 사람이 죽어 '屍多'라 불렸다는 구전이 덧붙은 것으로 풀이된다.
범이 많아 '호시다(虎時多)'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역시 마을을 둘러싼 산세를 보면 이해가 간다. 문복산과 백운산 자락이 깊게 감싸고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숲이 더 깊고 인가도 드물었을 것이다. 산짐승 이야기가 마을 이름에 덧붙었을 법하다.
경주시 산내면 대현2리 시다마을 전경. 마을에서 만난 이영봉 어르신이 "사진 찍기 좋은 곳"이라며 길을 안내하고 있다. <장성재 기자>
마을에서 만난 이영봉 어르신(73)은 이름 이야기가 나오자 웃었다. 그는 "시다바리라던지 부산, 울산과 가까워 그 도시 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요"라면서도 "그런 뜻은 아니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마을에 대해 자랑할 것도, 흉볼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마을 전경을 찍기 좋은 곳을 묻자 달라졌다. 어르신은 걸음을 옮기며 마을 뒷산 높은 곳까지 직접 안내했다. 한참을 올라간 뒤 감나무 밑을 가리켰다.
"여기가 사진 찍기 좋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시다마을은 산에 폭 안긴 모양이었다. 낮은 지붕의 집들과 밭, 비닐하우스가 골짜기 사이에 놓여 있었다. 바람은 조용했고 마을은 바깥의 속도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왜 이곳이 피난처로 전해졌는지 왜 물과 농사의 때를 품은 이름이 붙었는지 풍경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주민들은 곤달비와 콩, 감자, 배추 등을 심으며 산골 생활을 이어간다. 임병훈 산내면 총무팀장은 "시다마을은 70대가 주를 이루고 현재 30여 가구, 50명 안팎이 사는 작은 마을"이라며 "물 맑고 조용한 산골 분위기를 보고 정착한 외지 가구도 10가구 정도 있다"고 말했다.
문복산과 백운산 자락 아래 펼쳐진 경주시 산내면 대현2리 시다마을 들녘. 주민들은 산간 기후에 맞춰 곤달비와 콩, 감자, 배추 등을 재배하고 있다. <장성재 기자>
교통은 큰 불편한 점이다. 어르신은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들어오는 식이다. 차가 없으면 택시에 기대야 한다. 생필품을 사려 해도 면 소재지까지 나가야 한다. 마을 어르신들의 자녀는 경주 시내와 대구, 울산 등지로 떠났다.
산내면 출신인 박원철 경주시종합자원봉사센터장은 "울주·언양과도 이어지는 산 안으로 들어가면 또 산이 나오는 동네"라고 했다. 그는 "시다 쪽은 예전부터 대추와 고랭지 채소 농사를 많이 했다"며 "산이 깊고 물이 좋은 대신 일조량은 넉넉하지 않아 강원도 산골 농사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 센터장은 "경주는 마을마다 따로 불리던 옛 이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행정 지명 속에 많이 묻혔다"며 "골짜기 이름 하나에도 사연이 있는데 그것을 기억하는 세대가 줄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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