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 안평면 금곡2리 이장
김진우 안평면 금곡2리 이장
"아직도 강풍 주의보 문자만 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경북 의성군 안평면 이장협의회장인 김진우 금곡2리 이장(65)은 경기도에서 30여년 간을 직업군인으로 활동하다 지난 2014년 귀향했다.
의성 서북부에 자리한 작은 시골 마을. 산과 강이 어우러진 청정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평화로운 곳이었지만, 지난해 3월 22일 경북 북부지역을 집어삼킨 대형산불에서 무사하지는 못했다.
특히 그날은 마침 산수유축제가 시작하는 날이라 김 이장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고 한다.
강한 바람을 동반한 건조한 날씨였지만, 축제가 시작하는 첫날이라 마을주민 모두가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 들뜬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산 너머에서 솟구친 거대한 연기 기둥과 함께 마을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김 이장은 당시 상황을 강풍과 함께 동쪽으로 번지면서 노란 꽃잎으로 물들어야 할 안평면의 하늘은 시꺼먼 연기로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런 탓인지 그는 "산불 이후 1년하고도 2개월이란 시간이 지나 잿빛으로 변했던 산등성이에 푸른 싹이 돋아났지만, 아직도 주민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타오르던 불길의 공포와 상실감이 깊은 흉터로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축제 첫날 찾아온 불청객, 삶의 터전을 삼켰다.
김 이장은 건조한 날씨와 강풍을 타고 번진 불길이 순식간에 마을을 포위한 그 날, 주민들은 평생 피땀 흘려 일궈온 집과 창고가 화마에 쓰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산불이 한창이던 25일에는 김 이장이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집 바로 옆까지 불길이 다가왔지만, 다행히 화마에서 벗어나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가슴 아픈 것은 산불 진화로 동분서주하는 와중에 보여준 출향인들의 무례함이었다.
그들의 전화 대부분이 산불로부터 '자신들의 선산은 무사한지', '아직 산불이 번지지 않았다면, 물이라도 좀 뿌려달라'는 등 마을 주민과 공동체의 안위와는 무관한 대화였기 때문이다.
이에 김 이장은 "산불로 단순히 나무가 숯이 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민들의 생계이자 자부심이었던 농토와 삶의 기반인 농기계 5천여대가 통째로 타버린 것"이라며 당시의 답답한 심정을 곱씹었다.
실제 김 이장에게 연락한 출향인들의 고향인 의성군은 그날의 산불로 2만8천853㏊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고, 400여채의 주택이 파손되거나 전소된 사실을 알았다면 이런 한가로운 부탁이 가능했을까 싶다.
◆주민의 눈물 닦아주는 실질적 지원이 중요.
정부와 의성군은 산불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 차는 크다.
이에 김 이장은 화려한 복구 계획이나 거창한 수치를 내세우기에 앞서,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매일 겪는 고통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집을 잃은 이웃들은 임시 컨테이너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디며 사계절을 보냈다"면서 "보상금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평생 살아온 집을 다시 짓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특히 연기 흡입으로 호흡기가 나빠진 어르신들과 밤마다 불길이 덮치는 환각을 보는 주민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와 관련한 보상이나 해결책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구 과정에서 가장 소외된 것은 '일상의 평온'"이라고 덧붙인다. 밥을 차릴 깨끗한 물과 가족이 안전하게 몸을 뉠 수 있는 소박한 방 한 칸이 그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찾아가는 복지' 등 적극적인 행정이 우리에겐 희망.
안평면은 거동이 불편한 초고령 주민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 탓에 김 이장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로 '주민들이 복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 면사무소까지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꼽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안평면의 '찾아가는 보건복지팀' 직원들이 직접 시골 골목까지 들어와서 어르신들 손 잡아주고 혈압 재주는 게 우리 주민들에겐 큰 힘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 어르신들이 '이장님, 면사무소 양반들이 내 죽었나 살았나 보러 왔어'라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때, 화마로 인한 상처가 조금은 치유가 되는 것 같다"면서 '찾아가는 행정 서비스'의 상시화와 인력 확충을 강력히 주장한다. 재난 이후 급격히 나빠진 어르신들의 건강과 고립감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보존만큼 중요한 건 사람, 돌아오는 안평을 위해 힘 모아야.
김 이장은 산불 예방을 위한 주민들의 인식 개선과 공동체 의식 회복도 강조했다.
그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산불 발생 원인의 90% 이상이 실화"라면서 "우리 스스로 쓰레기 소각 안 하기, 논밭두렁 태우지 않기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진우 이장은 "잿더미를 다시 푸르게 만드는 건 군청 공무원들만이 아니라, 여기서 살아갈 우리 주민들의 몫"이라면서 "안평이 사람들이 떠나는 '절망의 땅'이 아니라, '희망의 안평'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것이 이장을 맡은 제가 보고 싶은 광경"이라고 말했다.
마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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