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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이탄광에 묻힌 ‘대구경북 73명’ 영혼…‘80년’ 잊혀진 역사가 다시 물 밖으로

2026-05-25 18:21

1942년 매몰 사고로 숨진 조선인 136명 유해 봉환 첫걸음

조세이탄광 붕괴 사고 대구경북 출신 희생자 73명 유족의 한

할아버지 편지 속 3.3m 담장… 고국 땅 밟지 못한 슬픔 조명

시민단체·학계 "한일 양국 공동조사단 등 실무협의체 구성 촉구"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경북 안동 한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19일 경북 안동 한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80년 이상 엉켜있던 '조세이(장생)탄광'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봉환 문제에 대한 실타래가 풀려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 양국이 지난해 8월 발견된 조세이탄광 희생자 유해 1구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DNA 감정을 조속히 추진하기로 한 것. 올해 1월 일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 시발점이 돼 같은해 5월 경북 안동에서 열린 두 번째 한일 정상회담에서 종지부가 찍혔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있던 조세이탄광에 강제 동원돼 해상 매몰 사고(1942년 2월3일)로 숨진 조선인은 모두 136명(대구경북 출신 73명). 희생자의 유해와 그 영혼이 고국으로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려온 유족들에게 희망의 종소리가 울린 셈이다.


◆김영철씨, "대를 이어 '할아버지' 유해를 찾고야 말겠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인 고 김원달씨의 초상. 김영철씨 제공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인 고 김원달씨의 초상. 김영철씨 제공

"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은 나라의 힘이 없어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다 고통받은 국민들이다. 한국 정부가 더 강하게 요구해 유골을 하루빨리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김원달 선생'의 손자인 조세이탄광희생자한국유족회 김영철(65) 사무국장은 지난 21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1942년 조세이탄광이 무너졌을 때 김원달 선생의 나이는 고작 27세였다. 당시 김원달 선생의 아들이자, 김 국장의 부친인 김동암씨는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 아기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1991년에 김동암씨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됐다. 김원달 선생의 유해가 바닷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게된 것. 그해 일본 시민단체가 조세이 탄광 희생자 한국 유족들을 찾기 시작하면서, 그날의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때부터 김동암씨는 조세이탄광 유해 수습을 매듭짓기 위해 유족회 활동에 매진했다. 매년 일본에서 열리는 추모제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김동암씨는 끝내 부친 김원달 선생의 유해 봉환을 보지 못한 채 2005년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 국장은 "부친은 평소 아버지(김원달)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접한 게 다였다고 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일본 조세이탄광에서 일을 한 사실은 알았지만, 붕괴 사고 당시 매몰된 채 바닷속에 묻힌 사실은 몰랐었다. 부친이 백발의 노인임에도 한국에 유족회가 꾸려질 당시 사무총장까지 맡으며 헌신한 이유"라며 "나 역시 부친의 뒤를 이어 유족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상태지만, 부친이 그 아버지를 바라보며 느꼈을 슬픔의 무게는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인 고 김원달씨의 손자 김영철씨. 김영철씨 제공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인 고 김원달씨의 손자 김영철씨. 김영철씨 제공

김 국장은 김원달 선생이 가족에게 남긴 편지에 대해서도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당시 조세이탄광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보여주는 단서로 남아 있어서다. 그는 "할아버지가 남긴 편지엔 바다 밑에서 일할 때 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위험했다는 내용이 있었다"며 "밥도 제대로 주지 않고, 3m가 넘는 송판 담을 세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는 얘기도 담겼다. 일본 자료에 남아 있는 광부 숙소 조감도에도 담 높이가 3.3m로 표시돼 있다. 편지 내용과 자료가 상당 부분 맞아떨어지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국장은 최근 한일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에서 조세이탄광 유해 DNA 감정 문제가 공식 언급된 데 대해 "진전은 맞지만, 실무가 따라야 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일 정상이 DNA 감정 협력을 이야기한 뒤에도 100일 넘게 실무 차원의 움직임은 더뎠다"며 "다시 조세이탄광이 한일공동발표문에 언급된 만큼 이번에는 정치적 수사에 그쳐선 안 된다. 정치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하면 또 수십 년이 흘러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선 한일 양국이 할 수 있는 발굴부터 진행해야 한다. 이후 북한 관련 유해가 확인되면 그때 북한과도 별도로 협의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강조했다.


◆박형모씨, "둘째 삼촌은 80년이 지난 지금도 물 속에"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인 고 박상윤씨의 조카 박형모씨. 박형모씨 제공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인 고 박상윤씨의 조카 박형모씨. 박형모씨 제공

박형모(80)씨는 조세이탄광에 강제 동원했다가 숨진 박상윤 선생(사고 당시 20대)의 친조카다. 형모씨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비극이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에게서 "일본에 간 삼촌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그 아픔을 공유했다.


지난 21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형모씨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삼촌과 관련해 직접 들은 이야기가 많지는 않다"면서도 "할머니에게서 둘째 삼촌이 일본 조세이탄광에 갔고, 거기서 수몰돼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현재는 삼촌을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연결고리인 사진들마저 없어진 상태"라고 아쉬워했다.


삼촌 박상윤 선생은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조세이탄광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이는 삼촌의 일본행이 당시 식민지 조선 청년들이 처한 잔혹한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시사했다. 형모씨는 "그때 동네에는 일본 사람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일본으로 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부추기며 동네 청년들의 정보를 넘겼다고 들었다. 삼촌도 그렇게 일본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본에서 둘째 삼촌이 사고로 숨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청과부(靑寡婦·젊은 과부)가 된 숙모는 곧바로 친정으로 돌아갔다. 친정이 어디였는지, 숙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은 우리도 잘 모른다"고 했다.


박상윤 선생이 숨진 후 가족의 우환은 더해졌다. 슬하에 3형제를 뒀던 박씨의 할머니에게 둘째 아들을 잃은 슬픔은 시작에 불과했다. 집안의 장남이자 형모씨의 아버지였던 첫째 아들 '박애세'씨가 1950년 병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다. 셋째인 '박칠권'씨도 한국전쟁(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그해 군에 입대한 후 6년 만에 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형모씨는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시니 결국 할머니와 모친, 숙모를 비롯해 남겨진 여자들끼리 억척스럽게 농사를 지으며 모진 세월을 버텨내야 했다"며 "자식을 가슴에 묻은 할머니의 한(恨)은 더했다. 자식이 일본에서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지,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그 어떤 기별도 받지 못했다. 1887년생인 할머니는 결국 자식의 유골함 한번 품에 안아보지 못한 채, 1973년 86세의 나이로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형모씨는 "최근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조세이탄광 유해 DNA 감정 문제가 공식 언급되면서, 우리처럼 뒤늦게나마 가족의 흔적을 더듬어온 유족들의 기대감도 조심스럽게 커지고 있다"며 "자세한 사연조차 전해 듣지 못한 채 눈물 흘리는 조세이탄광 유족들이 전국에 여전히 많을 것이다. 정치적 역학 관계를 떠나, 조세이탄광에 끌려가 차가운 바닷속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청년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잊히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학계 "한일 양국이 공동조사단이나 실무협의체를 꾸려야"


조세이탄광희생자 귀향추진단 조덕호 단장. 영남일보DB

조세이탄광희생자 귀향추진단 조덕호 단장. 영남일보DB

조세이탄광 관련 유해 수습과 감식, 유가족 찾기, 고국 봉환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도맡고 있는 대구지역 시민단체인 '조세이탄광희생귀향추진단'은 이번 안동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정부의 책임있는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조덕호 귀향추진단장은 "2026년 한일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에서 조세이탄광 유골 DNA 감정 문제가 언급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DNA 감정 및 유골 수습 관련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 일정이 하루빨리 정해져야 한다"며 "국회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며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지만, 순수 민간 차원의 활동이다 보니 한계가 크다. 실질적인 (정부의)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 발표에 그치지 말고 유골 발굴과 DNA 감정, 유족 봉환 절차를 실제로 성사시켰으면 한다"고 밝혔다.


조 단장은 희생자 가운데 주소지가 북한으로 확인된 이가 최소 5명인 만큼, 북한 측과의 소통 창구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현재 남북 간 직접 창구가 없어 지난 8일 중국에서 주중 한국대사를 만나 관련 자료를 전달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주중 북한대사관이 주중 한국대사관 인근에 있는 만큼, 소통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며 "유골 발굴과 DNA 감정이 한국 유족뿐 아니라 북한 출신 희생자 문제까지 포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대구대 장의식 교수(역사교육과). 영남일보DB

대구대 장의식 교수(역사교육과). 영남일보DB

지난해 1월 일본으로 건너가 조세이탄광 유골 수습 현장을 직접 찾은 대구대 장의식 교수(역사교육과)는 조세이탄광의 아픔을 후손들을 위한 역사물로 남겨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바다 밑 탄광에 갇혀 빠져나올 길도 없이 죽음을 맞아야 했던 희생자들의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며 "시간이 더 흐르면 유족들의 기억과 관련 자료는 더 빠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 조세이탄광을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역사 자료 정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세이탄광을 둘러싼 진상규명에 대해선 탄광 개발 시기와 조선인 취업·동원 과정, 강제징용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게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조세이탄광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탄광 사고가 아니라 식민지 시기 강제동원 피해가 전쟁 이후에도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유족에게 남겨진 사례다"며 "현재 일본에 대한 일방적 비난 방식보다는 사고 경위와 강제동원 과정, 사후 은폐·방치 여부를 자료와 증언으로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 한일 양국이 공동조사단이나 실무협의체를 꾸려 일본 내 행정자료, 기업 자료, 시민단체 조사 기록을 함께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대식 국회의원 "대화의 문은 열렸다. 이제는 정치권이 답해야 할 때다"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 영남일보 DB

국민의힘 강대식 의원. 영남일보 DB

정치권에서 줄곧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전반에 대한 조사와 지원 사업 추진을 주장해 온 강대식 국회의원(국민의힘·대구 동구군위군을)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으로 조세이탄광 문제에 대한 새 활로가 뚫린 것에 대해 '매우 의미있는 진전'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강 의원은 "그동안 조세이탄광 문제는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 충분한 관심과 조명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과 수몰 참사라는 비극적 역사를 안고 있음에도, 피해 실태와 희생자 문제에 대한 국가적 접근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상태"라며 "양국 정부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역사적 희생을 함께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선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유족들과 추모단의 오랜 노력, 시민사회의 꾸준한 문제 제기가 결국 외교적 의제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이 뜻깊다"고 말했다.


조세이탄광을 둘러싼 각종 현안 문제는 여야를 불문하고 목소리를 높여 왔던 의제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 국민의힘에선 강대식 의원을 주축으로 김승수·김상훈·김위상·구자근 의원 등 10명이 조세이탄광 강제동원 진상규명 및 희생자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또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2월 김준혁 의원(대표 발의) 등 21명이 '조세이탄광 수몰사건 희생자유해의 발굴 및 봉환 등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강 의원은 조세이탄광 희생자의 아픈 역사가 더 이상 잊혀지지 않도록, 이번만큼은 여야가 함께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세이탄광 문제에 대해선 여야 모두 역사적 희생과 인권, 그리고 국가 책임의 문제라는 것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는 특별법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우선 해당 법안이 이미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된 만큼, 여야가 인도주의적 과제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논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아울러 국회 차원에서도 유족과 추모단, 전문가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경청하면서 필요한 지원 방안을 보다 정교하게 보완해 나아가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향후에는 진상 조사뿐만 아니라, 기록 보존 등과 같은 후속 과제도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 의원은 한일 정부가 조세이탄광 유해에 대한 DNA 감정을 공론화시킨 것과 관련해선, 이 논의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피력했다. 그는 "아직 유해 수습이나 공동조사와 같은 구체적인 실행 방안까진 공식화된 건 아니다. 앞으로의 실무 협의 과정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예를 들어 공동 협의체 구성, 관련 자료 공유, 현장 조사, 유해 수습 및 신원 확인 절차 등에 대한 단계적 논의가 책임있게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또 "단순히 유해를 수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 신원을 최대한 확인하고 예를 다해 고국으로 모시는 과정까지 생각해야 한다. 현재 많은 유가족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유전자 확보와 신원 확인을 위한 절차 역시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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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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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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