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논설위원
시작은 분명 내란심판 선거였다. 지금 '내란심판'은 망각(忘却)한 구호다. 언제쯤 프레임 전환이 일어난 걸까. 대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공소취소 특검'과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이 대구시장 선거를 뒤흔들고 있다. 두 쟁점 모두 보수, 진보, 양대 진영의 결집을 불렀다. 호남도 뭉쳤고 대구도 뭉쳤다. 그러나 김부겸과 추경호의 셈법은 다르다. 호남의 결집은 넓은 바다에 끼얹은 한 종지 물에 불과하다. 창해일속(滄海一粟) 격이다. 대구에선 그 한 종지 물로 둑이 넘쳤다. 일엽지추(一葉知秋)의 시그널이다. 논란은 민주당이 키우고 손해는 김부겸만 본건가. 접전지 부·울·경도 비슷한 처지다. 지금 호남의 1표와 영남 1표의 무게는 다르다. '스타벅스 탱크데이'는 정용진의 사과를 부를 만큼 아픈 역사를 조롱한 잘못이 크지만, 선거 공학적으로는 민주당의 패착이었다. 영호남 지역패권주의의 역설이고, 이념의 괴물에 포획된 우리 정치의 수태(羞態)다. 김부겸이 왜 중앙당에 대놓고 "이쯤에서 그쳤으면 한다"라고 했겠는가.
6·3 지방선거 D-5. 추격하는 후보들의 바람은 간절하겠지만, 닷새 만에 판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 실은 오늘, 내일, 승부의 절반이 결정난다. 이틀간 치르지는 사전투표에서다. 2022년 지선(20.62%), 2024년 총선(31.3%), 2025년 대선(34.74%) 사전투표율은 20~35% 구간에 있다. 투표자 20~35%의 표심은 유의미한 방향성을 지닌다. 공식 발표만 안 할 뿐 오늘과 내일, 당락을 가르는 운명의 칭추(秤錘)가 크게 움직인다.
예외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대구'다. 대구시장 선거는 투표가 끝나도 개표가 마무리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초박빙 판세 때문만이 아니다. 대구의 사전투표의향 비율(24.7%·17~19일 조사·리서치앤리서치)이 전국 최저이고, 무당층 비율(34%·19~21일 조사·한국갤럽)은 가장 높다. 더 주목할 게 있다. 지지 후보를 정하고도 '바꿀 수 있다'는 응답이 13.8%(이하 리서치앤리서치 17~19일 조사)에 이른다. 김부겸 지지층의 11.6%, 추경호 지지층의 14.5%가 같은 답을 했다. 무슨 의미인가. 마지막까지 두터운 부동층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20% 내외로 추산한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끝까지 대구 유권자들이 망설이며 숙고하는 건 대체 뭘까. 가장 중요한 후보 선택 고려 사항으로 '공약(42.7%)'을 꼽았다.
왜 공약이 중요한가. 공약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다. 유권자와의 신뢰 계약이다. 공약은 선거기간에만 유효한 구호가 아니다. 선거 후 당선자의 공약 이행 여부를 감시하고 평가할 주요 기준을 제공한다. 수많은 후보자 중 누구를 선택할지 막막한가. 투표장에 가기 전 다시 한번 주요 후보의 '공약'를 꼼꼼히 살피시라. 공약은 방황하는 유권자의 유용한 나침반이다
초박빙 선거일수록 한 표의 효능감은 커진다. 내 한 표가 대구를 바꿀 수 있다. '1표의 가치'가 더 클수록 간절함이 승패를 가른다. '결집'이 최대 변수라고 한다. 이 간절함이 결집을 부른다. 내 작은 한 표가 전혀 다른 대구를 만드는 '결정적 한 표(A decisive vote)'가 된다면 이만한 '세렌디피티(serendipity·우연으로 얻는 행운)'가 없다. 길모퉁이를 돌다 우연히 마주친 따스한 5월의 햇살처럼 내 한 표가 나의 삶을 바꾸고, 대구의 운명을 바꾸는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준다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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