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섭 선산읍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소방차 도착 전 초기 진화
“농촌마을은 초기 5분이 중요…비상소화장치 더 늘었으면”
김일섭 신기리 새마을지도자이자 선산읍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이 비상소화장치함에 있는 소방호스를 들고 당시 화재 및 진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박용기 기자>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기에 봤더니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집주인 가족 연락처를 찾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먼저 119에 신고하라고 했습니다."
지난 15일 오전 10시쯤 경북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에서 자칫 큰 화재로 번질 뻔한 상황을 막아낸 김일섭(67) 신기리 새마을지도자이자 선산읍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의 말이다. 그는 급박한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고 소화기와 비상소화장치를 활용해 초기 진화에 나섰고, 소방대가 도착하기 전 불길 확산을 막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구미소방서 등에 따르면 이날 화재는 선산읍 신기리 한 주택 주변에 쌓여있던 고물 등 적치물에서 발생했다. 당시 김 회장은 인근 자신의 복숭아 농장에서 작업 중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현장 쪽을 바라보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 새마을지도자로 주민 사정을 잘 알고 있던 그는 해당 주택 거주자가 평소 선산 시내와 마을을 오가며 생활하고, 당시 집에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곧바로 파악했다. 일부 주민들이 집주인 가족에게 연락하려 하자 김 회장은 "먼저 119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곧장 인근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함으로 달려갔다. 먼저 소화기를 꺼내 불길을 향해 분사했지만, 소화기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김 회장은 다시 비상소화장치 호스를 끌어냈다. 호스가 꺾이고 무거워 전개가 쉽지 않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는 70m가량 호스를 끌고 불이 난 현장으로 달렸다.
현장에서는 일회용 가스통으로 보이는 물체가 터지는 소리도 났다. 주민들이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릴 정도로 위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마을 노인회장과 함께 비상소화장치를 작동시키며 불길을 잡기 시작했다. 얼마 뒤 소방대가 도착했고, 다행히 인명 피해 없이 상황은 마무리됐다. 불이 난 주변에는 노인회관과 마을회관, 마을 하수처리시설이 있어 화재가 확산할 경우 마을 공동시설로 피해가 번질 가능성도 있었다. 또 뒤로는 야산이 있어 산불 확산 우려도 있었다.
선산읍 신기리 마을회관에 있는 비상소화장치함<박용기 기자>
김 회장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데는 과거 직장 생활의 경험도 작용했다. 그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며 정기적으로 소방 훈련을 받았다. 119 신고 요령, 주민 대피, 호스 전개와 사용법 등을 익힌 경험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몸으로 나온 것이다. 김 회장은 "회사 다닐 때 소방 훈련을 자주 했다. 그때 배운 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신기리 일대는 농가와 주택, 산지가 가까워 불이 번질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는 지역이다. 과거에도 인근 농막과 농장 등에서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김 회장은 "봄철 바람이 강할 때 불이 산으로 번지면 큰일 난다"며 "소방서와 거리가 있는 농촌 마을은 초기대응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비상소화장치가 한두 곳 더 있으면 훨씬 도움이 된다. 큰 장비가 아니더라도 마을 곳곳에 초기 진화 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유현 구미소방서장은 "이번 화재는 소방대 도착 전 주민들의 신속한 초기대응이 실제 피해저감으로 이어진 사례"라고 말했다.
올해로 신기리 새마을지도자 5년 차, 선산읍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3년 차인 김 회장은 평소에도 농약 공병 수거, 마을 환경정비, 양수장 관리 등 궂은일을 맡아 하고 있다. 최근 모내기 철을 맞아 새벽부터 양수장을 오가며 물 관리를 하는 것도 그의 일상이다.
김 회장은 "동네에 젊은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회사생활을 하며 배운 것들이 마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했다.
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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